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소중함 배운 감명깊은 경북산악연맹 안나푸르나 트레킹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 Ⅷ

또 한 순배가 돌아가고 점점 밤은 깊어만 간다. 스태프들이 먹고 쉬는 곳으로 가 '파상 남겔'(가이드 대장) '나왕 보떼'(쿡 대장), '파상'(포터 대장), '옹추1', '옹추2'등과 일 배를 더하고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이인 대장과 박재석 이사, 이재동 계장 등 이제껏 수고를 아끼지 않은 대원들에게도 일배를 권하고 안나푸르나 산중에서 마지막 밤이 아쉬움 속으로 지나갔다.

 

11월 20일, 새벽부터 포터들이 부산을 떤다. 오늘로써 트레킹이 끝나기 때문에 모든 짐들을 다시 정리한다. 어제 밤 무리를 한 것 같은데 다들 멀쩡하다.

 

떡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7시에 '촘롱'을 출발했다.

 

내려가는 돌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1시간을 60도 경사의 내리막 돌계단을 걷는 맛이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경수 박사가 내려온 계단수가 2천470개였다고 한다.

 

마차푸차레봉

'촘롱'을 올라올 때 2천544개와 '지누단디'로 내려갈 때 2천470개라면 오르고 내려가는 돌계단만 5천개가 넘는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누단디'에서 무릎을 식히고 다시 걷는다.

 

'뉴브릿지'에서 레몬차로 힘든 가슴을 쓸어내리며 박재석 이사의 노랫가락에 또 한 번 감동의 박수를 친다.

 

산길에서 만난 이곳 주민들이 오늘은 무슨 기념일인지 고운 옷들을 차려입고 나들이를 가는 것 같다. 근처 사원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지 즐거운 표정들이다. '사울리 바자르' 롯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있는 마을 학교에서 학생들이 야외수업을 하는 게 보인다. 둥글게 모여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있고 학교 운동장 입구에는 지나가는 트레커들에게 성금을 받는 성금함과 방명록이 놓여 있고 당번 학생이 한 명 서있다. 있는 돈을 성금함에 넣고 경북산악연맹 이름을 기재하니 학생이 웃으며 인사한다.

네팔처녀

 

이 깊은 산 속에도 배움의 열기는 도시 못지않다. 네팔은 인도권이라 영어가 기본이다. 교실 안에는 조그마한 어린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여선생의 모습이 진지하고 열성적이다.

 

12시 30분에 트레킹 첫 숙박지였던 '사울리 바자르'에 왔다. 네팔어로 '바자르'는 장(場)터를 뜻한다. 그래서 '바자르'가 붙은 지명은 대개 상가나 장터가 있는 곳이다. 쿰부히말의 중심지인 '남체 바자르'는 큰 장터가 지금도 존재한다.

 

티베트 쪽과 네팔 쪽의 물물 교환이나 물자 교역이 '바자르'에서 행해지고 있다.

모디콜라강변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서양인들.

 

'사울리 바자르'도 상점들이 몇 있어 첫날 공연했던 장소는 장터로 변해있다. 장식 허리띠를 직접 꼬는 여자들의 손놀림에 넋을 잃고 본다. 며칠 전 이곳 주민들과 흥겹게 놀았던 기억에 모두가 반갑다.

 

산중 마지막 점심은 '알루(감자)'와 비빔국수에 계란국이 곁들여 나온다. 쿡 대장 '나왕 보떼'가 만들어 주는 마지막 음식이라 더 맛이 있고 애착이 간다. 후식으로 귤까지 내준 '나왕'을 불러 여행수첩에 사인을 받았다.

 

네팔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로 자기 이름을 적는다. 주요 스태프들 한 사람 한 사람씩 사인을 받았다. 가이드 대장 '파상 남겔 세르파', 포터 대장 '파상 세르파', 가이드 '옹추1', 보조가이드 '옹추2' 외국인에게 사인해 주는 게 처음인지 쑥스러워하며 웃는 모습들이 순수하다.

고운옷을 차려입은 할머니

 

만남의 소중함을 여기서도 배운다. 풍요의 땅, 안나푸르나에서 한국인의 열정과 네팔인의 순수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울리 바자르'를 출발하여 '나야풀'로 향한다. 여기서 부터는 길이 차량이 다녀도 될 만큼 넓다. 멀어져가는 마차푸차레봉의 중턱에 구름이 띠를 두르고 있는 평화로운 장면이 더욱 운치를 더해준다.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모디콜라' 강가의 '비레탄티'에서는 롯지 앞 공터에 여러 동의 텐트를 치고 있는 서양인들이 손을 흔든다.

포카라에 있는 한국 음식점

 

은빛 머릿결이 빛나 보이는 나이든 여인네의 환한 웃음이 더욱 싱그러운 모습이다.

 

오후 3시, 한 무리의 조랑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나야풀'로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 '나야풀' 버스대기소에 도착했다.

 

칼칼한 목을 축이려고 맥주를 시킨다.

 

'Everest beer'가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속에서 꿈을 꾸다 깨어났다.

야외수업

 

동화의 세계 속에서 헤매다 온 것 같다.

 

경북산악연맹의 '2007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대장정은 끝이 났다.

 

대원들 모두 하나 같이 기쁜 마음이다. 먼지가 풀풀 나는 '나야풀' 도로가에서 시원한 맥주를 돌리면서 6박 7일간 산중생활 마무리를 짓는다.

 

"모두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영어수업

단장으로서 필자의 마음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에 만족할 따름이다. '안나푸르나' 여신들의 보살핌을 고맙게 생각하며 '포카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오후 5시, '포카라'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다.

 

현관입구에서 호텔 여종업원이 네팔식 붉은 곤지를 이마에 찍어준다. 행운을 비는 표시다.

 

김용운 명예회장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건강해 보이고 '포카라'에서 여러 군데를 돌아보신 것 같다. 호텔로비에서 일주일동안 깎지 않은 수염 난 얼굴을 기념 촬영했다.

 

호텔방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샤워와 면도를 하고 나니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모두들 새로운 모습으로 모였다.

 

'포카라'에 있는 한국음식점에서 만찬을 가졌다.

 

페와호수 가에 있는 '서울 뚝배기 식당'이다. 이번 만찬은 푸짐한 삼겹살 구이로 시작했다.

 

구수한 된장국도 나오고 상추쌈에다 매운 고추도 나온다. 그간의 고생을 서로 위로하면서 몇 순배 돌았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우리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 당연히 한국인이 주인 이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한국인은 없다.

 

종업원들이 전부 현지인이고 우리말이 서툴러 서빙이 빠르지 못해 불만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식당 내에는 우리말로 된 메뉴 판과 종교단체의 방문기념 액자 등 한국 일색인데 정작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한국인이 주인이라 는데 통보이질 않아 찾았더니 식당 옆 사무실에 있단다. 회식이 끝나갈 무렵, 별채 사무실에 들러 주인이라는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식당에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기분이 상해 한마디하고 나오니 따라 와서 미안하단다.

 

자기들은 운영만 하지 주인이 아니란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우리 일행이 30여명이나 되는데 주인이 나와 보지도 않는다는 건 말이 아니다. 장사를 잘못하는 것 같아 딱했다.

 

레이크사이드에는 관광 상품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대원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포카라의 다운타운을 거닐며 이국의 땅을 즐겼다.

 

한국 노래방이 있어 친구 양촌과 이경수 박사, 산적 윤병운 사장, 이인 대장 손대식 대원(삼일 건설사업부)과 함께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한때를 즐겼다. 그곳 매니저라는 네팔인의 하소연이 기가 막혀 잠시 우울함도 있었다.

 

'럭시만'이라는 이름의 매니저는 한국 말을 능통하게 하는데 몇년 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갔다 어느 중소기업에서 일을 했는데 1년 동안 임금도 못 받고 어려운 생활을 한적이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3년 정도 있다 돌아와서 한국인 식당과 노래방의 매니저를 하고 있단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사연에도 '포카라'의 밤은 깊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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