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는 근현대 동서양 의료·선교 교육 역사의 장소
계명대 동산의료원 남쪽 입구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이국적인 정원과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지어진 당시 미국 선교사들이 거주했던 숙소들이며 거주하던 선교사들의 이름이 붙어졌다.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역사적으로 귀중한 건축물로 평가 받는 것은 물론 1999년 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동산의료원은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스윗스 주택은 선교박물관으로, 챔니스 주택은 의료박물관으로, 블레어 주택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생소한 근대 서양식 건물의 등장, 당시 선교사들의 주거·생활 양식 그대로 보존
의료박물관으로 변모한 챔니스 주택은 이곳 박물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큰 정원 왼쪽에 위치해 있으며 붉은 벽돌쌓기 2층 집으로 평면구성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다.
정면 중앙부에 목조로 된 현관을 지나 1층으로 들어가면 주 출입구에서 계단실이 있는 홀과 연결된다.
홀을 중심으로 거실·서재·식당이 배치돼 있으며 2층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침실이 나타난다.
외관은 동남쪽에 목조 베란다를 설치했으며 벽면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미국식으로 쌓았다.
창문은 결원 아치형으로 구성한 뒤 목재 오르내리창으로 돼 있으며 2층 박공지붕은 다락방형으로 네모난 석면 슬레이트를 마름모꼴로 이어 방갈로 풍으로 설치됐다.
붉은 벽돌로 쌓은 2개의 굴뚝이 돌출되게 설치되는 등 당시 생소했던 서양식 건물을 생생히 보여준다.
미국인 선교사들의 주거 양식과 당시 그들의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주택으로 평가 받고 있는 이유다.
해당 주택은 1911년 계성학교 2대 교장으로 취임한 레이너(R. O. Reiner·나도래)와 챔니스(O. Vaughan Chamness·차미수) 선교사, 사우텔(Chase. C. Sawtell·사우대) 선교사 등에 이어 마펫(Howard F. Moffett·마포화열) 선교사가 주거했다.
마펫 선교사는 1948년부터 1993년까지 45년 동안 동산병원장과 협동의료원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의 동산의료원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쳐 헌신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해방 후 극심한 혼란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60병상의 작은 병원을 1000병상의 대형의료원으로 성장 발전시켰다.
그의 아내 마가렛 마펫(Margaret D. Moffett) 여사는 사무·건축·조경 등에 탁월한 지식으로 마펫 선교사를 내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1년에 한번씩 대구를 찾아 1주일 정도 이 곳에서 생활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마펫 선교사는 2013년 미국에서 향년 96세의 일기로, 마펫 여사는 그보다 앞선 2010년 향년 9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의 유해와 함께 대구로 돌아와 은혜원에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근현대 서양식 의료 기기의 등장과 의학 발전을 한눈에
의료박물관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많은 동서양의 의료기기 등이 소장돼 있으며 의학은 물론 의료기기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안과·산부인과·신장과 등의 진료를 했으며 산부인과의 비중이 컸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있는 소장품 중 안과 검사용 현미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근대의학 도입 초기인 일제강점기에 사용한 안과기구로 세극등으로 광속을 비춰 광학적 절단면을 확대, 눈의 상태를 관찰하도록 돼 있다.
조명 광속의 폭과 길이를 변화시키며 눈꺼풀·결막·각막·전방·수정체·유리체를 검사할 수 있다.
부속 장치를 사용하면 안저검사까지 가능하며 안압계의 장착은 물론 전안부 사진촬영, 전방깊이, 각막, 수정체 두께측정에도 활용됐다.
1939년 만들어진 미생물배양기는 세균이나 세포가 자랄 수 있도록 적정한 온도나 습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영양분이 함유된 배지에 세균이나 세포를 넣은 후 배양기에 일정시간 보관하면 많은 양의 세균을 손쉽게 키워 낼 수 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까지 동산병원 임상병리실(현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사용된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원심분리기도 만날 수 있다.
원심력을 이용, 섞여 있는 액체와 고체, 비중이 서로 다른 액체 혼합을 분리하는 장치다.
휴대용 에테르 마취기는 1950년대부터 동산병원이 야전에서 사용했으며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상아청진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청진기는 1819년 프랑스 의사 라에넥이 발명했으며 처음에는 종이를 원통처럼 말아 사용했다.
이전에는 의사가 환자의 가슴 등에 귀를 댄 채 손으로 두르려 소리를 듣는 방식이었지만 가슴속 상태를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라에넥은 ‘청진기’라는 용어를 명명하고 1819년 논문을 발표, 세상에 알렸다.
이후 최초의 청진기는 한쪽 귀(편이용) 청진기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으며 1850년 미국인 카니만이 양 귀를 이용하는 청진기로 개량했다.
카니만이 상아를 청진기 귀부분에 사용한 후 20세기 후반까지 청진기 벨과 귀 부분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1950년대 미군이 기증한 이동식 마취기와 1940년대 외과 수술시 지혈을 위한 장비인 지혈대도 전시돼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금바늘 주사기는 바늘이 금장이며 1930년대 눈물관이 막혔을 때 막힌 부분을 뚫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양 의료기기는 물론 침통, 약재를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악연, 고체를 갈아서 가루약으로 만드는 유발 등 동양의학 기기도 함께 공존한다.
허준이 만든 우리나라 대표 의학서적인 동의보감도 보관돼 있다.
각종 기록물도 전시돼 있으며 조선간호부회보는 1923년 5월 창립된 간호단체의 기관지로,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백초약학은 해방 후 지방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약학 서적으로 총 31쪽으로 구성돼 있다.
동산병원 첫 번째 의무기록지도 잘 보관돼 있는데 환자이름은과 초진 일자, 주소 등이 담겨있으며 병록번호는 ‘NO 1’로 표기됐다.
아쉽게 코로나19 상황으로 의료박물관은 관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고 상황에 따라 다시 시민들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