350년 이어진 쌉쌀한 한약香 스며있는 거리
대구 중구 남성로와 동성로 2·3가 일대에 자리 잡은 ‘약전골목’은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한약방이나 약업사, 한의원, 인삼사, 약차집 등 수백 개의 관련 업소가 들어서면서 ‘약령시’(藥令市)라고도 불린다. 규모가 커지면서 붙은 명칭이다.
약전골목 또는 약령시는 쌉쌀한 한약 향이 무려 350년이 넘도록 끊이지 않은 곳으로, 오랜 역사를 보유한 장소인 만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이곳에 숨어 있다.
△‘대동법’이 약령시 만들었다?
대구에서 처음 약령시가 열린 곳은 현재 위치의 약전골목이 아니다. 1658년 경상감사 임의백이 경상감영 내 객사(客舍) 주변에 정기적으로 약재 시장을 열면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 대구중부경찰서가 있는 곳이다. 과거 경상감영 내 객사 앞마당에는 봄·가을마다 한약재 향을 풍겼다. 약 1000평(3305.7㎡) 규모로 장이 열린 탓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약재 시장이 이곳에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유래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대동법’(大同法·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는 지방 특산품) 관련설이다. 17세기 들어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왕실에서는 쌀로만 공물을 받다 보니 필요한 지역 특산물은 공인(貢人)들로부터 조달받게 된다. 이에 공인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화폐유통이 촉진되고 신분 질서가 흐트러지는 등 변화가 일었고, 특히 왕실에 공급되는 물품의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 중에서도 지방에서 왕실에 조달되는 약재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한약재 공급의 중심은 충청도였다. 하지만 대통법이 시행되면서 한약재 공급이 급격히 줄었고, 같은 기간 대동법을 실시하지 않았던 경상도에 한약재 진상 부담이 늘게 됐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내의원 도제조는 효종(조선 17대 임금)에게 왕실용 약재 중 대부분이 경상도에서 보내오는 것이지만, 진상품 중 상당 부분의 품질이 떨어져 되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상납을 독촉했으나 약재가 오지 않고 있다면서 감사와 함께 미수된 약재를 바로 상납하도록 윤허를 받았다.
이에 당시 경상감사였던 임의백은 한약재 진상과 관련해 조정으로부터 추궁을 당했다. 그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고민 끝에 품질이 좋고 우수한 약재를 진상할 수 방법으로 한약재 시장을 열기로 했다. 향후 ‘약령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게 ‘대동법’ 때문이라는 관련설이 나온 이유다.
△약령시 위기와 이전 그리고 기억
조선 후기부터 발전을 거듭한 약령시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다. 해마다 2월과 10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시장에 모여드는 구매상이 무려 1만 명에 이른다는 1904년 당시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이 약령시는 위기를 맞는다. 1908년(융희 2년) 일본인들이 경상감염 객사와 주요 건물을 파괴했고, 당시 약령시는 장을 열 다른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옮긴 자리가 현재의 약전골목이다.
자리를 옮긴 약령시는 금세 옛 명성을 되찾았다. 1911년에는 ‘내왕하는 사람들의 어깨와 수레가 맞닿아 지나기 힘들 정도’라고 전해진다.
약령시의 위기와 이전 후 발전된 350년 역사는 이제 한눈에 볼 수 있다.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에 이 모든 이야기와 기억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애초 ‘한약재 상설전시관’으로 불렸다. 1985년 9월 약전골목 내 수협 남대구지점 2층에서 운영됐는데, 박물관으로 재탄생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약령시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의약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오감으로 즐기는 한의약 탐험공간 음양오행의 원리, 외양으로 보는 몸속 건강 등을 통해서다. 소양인·소음인·태양인·태음인 등 체질도 다양한 모형, 체험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어 다소 어렵게 보이는 한의약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약령시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3층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약재 전문거래시장인 약령시의 유래와 발전을 애니메이션과 입체모형으로 감상할 수 있다. 1910년대 약전골목을 재현해놓은 공간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약방과 치료하는 모습, 한약재 매매를 도와주는 객주집, 도매상들이 쉬어가는 주막, 약초꾼의 집 등이 전시돼 있다.
△과거 명성 이어가는 오늘의 약령시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 동안 ‘2021 제43회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펼쳐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비대면으로 행사가 거행됐으나 37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축제는 ‘대구약령시 희망 처방전(展)’을 주제로 거행됐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이 한방을 통해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전신청자 200명 모집에 1100명이 지원하며 조기마감됐던 ‘한방홈테라피’ 프로그램에서는 화상플랫폼 ‘줌’(Zoom)으로 참가한 시민과 전문가가 실시간으로 ‘약선떡볶이’, ‘한방샤워바’, ‘약초꽃화분’을 함께 만들어 보는 등 알찬 구성으로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올해 기준으로 363년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대구약령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 주최 측은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한방퀴즈왕’, ‘약 저울 달기 온라인 이벤트’, ‘황금경옥고를 찾아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온라인에서도 축제를 발전시킬 가능성과 확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한국기네스위원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 인증을 받은 약령시는 지속적인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나아갈 전망이다.
대구시는 비대면으로 개최한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지역 한의약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된 계기라며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대구약령시와 함께 한방산업이 더욱 발전해 나가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