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사이 초라한 왕릉…권력의 덧없음 말해주는 듯
옥수수밭 사이 초라한 왕릉…권력의 덧없음 말해주는 듯
  • 권현구·장성희 작가
  • 승인 2013년 07월 25일 23시 09분
  • 지면게재일 2013년 07월 26일 금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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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효소왕릉
경주시 조양동 산8번지에 위치한 신라 효소왕릉의 전경.

한국광고영상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효소왕릉을 찾았다. 키 높은 옥수숫대가 무성한 밭이 즐비하다. 그 옆으로 심어놓은 콩을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민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 쪽으로 가니 철길이 나왔다. 건널목이 없는 철길을 조심조심 건넜다. 조금 더 올라가면 효소왕릉이 보인다.

효소왕릉은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주위가 온통 억새 풀밭이었다. 아마 가을이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자리 잡은 소나무가 하얀 억새 사이에서 푸름을 자랑하고 있어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그러면서 왠지 썰렁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근래에 벌초를 한 듯 깔끔하게 단장하고 있다. 어느 정도 위엄을 갖춘 왕릉의 모습이다. 왕릉도 찾아오는 이 없이 덩그렇게 놓여 있으면 단지 규모만 조금 클 뿐 쓸쓸한 무덤에 불과할 것이다. 전에는 볼품없이 보이던 혼유석도 낮지만 단아하게 앉아 세월의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왕릉을 장식했던 둘레돌

하지만 효소왕릉은 전후대의 왕릉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둘레돌 몇 개가 삐죽 나와 있고 다른 장식은 전혀 없다. 이 무덤이 정말 효소왕릉일까? 그 때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고 한참 발전하던 시기였는데. 왕릉을 이렇게 빈약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부왕인 신문왕의 무덤도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었고 다음 대의 성덕왕릉도 잘 꾸며져 있는데 효소왕릉만 이렇게 단출할 수 있을까? 현재의 신문왕릉이 오히려 효소왕릉일 것이라는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효소왕릉 앞 혼유석

신라 효소왕릉(新羅 孝昭王陵)//사적 제184호//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산8

이 능은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김이공)이 모셔진 곳이다.

토함산(吐含山) 서쪽에 있는 형제봉의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구릉 말단부 서쪽에 있다. 능은 밑둘레 57m, 지름 15.5m, 높이 4.3m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인 둘레돌을 돌렸으나, 지금은 몇 개만이 드러나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서쪽 가까운 곳에는 성덕왕릉(聖德王陵)이 있다.

왕은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력을 확충하고, 당나라·본과 문물을 교류하는 등 국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왕릉이 몇 안 된다고 하니 이 무덤도 제대로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효소왕릉은 두 번이나 도굴을 당했단다. 이래저래 가슴 아픈 왕릉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효소왕 때의 이야기 하나. 화랑을 사모하는 노래 '모죽지랑가'를 지은 득오의 이야기가 있다. 득오는 죽지랑의 낭도였는데 급간 익선에게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죽지랑이 구해주었다. 한때 도움을 받았던 득오가 죽지랑을 잊지 못하고 지난 날 화랑으로서의 모습을 생각하며 향가로 지은 노래가 바로 '모죽지랑가'다.

간봄 그리매

모단 것아 우리 시름

아람 나토샤온

즈지 살쭘 디니져

눈 돌칠 사이예???

맛보압디? 지조리

郞이여 그릴 마자매 녀올 길

다 굴허에 잘 밤 이시리?

학교 다닐 때 외웠던 것을 읊조려본다. 생각나지 않는 곳은 가지고 간 자료를 보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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