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문화 살아 숨쉬는 전통시장으로 나들이 떠나볼까

경주 안강전통시장

경주권역 내에 있으면서도 시내와 다소 거리가 있는 안강읍의 시장인 안강전통시장은 1923년부터 운영되어 오고 있다. 현대화된 시장 건물이 크게 들어서 있으며,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는 등 상설시장으로의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으나 매월 끝자리 4일, 9일이 되는 오일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제대로 활성화된 시장 구경을 할 수 있다.

경주 안강전통시장 전경

안강읍의 도시 규모에 비해 시장은 꽤 크고 장날이 되면 방문자들도 제법 많다. 특히나 넓은 안강평야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농산물들이 풍요롭고,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어서 싱싱한 해산물들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경주 안강전통시장 모습.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들이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던 적이 있다. 실제 읍면 단위의 농촌의 재래시장들은 많이 축소가 되었고, 사라지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등으로 전국의 재래시장은 깔끔하게 정비가 되었고, 동선도 편리해졌으며, 비 가림 시설 등 편의 시설 확충으로 인해 시장 이용도 한층 편리해졌다.

경주 안강전통시장 모습.

그래도 재래시장은 여전히 불편하다. 대형 마트처럼 깔끔하고 접근성이 좋은 주차시설이 빈약하며, 쇼핑하기에 쾌적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카트를 끌고 다니기에도 불편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고, 추운 날과 더운 날에도 그 온도를 온전히 느껴야 한다. 상품들에 정가가 적혀 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때론 상인들과 옥신각신할 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불친절함은 재래시장이 좀 더 많은 고민을 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사람들이 왜 재래시장을 외면하고 대형 마트만을 찾아가느냐고 한탄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화 사업 등으로 하드웨어만 정비한다고 시장이 갑자기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통시장만이 가지고 있고 또 육성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일 것이다.

경주 안경전통시장 모습.

사시사철 구분 없이 다양한 농산물을 볼 수 있는 대형마트와는 달리 전통시장은 제철 농산물을 볼 수 있다. 물론 하우스 재배 등으로 제철이 아닌 농산물이나 과일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이긴 하다. 하지만 계절의 흐름 등을 기온 차이와 사람들의 옷차림만이 아닌 제철에 생산되는 농산물로 계절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시장에 무와 배추가 깔리기 시작하면 김장철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고, 요즘 포도가 제철인지 사과가 제철인지 알게 되면 좀 더 싱싱하고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하다.

시장표 의류들.

재래시장에 가면 알록달록한 의류들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시장을 찾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주렁주렁 전시되어 있는 예쁜 옷들을 보며 손주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시장 제품이 아닌 비싼 메이커 제품을 입히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이 단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트랜드는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까만색 ‘비닐봉다리’ 속에는 싸구려 옷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주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사랑, 부모님를 생각하는 자식들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이 까만봉다리의 무게감은 샤넬이나 구찌 못지 않은 묵직함을 가지고 있다. 전통시장은 세대 간에 단절된 콘텐츠를 연결하는 접점이기도 하다.

빈대떡

전통시장은 다양한 볼거리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핵심 아이템은 다양한 먹거리일 것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도 푸드 코트가 있지만 전통시장의 음식들은 그 결이 다르다. 깔끔하게 브랜딩 된 프랜차이즈 음식들은 아닌, 어찌보면 길거리 음식 같은 B급 음식들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전통시장만의 문화이고 전통시장만의 브랜딩이다.

각종 튀김

필자는 피자나 햄버거에 익숙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시장에 데리고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의 아버지가 시장에 가면 늘 사주셨던 돼지국밥의 든든함과 어머니가 장날이면 사주셨던 설탕 도너츠는 음식 그 이상의 추억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가치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의 부모님의 마음을 가슴속에 담아본다.

가마솥 통닭

온갖 양념과 향신료로 점철된 작금의 치킨들과는 다른, 생닭을 그대로 기름에 튀겨낸 ‘옛날통닭’의 순수함을 아이들이 먹어봤으면 좋겠다. 두 어 개 집으면 몇천 원이 훌쩍 넘어가는 프랜차이즈 분식점이 아닌 시장 가판대에 푸짐하게 쌓여 있는 각종 튀김들의 넉넉함을 아이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깔끔한 테이블에 앉아서 친절한 서빙을 받지 않고 매대 앞에서 서서 오뎅을 집어 먹는 색다른 불편함을 아이들이 경험해봤으면 한다.

족발

물건을 팔기 위해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을 보지 못해 ‘갑질’을 하곤 한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음을 느끼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모든 콘텐츠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다.

시장표 토스트

전통시장은 진화하고 있다. 전통만을 고수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입맛이 바뀌어버린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청년몰을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고,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먹거리 콘텐츠도 들여오고 있다. 전통의 음식들과 신세대들의 음식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세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좁은 시장길을 넓히고 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장을 본 물건들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밤이 되면 여지없이 어두워지는 시장에 불을 밝히고 야시장을 운영하여 좋은 반응도 이끌어 내고 있다. 때로는 공연과 연주회, 체험거리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의 결합을 통해 종합 문화 체험 공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자리를 잡으며, 점점 재래시장을 낯설어하는 젊은 층들의 발걸음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찹쌀 붕어빵

전통시장에는 우리네 문화가 살아 있다. 전 세계를 점령한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 등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소비시장의 틈바구니에서 꾸준히 우리의 것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각 지역별로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모아둔 종합 전시장이며, 시장마다 개성이 넘치고 다양한 지역색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직접 생산한 1차, 2차 생산품들을 교환하는 노동의 가치가 충만한 곳이며, 상인과 손님 모두가 갑이 되어 왁자지껄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도시화된 시스템 속에서 찾기 힘든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변하지 않아야 할 사람에 대한 가치를 간직한 곳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재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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