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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10. 삼존석굴과 마주한 솔숲, 소나무의 장쾌한 기개가 심신을 편안케 해
[팔공산을 걷다] 10. 삼존석굴과 마주한 솔숲, 소나무의 장쾌한 기개가 심신을 편안케 해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0년 06월 04일 21시 04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6월 05일 금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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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석불의 위엄 닮아 기개 넘치는 울창한 소나무숲 장관
국보 109호 군위 삼존석불

요 며칠 비가 참 잦다. 가뭄 해소는 되었지만 사진을 찍고 도보여행을 계획한 사람에게 비는 낭만적이지마는 않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하고, 돌발적인 일로 인해 스릴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고생을 좀 더 한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홍천뢰 장군 묘

둘레길 8코스는 윗산당마을을 시작으로 홍천뢰 묘를 지나 응추리와 각골을 거쳐 군위 삼존석굴까지 이어지는 총 9.5㎞이다. 2주 전 진남문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참 난감했었다. 마을이니 당연히 버스나 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여행자의 착각이었다. 팔공산의 깊디깊은 골짜기 지형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무지로 인한 시행착오는 곧 경험이 되었고 이번엔 좀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교통편으로 인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홍천뢰묘 가는 길에서 돌아본 마을

다행히 마을길과 임도가 자연스레 연결되어 피로도가 높은 코스는 아니었다. 제일 먼저 송강 홍천뢰 장군 묘를 찾았다. 그런데 마을길이 끝남과 동시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웃자란 풀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없던 것을 만드는 일도 어렵지만 원래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 또한 잠깐인 것 같다. 쭉,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사라지고 이끼가 끼는 게 어디 길뿐일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헙수룩한 잡풀 속으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뱀 때문에 몹시 긴장되는 상황인데도 초록의 싱그러움에 현혹되고 가산의 날렵하고 우아한 능선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스릴과 환희가 교차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송강선생흥공지묘 비석

‘송강선생흥공지묘’라 새겨진 비석이 풀숲 사이에 외따로이 서 있고 묘는 그보다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명종 19년인 1564년에 한밤마을에서 태어난 홍천뢰 장군은 스물한 살에 무과에 급제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300여 명을 이끌어 영천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다. 들꽃이 있어 산천이 아름다운 것처럼 조용히 제자리서 향기를 피운 분들이 있어 세상의 평화와 자유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묵은터 앞 이정목
북창마을 이정목

계곡을 낀 임도를 가야 하는데 풀이 쑥대강이라 우회하기로 했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가산산성 내성을 준공할 때 군량미와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북창마을이다. 비가 내렸다 갰다 하는 바람에 우산을 폈다 접기를 반복하며, 저수지라기보다는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인 복곡지를 지나 다시 임도를 걸어 염소 농장에서 좌측 언덕길을 올랐다. 송림길이 쭉 이어지다 도착한 곳은 용곡이다. 한국지명총람(1978년)에 용계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나와 있다.

용곡마을 (묵은터)
묵은터 앞 개울

가산산성 용선대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이 생긴 지 가장 오래되어 묵은 터라 불린다.

윗산당마을 버스 정류장

이제부터는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하여 음지마을로도 불리는 응추리에서 좌측 마을길로 접어들면 방태골재가 나온다. 여행은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 있고 이곳저곳의 기를 계속 충전시킬 수 있어 좋다. 파동을 일으켜 우주의 기를 받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이라 했다. 움직임이 많을수록 삶이 긍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건 세상 만물이 에너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골드봉애플 농원 가는 길

쉰재를 넘어 각골 골드봉애플 단지가 있는 마을회관서 잠깐 쉬었다. 3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고려 중엽부터 자연부락이 생겨났다고 한다. 부계면에서 가장 끝(갓쪽)에 위치해서 가지골로도 불린다. 스물여섯 개의 농장길 따라 쉼터와 산책로가 있고 체험장을 두루 갖추어 아이들과 동반해도 좋을 것 같다.

쉰재가는 길

삼존석굴에 도착했을 땐 비가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노점서 쑥떡을 팔고 계시던 할머니가 찹쌀만 사용해서 쫀득쫀득하다며 자꾸 먹어보라신다. 떡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옆 가판대에는 사과와 상추, 파가 소쿠리와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삼천 원, 오천 원이다. 길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음식점이 쭉 늘어섰는데 빈 점포가 더러 보인다. 코로나의 여파가 이곳에도 미친 것 같다.

극락교를 건너서

석굴암 들어가는 입구 소나무 군락지는 언제 봐도 울창하다. 문명화된 인간과 상관없이 소나무의 본질에 맞게 잘 자랐다. 극락교를 건넜다.

비로자나불상

9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정면에서 웃고 계신다. 전형적인 신라의 비로자나불상 모습이다. 결가부좌 자세로 통견을 양쪽 어깨에 걸쳤고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 다감하다. 우아하게 주름진 통견 사이로 드러난 앞가슴이 빗물에 젖었다. 턱은 둥글고 목이 짧지만 귀는 목에 닿을 정도로 길다. 누군가 그 앞에 사탕 한 봉지를 갖다놓았다.

삼존석굴 앞 오색찬란한 연등

코로나로 사월 초파일 법요식이 한 달 늦춰져 연등은 그대로다. 삼존석불은 암벽 20미터 높이 동굴에 모셔져 있고 아래는 계곡이다. 올려다보고 섰으면 신비함과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은 신라 제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한 곳으로 전해진다.

200미터 높이의 동굴속 삼존석불

후에 원효대사가 절벽동굴에 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조성 연대가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빠르다. 한때 근처 고을에만 8만 9암자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삼존석굴은 1927년 인근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고 국보 109호로 지정되었다.

청산이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석굴 옆 칠성당 가는 입구 나뭇가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자연 속에서 이런 글을 읽으면 그래. 사는 게 별건가 싶다. 심각하면 한없이 심각하고 털어내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삶이다.

삼존석불 앞 즐비한 음식점

열심히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산발적 소나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변화무쌍해서 느슨해질 틈이 없다. 이런 날은 따끈한 게 최고다. 솔밭 앞 식당으로 들어갔다.

100년 넘은 솔밭 식당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국수

100년 넘은 집답게 주판부터 갓, 망태기, 호롱불, 담뱃대 등 옛것이 처마며 집 구석구석에 주렁주렁 걸렸다. 집은 늙어서 더 정이 갔다. 그 집에서 그 집의 할머니가 끓여주신 칼국수를 먹었다. 총각무도 묵은 배추김치도 시큼하다. 옛날 맛 나는 음식을 먹으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엄마’ 라고 불러본 지 참 오래되었다.

임수진 수필가

◇여행 스케치

△군위삼존석굴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 16) = 통일신라 초기의 화강석 석굴로 삼존불을 모신 곳이며 국보 제109호이다. 석굴의 높이는 4.25m이고 본존은 2.88m, 왼쪽 보살 1.92m, 오른쪽 보살은 1.8 m이다. 거대한 암벽에 조영된 석굴의 입구는 둥글며 그 아래는 깊은 계곡이다. 본존을 중심으로 안쪽의 벽면에는 소박하고도 큰 광배를 조각하였고 두광과 신광을 구별하여 광염 무늬로 나타냈다. 석굴 앞으로 음식점이 즐비하며 소나무 군락지와 계곡이 있어 가족 및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다.

*유래 및 역사 : 둘레길 안내판 참조

 

기개가 넘치는 송림
늘푸른 송림
배경화면같은 가산 능선
삼존석불 앞 송림
석굴 아래 계곡
석굴 올라가는 계단
염소농장서 묵은터 가는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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