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펼쳐지는 설산의 장관
깨끗한 순백의 물결에 '매료'
사람도 자연도 하늘을 닮아…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Ⅱ

트레킹의 출발점 '나야풀'로 출발

 

11월 15일, 카트만두의 아침은 파란하늘 만큼이나 상큼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햇살이 안나푸르나호텔 앞을 비추고,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 행보가 부산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인 이곳 공기는 맑고 건조하다. 일찍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을 먹고 7시30분 호텔을 나섰다.

 

경비행기를 타기위해 국내선 공항까지 가야 한다. 공항에 이르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도로는 잘 정비되지 않았지만 소형차 위주인 택시들이 전에 보다 많아진 것 같다.

 

포카라로 가는 경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 만년설 연봉.

안나푸르나산군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40여분 거리인 '포카라(pokhara)'에 도착해야 한다. 9시에 떠나는 경비행기에 탑승한 대원들은 다소 상기된 얼굴들이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사뭇 흥분된 듯하다. 지난해에 참가한 회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경비행기 좌석 중 오른쪽 창가에 앉는 게 볼거리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에베레스트산군(群)인 쿰부히말을 가기위해서는 '루클라' 라는 곳까지 경비행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왼쪽에 앉아야만 히말라야 설산 파노라마를 만끽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편인 서쪽으로 가기 때문에 비행기 오른쪽 창가가 더욱 좋을 것이다.

 

이륙에 앞서 예쁜 스튜어디스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솜과 사탕을 나눠준다. 솜을 받아든 회원들이 의아해 하지만 필자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경비행기가 이륙한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한다. 솜이 필요한 때다.

만년설의 연봉이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현지 어린이와 함께한 필자.

 

너른 분지로 형성된 카트만두 상공을 날아 서쪽으로 향하는 비행기속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오른쪽 창으로 펼쳐지는 히말라야 설산의 연봉 파노라마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으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설산의 장관에 탄성조차 나오지 않는다. 흰 눈으로 치장을 한 연봉들이 선계(仙界)에 들어선 미천한 인간들을 압도하고 있다. 대원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아연실색하는 모습이다.

 

조용하던 기내가 술렁이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멀리 오른쪽 쿰부히말의 연봉부터 랑탕히말, 기네스히말, 안나푸르나히말로 이어지는 만년설의 웅장한 파노라마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눈높이를 같이하며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감동의 순간이 바로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첫 롯지(비레탄티)에서 쉬고있는 대원들.

 

하늘에서 보는 만년설의 대자연이 삭막한 현실세계를 떠나온 우리를 더욱 정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 맑고 깨끗한 순백의 물결에 우리는 매료되고 순화되어간다. 꿈같은 파노라마도 잠깐, 언제 왔는지 비행기는 포카라 비행장에 앉는다. '포카라(pokhara)!' '연못'을 의미하는 네팔어 'Pokh ari'에서 유래된 '포카라'는 해발 800m에 위치한 네팔 제2의 도시로 아열대기후를 가진 따뜻한 분지이다. 이곳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페와 호수와 네팔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산, 마차푸차레(Machhapuc hhare·6천993m)가 순백색으로 하늘높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우뚝 솟아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네팔서쪽의 히말라야 산들을 등산하거나 트레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카라를 거쳐야 하며 그 출발점인 곳이다.

 

포카라에서 나야풀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대원들과 기념촬영.

 

 

안나푸르나산군의 성스런 출발선에 서다

 

포카라 공항에서 짐을 찾아 버스에 옮겨 싣고 차량 이동의 종착지인 '나야풀'로 향한 시간이 오전 10시.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 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평화로운 들녘과 마을들이 꼭 우리나라에 온 것 같이 친근감이 든다.

 

히말라야의 동과 서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동쪽은 시작부터 고도가 높고 바로 산으로 진입하는데 이곳, 서쪽지역은 그렇지 않다. 넓은 들판과 물줄기가 낮은 고도와 함께 부드럽고 따스한 맛이 도는 것 같다.

 

굽이굽이 돌아 높은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었다. 만년설의 연봉이 푸르디푸른 하늘과 맞닿아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오늘 우리가 그 수채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길가에 핀 분홍색 꽃잎을 한 '브이유' 꽃나무가 이국의 방문객들에게 고갯짓을 하며 간들거린다.

 

1시간30분의 이동 끝에 도착한 '나야풀'(Nayapul)은 먼지가 풀풀 나는 시골 마을이다. 여기서 부터는 도보로 산행을 해야 한다. 간단한 장비와 옷가지만 챙겨 배낭에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산행 준비를 한다. 카고 백은 여기서부터 현지 포터(짐꾼)가 메고 가게 되어 있다. '나야풀'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포터는 여기서 고용한다. 포터뿐만 아니라 짐을 나르는 수단으로 조랑말이 많이 동원되기도 해 이곳 나야풀은 사람과 동물이 뒤섞인 혼잡한 시골장터이다.

 

짐을 정리하다 모자에 꽂아둔 오클리 고글이 땅에 떨어졌는데 미처 보지 못하는 사이, 지나가던 서양여자가 밟아 버렸다. 출국하면서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큰 맘 먹고 고가품을 구입했는데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망가뜨렸다. 기분이 영 아니다. 시작 초반에 액땜 하는 거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랑말 인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나야풀 마을 가운데를 가로 질러 벗어날 즈음에 커다란 현수막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출발점임을 안내한다.

 

우리가 택한 '생추어리 코스'는 나야풀에서 시작해 '모디콜라(Modikhola)강'을 따라 계곡을 끼고 오르는 코스로 사울리바자르-뉴브릿지-촘롱-도반-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경유해 최종 목적지인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정통 라인으로 이어진다.

 

안나푸르나 가족은 네 자매와 한 명의 남동생으로 이름 지어져 있으며 맏언니격인 안나푸르나 1봉(8천91m)이 가장 높게 솟아 있으나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숨은 봉우리다.

 

그 옆으로 안나푸르나 3봉(7천855m), 안나푸르나 4봉(7천525m) 맨 끝에 안나푸르나 2봉(7천937m)이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뚝 떨어져 있다고 한다.

 

네 자매의 남동생인 안나푸르나 사우스봉(7천219m)은 맏언니 안나푸르나 1봉의 치맛자락에 붙어 맏언니를 감싸고 있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위치한 곳은 안나푸르나 사우스봉과 안나푸르나 1봉 앞인데 고도가 4천130m에 달하는 '생추어리(Sanctuary 聖所)'가 바로 이곳을 지칭한다.

 

나야풀에서 12시에 출발해 40여분 만에 도착한 곳이 모디콜라 강가에 위치한 비레탄티(Birethanti)마을이다. 제법 깨끗한 롯지도 몇 개 있고 갈라지는 길목이라 트레커들이 많다. 여기에서 산행 중 첫 점심을 먹으며 반가운 사람도 만났다. 우리 일행의 전 일정 요리를 책임지는 쿡(cook)대장 '나왕 보떼' 가 필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안으며 맞아 주었다.

 

우리를 위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왕'은 지난해에도 우리와 함께 한 한국요리 전문가다.

 

한국원정대와 오랜 세월 함께한 경력으로 쿡 대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말도 곧잘 하고 우리가 원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 내는 신기(神技)를 지닌 사람이다.

 

점심으로 라면과 밥이 갖가지 반찬(김치, 무 무침, 깍두기, 젓갈 등)과 함께 나온다. 라면에는 계란도 풀어 넣고 국물도 간이 입맛에 맞았다.

 

산중에서의 첫 점심을 기분 좋게 먹은 대원들이 푸른 하늘 아래 하얀 첨탑처럼 솟아난 마차푸차레봉을 감상하며 느긋한 한낮을 즐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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