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자연에 관광객 매혹···법·교육계 등서 뛰어난 인물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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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야면은 봉화군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봉성면, 남쪽으로 봉화읍, 서쪽은 영주시 부석면, 북쪽은 춘양면 우구치리, 강원도 영월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방도 915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내성천의 상류지역으로 오전리에 중규모 저수지가 있어 수리시설이 양호하다. 수자원이 풍부하여 논농사가 잘되고 사과, 인삼을 재배한다. 주요 경제작물로는 벼, 사과, 고추, 표고버섯, 화훼 등이 있다.

천혜의 자원 백두대간 등산로와 오전약수, 축서사, 계서당 등 빼어난 자연경관과 문화관광자원이 풍부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문화유적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 지림사와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지방도 915호선을 타고 북지리를 지나다 보면 봉화군 유일의 국보인 북지리마애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지림사(현재는 수월암)는 신라시대 한절이라는 대사찰로 한때 27개의 부속암자와 500여명의 승려가 수도했다고 한다.

7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지리마애여래좌상은 국보 제201호로 높이가 4m에 달한다. 얼굴은 넓고 큼직하며 양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풍화 때문에 원 모습이 다소 손상됐다. 그러나 고졸한 미소가 전면에 나타나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불(佛)의 위엄이 잘 나타나 있다. 7세기 후반인 고신라 말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된다.

축서사 전경
축서사 전경
△ 축서사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文殊山)에 있는 사찰로 673년(문무왕 13)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다. ‘축서사 석양’은 2017년 봉화 8경에 선정될 정도로 장관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당시 인근 지림사(智林寺)의 주지가 산 쪽에서 상서로운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의상에게 알렸고 의상이 그곳으로 가보니 비로자나불이 광채를 발하고 있어 그 자리에 이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대웅전과 선실, 요사채가 있으며 보물 제995호인 봉화축서사석불좌상부광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석등, 삼층석탑 등의 유물이 있으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창건 당시의 것으로 대웅전 안에 봉안되어 있고 석등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계서당
계서당
△ 계서당

지방도 915번을 따라 가평리에 이르면 청백리이자 춘향전 이몽룡의 실존 인물로 추정되는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생가 계서당이 나온다.

한평생을 청백리(淸白吏)로 살다간 성이성(1595~1664년)은 물야가 고향으로 13살(1607년) 때 남원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부용당 성안의를 따라 남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춘향이의 사랑을 나누게 된다. 문집으로는 <계서유사(溪西遺事)>가 전한다.
물야면 창마 전통마을
△ 노봉(蘆峯) 김정(1670~1737) 선생이 터 잡은 창마전통마을

창마는 915번 지방도 옆 물야면 소재지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는 오록(梧麓)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앞에 큰 창고가 생기면서 창말 혹은 창촌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316년 전 의령 여씨와 여안 김씨가 살던 곳이지만, 1696년 숙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노봉 김정 선생이 풍수에 반해 터를 잡은 뒤 풍산 김씨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마을입구에서 마을 앞까지 소나무 숲이 약120m정도 형성돼 있는데 1688년경 김정 선생이 마을의 터를 잡을 때 좌청룡의 꼬리가 짧아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제주도의 솔씨를 가져와 심었다는 설이 있다.

해방 전만 해도 120여 가구가 넘는 부촌이었으나 현재는 40여 가구 70여 명이 살고 있으며, 고택 19동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 중기 사대부 가옥이다. 그중 장암정(藏庵亭: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50호)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조선말까지 과거 대·소과에 총 111명이 관직에 나갔으며 해방 이후 김재창 육군 대장과 김진섭 공군 소장, 김병탁 공군 준장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오전약수터
△ 오전약수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이다. 함유성분은 1ℓ당 유리탄산 1.01㎎, 마그네슘 47.2㎎, 칼슘 44.8㎎, 철 30.0㎎, 염소 10.6㎎ 등이다. 조선시대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됐다고 전해지며,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周世鵬)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약수터 옆 바위에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뜻의 주세붕의 휘호가 남아 있다.



□ 물야면이 배출한 현대사 인물

물야면은 공직자를 비롯해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갑수 부이사관은 세무대 출신으로 중앙대학교 무역학과 국제상학을 전공해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관세청 감사관실, 대구본부세관 감사담당관, 대구본부세관 운영과장, 관세청장 비서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실 부이사관으로 활동 중이다.

이주석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호주 국립대학교(ANU)에서 석사학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행정안전부 재정조정과장, 경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냈으며, 안전행정부 지방재정세제실장을 역임하는 등 지방행정의 전문가로 꼽힌다. 2016년 6월부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권상장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는 경북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미국 미주리 대학교 및 일리노이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계명대학교 무역학과장, 재무처장 등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또 지난 2009년에는 재구 봉화군향우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봉화군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재 금융경제선물연구원 원장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창기 국장은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서울청 감사관, 부산청 징세법무국장, 중부청 징세송무국장 중부청 성실납세지원국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으로 풍부한 세법지식과 시원시원한 성격뿐만 아니라 업무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이교림 변호사는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일선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수원,서울 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냈으며 1999년부터는 이교림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홍대 전 법제처장은 제10회 행정고시를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후 2000년 법제처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국세청, 재무부, 법제처에서 29년간 정통관료 생활을 했다. 이후 동양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의 산삼이라는 책을 내며 산삼 박사로 통할 정도로 산삼연구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김강식 전 교장은 30여년을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했으며 1995년에는 경상북도교육위원회위원으로 활동했다.

류춘수 (주)이공건축사 회장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로 1970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85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이공건축’을 세웠고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국내 최초로 막 건축물로 세웠으며 1992년 국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중국 해남시의 868타워를 계기로 세계적 설계가로 발돋움했다. 2002년에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했다.

김재창 사령관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8기로 군에 입문해 육군본부 제6군 군단장 한ㆍ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겸 지상군구성군 사령관, 국방개혁위원회 위원장, 제4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이사를 역임했다.

황병일 이사관은 헌법재판소 심판과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보자료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동욱 실장은 제3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보건복지부에서 잔뼈가 굵은 보건통으로 보건복지부 장관비서관, 보험급여과 과장, 대변인, 보건의료정책관 건강보험정책국 국장, 인구정책실 실장으로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장애인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은 1953년생으로 물야면 가평에서 출생해 사법고시 합격 후 법무부 검사장을 역임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은 성격이 강직하고 적극적이며 정책판단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문산 기자
박문산 기자 parkms@kyongbuk.com

봉화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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