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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3. 바람 쐬고 햇볕 쬐며 잠시 생각의 전원 끄고 무념무상으로
[팔공산을 걷다] 3. 바람 쐬고 햇볕 쬐며 잠시 생각의 전원 끄고 무념무상으로
  • 임수진 소설가
  • 승인 2020년 02월 27일 21시 48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2월 28일 금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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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뻗은 소나무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선 숲길에서 청빈의 삶을 그리다
자연학습원 미니 습지

팔공산 자연식물원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둘레길 1구간 시작점이랄 수 있다. 미니 습지에 파란 하늘과 구름이 내려앉아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개체수와 자생지가 감소하여 점점 사라져 가는 희귀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이곳엔, 팔공산 자락 아래서 서식하는 향토 특산 식물로 가득하다.

자생식물원 종합안내도

물론 지금은 황량한 벌판에 갈대만 서걱댈 뿐이지만, 바람이 순해지고 햇볕이 간질간질 내리쬐면 기분이 좋아진 대지의 여신이 날마다 꽃을 출산할 테고, 그때는 아무 때나 와도 눈이 황홀하겠다. 노랑무늬붓꽃, 만자바람꽃, 병꽃나무와 더불어 여러 곤충이 어우러질 봄날을 기다리며 북지장사 가는 숲길로 들어섰다.

오솔길
고요히 엎드린 둥근 원

오솔길은 낙엽송이 차곡차곡 쌓여 푹신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그림책 같았다. 갈참나무, 소나무, 잣나무가 빽빽하게 모여 등이 휘면 휜 채로 어딘가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살아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잔가지가 늘어나 하늘을 가리지만, 햇볕을 더 많이 욕심낸 갈참나무가 소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새가 집을 짓겠다고 하면 팔 한쪽을 선뜻 임대해 주는 게 숲의 인심이다.

잘생긴 소나무 군락의 화상적인 배열
자연식물원 데크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조금씩 양보하며 가지 사이로 들어온 햇볕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그 작은 희생과 배려가 숲을 숲이게 하고 나무를 나무이게 하나 보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볼 땐 숲만 보여 알 수 없던 생존의 법칙, 알고 보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공생의 기쁨은 자연이 한 수 위인지 모른다.

여행객의 쉼터.

다시 길 위에 섰다. 달처럼 고요히 엎드린 봉분과 마주했다. 죽은 자의 집이 햇살의 축복을 받으니 산 사람의 집보다 아름답다. 세모나 네모가 아닌 하나의 완벽한 원(圓). 원이 주는 편안함 위로 이따금 바람이 지나가고, 근처 나무의자엔 고요가 내려앉았다. 잠시 생각의 전원을 끄고 무념무상으로 있어 본다. 인간의 몸도 때때로 과부하가 걸린다. 그럴 때 재부팅해 주면 공기가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짧은 휴식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우둘투둘한 산길 끝에 허름한 농로가 나왔다. 이리저리 찢긴 비닐이 구획이 일정하지 않은 흙길 옆 목초지 위에서 펄럭였다.

바람의 길

곧이어 무엇을 재배하는지 알 수 없는 작은 텃밭과 논두렁을 통과하니 포목과 함께 바람의 길이 나왔다. 앞뒤 막힌 곳 없어 바람이 쌩쌩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붙여진 이름, 참 예쁘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본 북지장사
북지장사가는 산마루.

북지장사 가는 길은 오른쪽이었다. 이제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바람 소리는 높이 오를수록 기운찼다. 언덕마루에 도착하니 까마득히 먼 아래로 북지장사가 보인다. 다시 산마루를 반 바퀴쯤 돌아 북지장사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꾸미지 않음이다. 용호문 단청은 시간 속에 낡아 나무가 삐죽삐죽 드러났다. 세월에 녹아 드러난 뼈대를 바라보는 심정은 뭐랄까, 무한의 한계랄까. 좁은 문사이로 지장전(地藏殿)이 보이는데, 현수막이 걸려 있어 사진의 각도가 영 나오지 않는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

보물 제805호인 대구 북지장사 지장전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소지왕(新羅 炤知王) 7년(485년)에 극달화상(極澾和尙)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高麗時代) 이전에 지은 것으로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이다.

석조지장보살좌상.

대웅전 뒤뜰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불상은 왼손에 보주(寶珠)를 쥐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은 아래로 향한다. 온화한 계란형 얼굴에 눈썹은 초승달처럼 가늘고 눈은 반쯤 뜬 상태이다. 머리 형태나 손에 보주를 든 걸로 보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용호문
용호문 사이로 보이는 지장전

삼국유사에 ‘공산 지장사’로 기록될 만큼 옛날엔 규모가 큰 곳이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일까. 이곳 역시 임진왜란 때 소실의 아픔을 겪었다. 후에 복원이 되면서 대구·경북 사람들은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남지장사(684년 신라 신문왕 4. 양한(良漢)이 창건)와 대칭되는 곳에 있다하여 북지장사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찰 이름으로 굳어졌다.

삼층석탑

대웅전 앞마당에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동·서 방향에 1기씩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인 이중 기단에 3층 탑 형태이다. 일이 층 기단 옆 돌판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 모양과 중간 버팀 기둥 모양을 돋을새김 했고 지붕은 4단의 받침과 1단의 괴임 형태이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요사채 옆 화림원에 청빈(淸貧)의 덕에 관한 글이 현수막에 걸려 있어 옮겨 적어 본다.

유형문화재제6호인 삼층석탑

인간이 물질에 집착하게 되면 물질이 인간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된다. 물질은 다만 생활의 도구일 뿐이다.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어느덧 물질의 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비로소 청빈의 덕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안양교를 지나 다시 속세로

스님도 불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마당은 휑뎅그렁하다. 물질에 의연하기 쉽지 않지만 행복의 질을 높이고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잠시나마 청빈의 삶 언저리를 기웃댔다는 안도감도 잠시, 다시 속세로 향한다.

공생의 기쁨을 아는 숲.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앞서 지나온 숲이 오밀조밀한 지형에 어울리는 순박한 동산이었다면 이곳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 전시장이다. 무엇보다 적송의 반듯반듯한 모양새가 여행자를 환대한다. 솔바람이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군락의 환상적인 배열에 환호하길 여러 번. 이곳에서라면 정신의 문이 닫힐 염려 따윈 잠시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임수진 소설가
임수진 소설가

◇주변 탐방
◐숲 해설 프로그램 안내

△숲해설
장소 : 탑골(동화지구) 자생식물원(갓바위지구)
방법 : 전화, 현장 접수

△숲체험
장소 : 탑골 및 자생식물원 자연체험장(2시간)
인원 : 회당 20~50명 이내
방법 : 전화(한 달 전 예약)
※매일 2회(10:00/14:00)운영, 누구나 신청 가능
문의처 및 예약 : 054- 981-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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