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세오녀·마고할미·할무당 잇는 ‘섭리 구조’ 분석
달·비단·바다·돌로 이어진 포항만의 신화 경관…지역 문화콘텐츠 가능성 주목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포항이 ‘여신의 도시’라는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의 네 번째 강연에서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은 포항 일대에서 전승되는 수월관음·세오녀·마고할미·할무당 신앙을 하나의 ‘섭리(攝理)의 여신 구조’, 즉 태모(太母) 신화체계로 재해석했다.

산·바다·달·비단·돌다리로 이어지는 상징의 흐름이 포항 고유의 신화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포항은 대여신(太母)의 터전…여성신화가 집중된 드문 지역”

20일 포항 귀비고에서 열린 강연에서 박창원 연구가는포항을 “한국에서 보기 드문 여성 중심 신화가 집적된 지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포항의 신화 구조가 단순히 전설의 나열이 아니라,생명·창조·보호·치유를 담당하는 ‘대여신(태모) 신화권’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포항의 신화는 모두 ‘누군가를 살리고, 재난을 막고, 길을 열어주는 여성신’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동해라는 자연환경, 달빛 문화, 비단 제의가 겹친 포항만의 독특한 섭리 구조입니다.”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박창원 전 청하중학교 교장(구비문학 연구가)이 포항문화재단이 운영하는 2025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수월관음도–세오녀–귀비고 비단…달과 비단의 상징 연결

강연은 먼저 고려 수월관음도와 오어사 전승을 해석하며 시작됐다.

달빛 아래 물가에 앉은 관음보살의 모습은,포항이 ‘달(月)과 물(水)’의 지리적 상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여신 상징의 기원으로 보았다.

이어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귀비고 비단을 구조적으로 연결해“포항에서 비단은 단순한 직물 아닌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예단(禮段)”이라 강조했다.

비단은 고대에 ‘신에게 바치는 의식용 천’이라는 의미가 있었으며,포항 귀비고에 보관된 실제 비단은 이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온 귀중한 증거라는 것이다.

△호미곶 마고할미–교석초 신화…“살아 있는 수호여신 전승”

강연의 핵심은 포항 남구 일대에 집중된 마고할미 신화군이었다.

△장기 독산△흥해 오도△구룡포 노적바우△호미곶 교석초(橋石礁)

이 네 지점의 신화는 모두 돌을 옮기고 지형을 바꾸는 거대여신이 등장한다.

특히 교석초 마고할미 제사는 전국적으로 희귀하게“지금도 살아 있는 여신 제의”로 평가됐다.

박 연구가는 “파도가 높고 해난사고가 잦은 지형에서마고할미는 재난을 막고 안전을 지켜주는 실질적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채록된 구술자료에서는“마고할미가 울릉도에서 돌을 가져와 다릿돌을 놓았다”는 새로운 설화도 등장해전승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내연산 할무당–보경사 사적기…포항의 산신도 여성

강연은 포항 북구 내연산 계곡의 할무당 신앙과 보경사 사적기 속 ‘호랑이에게 업혀 이동해 신격화된 박씨 할머니’ 이야기도 섬세하게 조명했다.

이 신앙은 지리산 성모·소백산 다자구할머니 등 한반도 전역의 여성 산신 계열과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즉 포항의 산·바다·마을이 모두 여성적 존재가 보호하고 이끄는 ‘대여신 생태’를 이루고 있다는 해석이다.

△“섬·달·비단·돌…포항 여신 신화의 공통 코드는 재난 극복”

강연은 포항 신화의 핵심을 ‘섭리의 구조’로 정의하며 끝을 맺었다.

박 연구가는포항 여신 신화에는 △ 달(月): 여성·치유·고요 △물·바다: 이동·위험·구원 △비단: 신에게 바치는 최고 예단 △ 돌·다리: 재난을 막는 구조물의 상징 다음 네 요소가 반복된다고 정리했다.

이는 모두 자연재해, 바다 위험, 삶의 고비를 넘어서는 집단적 생존기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포항의 여신들은 모두 ‘길을 열고, 생명을 살리고, 풍랑을 잠재우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구조를 섭리(攝理)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번 강연은 포항의 신화가 단순한 향토 설화를 넘어 한국 신화지도의 주요 축으로 재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항문화재단은 앞으로 귀비고 신화학 아카데미를 지역 신화자원 발굴과 문화콘텐츠 개발의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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