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가는 곳마다 울긋불긋 단풍병풍···가을의 품에 안기다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 오체정 앞길은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단풍으로 붉거나 노랗거나 주황색으로 타오르고 있다. 1차선 도로 양쪽에는 사과밭이 펼쳐져 있고 사과밭은 양단하며 뚫고 나온 도로의 양쪽에는 벚나무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벚나무 단풍은 제 몸을 불살라 한 두 가지 색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추풍낙엽으로 낙엽비가 우수수 쏟아졌고 떨어진 낙엽은 도로 위에서 쇳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오체정이 있는 개일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다. 오체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자초산,남쪽에는 보현산이, 북쪽에는 대마산이 막아서 있다. 개일 굼말 능담 등 자연 마을 중에서 본 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개일은 해가 열리는 곳, 산골 마을의 통로 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생각된다. 오체정이 있는 곳은 개일리에서도 정자 마을이다.
아가위꽃
꽃받침 드러나 보이지 않겠는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중에
형제만한 사람 없다네
(중략)
형제가 집안에서 다투어도
밖에서는 힘써 막아주며
좋은 친구가 있다한들
진정으로 도와주는 이 없다
(중략)
맛있는 음식으로 너를 불러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즐긴다해도
형제가 모두 모여야 하고
아이처럼 화락하고 또 사랑스러워 진다
처자식이 잘 어울려
금슬을 울리는 듯 하여도
형제가 화합해야
아이처럼 화락하고 또 즐거워 진다
그대 집안의 질서를 잡고
그대 처자식이 즐겁게 해야 한다
이것을 찾고 이것을 도모한다며
진전 그렇게 될 지어다.
- 시경 소아 ‘상체지화’중에서
오체정기는 후손 상현(相鉉)이 썼다. “아! 운강(雲岡)공께서 영양(英陽)으로부터 청송에 들어올 때에 십 년 난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부평초처럼 백리 타향에 오셔서 가시밭을 헤치고 이 땅에 정착하여 삼세를 지나 성재(誠齋)공에 이르러 다섯 아들을 두었다. 모두 재질이 명민하여 완연히 사씨(謝氏) 집 뜰의 지초와 난초 같아서 한 책상에서 공부하여 날마다 진취하였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에게 편지하여 성리학을 논하였고 류승현(柳升鉉)에게 격서를 띄워 충의를 일깨웠으며 목상(睦相) 목래선(睦來善)에게 글을 보내 당쟁의 화의를 말하였다. 이 두어 가지를 볼 때 평소의 인격과 학문을 알만하다. 위대한 글과 아름다운 자취가 드러낼 만 한 것이 많지만 자손이 힘이 없어서 다만 한 정자만 이룩하였다. 하지만 규모가 작아서 향사를 하지 못하니 애석하도다. 그러나 터를 천년 묵은 깨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곳에 지었으나 문인들과 지나는 사람들이 다 좋은 곳이라 하니 하늘이 감추었다가 주심이 아니겠는가. 오체정이라 이름 하니 중세에 빛났음을 알 수 있다. 집의 이름을 만수(萬壽)라 하였으니 끼친 음덕이 길고 길어 형제간에 노래하고 시 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길이길이 송백이 무성하듯 하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