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신문왕릉

경주시 배반동 453-1에 위치한 신라 31대 신문왕릉 전경.

경주 시내에서 울산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 길가에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사이로 잘 단장된 봉분을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오르니 양쪽으로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먼저 할머니 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얼마 전에 TV에서 경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분도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할머니인가 보다. 신문왕릉의 특징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을 해주셨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제31대 왕이 된 분입니다. 감은사를 지어 부왕의 호국정신과 삼국통일의 업적을 기렸고요. 당의 사신이 사천왕사를 보려하자 그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저 앞에 망덕사를 지어서 속였답니다.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만든 분이기도 하지요.

신문왕릉 혼유석.

능을 둘러싸고 있는 사다리꼴의 보호석 중, 남쪽을 향하는 곳에 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석실묘로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문을 뜻한다고 합니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안내판도 읽어보았다.

신라 신문왕릉(新羅 神文王陵)

신문왕릉 출입문 홍례문.

사적 제18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53-1

이 능은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김정명)이 모셔진 곳으로 경주의 동남쪽에 있는 낭산(狼山)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능은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으로 밑둘레 92m, 지름 29m, 높이 7.6m이다. 밑둘레에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은 뒤 사다리꼴로 생긴 44개의 보호석을 설치하였다. 동쪽에는 크고 긴 돌로 쌓은 상석이 있다.

신문왕은 문무왕(文武王)의 맏아들로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는데 힘썼고, 국학(國學)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왕릉의 앞쪽은 담으로 되어 있고 삼문으로 된 대문과 통하게 되어 있다. 대문의 현판에는 홍례문(弘禮門)이라고 적혀있다.

왼쪽의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잘 정돈된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봉분 위에서는 하얀 개망초꽃이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이곳에는 유난히 개망초가 많다. 심지 않아도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피어나는 개망초. 밭을 점령하여 농사를 망치게 하는 풀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해만 밭을 묵혀도 개망초밭이 되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 1910년도 이후에 퍼졌다고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고 그렇게 불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하다. 조그마한 꽃송이가 아기자기하게 피어서 밋밋한 능을 생기 있게 꾸미고 있지 않은가? 신문왕 때는 막 삼국통일을 한 신라가 번성할 때이므로 멀리할 필요는 없는 풀 같다.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는 무덤을 향하여 멋지게 가지를 뻗었다.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십이지신상이나 문인석, 무인석 같은 석물은 보이지 않지만 봉분 앞에는 꽤 오래 되었을 것 같은 기다란 혼유석이 놓여 있어서 잘 갖추어진 왕릉의 모습이다. 봉분 밑에는 벽돌모양의 돌이 5단으로 쌓여 있고 보호석이 빙 둘러져 있다.

사다리꼴로 받치고 있는 보호석을 둘러보며 해설사가 이야기 해준 門자를 찾아보았다. 남쪽으로 향한 곳에 정말로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가 있다. 이곳이 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는 곳이라! 글자 외에는 주변과 다른 게 없어 보여서 후대에 누군가가 새겨놓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견대를 보고 나서 '만파식적'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이 생각난다.

동해가운데 섬 하나가 파도를 따라 왔다 갔다 하였다. 그 섬에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는데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에는 비가 내렸다.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으므로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효소대왕 대에 부례랑이 살아 돌아온 기이한 일이 있어서 만만파파식적이라 불렀다. 이 만파식적은 바다 속 큰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내린 보배였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신문왕이 대나무를 가지고 오던 중 지림사 서쪽 시냇가에서 쉬고 있을 때 태자가 마중을 나왔다가 선물 받은 옥대를 만지며 부러워했다. 용 모양의 장식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넣었더니 곧바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는 못이 되었다. 그래서 용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림사 옆의 기림폭포에 용연이 있다.

능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들판 한 가운데 있는 망덕사지를 보았다. 오랜 세월 힘겹게 버티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서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허허벌판 망덕사지 위로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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