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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11. 대율리 대청에 앉으면 시조 한 수 읊고 싶어져
[팔공산을 걷다] 11. 대율리 대청에 앉으면 시조 한 수 읊고 싶어져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0년 06월 18일 21시 39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6월 19일 금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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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탁 트인 대청에 앉으면 솔솔 부는 바람에 마음 가득차
팔공산의 팔( 八)과 돌담을 형상화한 조형물

오늘은 팔공산 둘레길 9코스와 그 주변을 여행한다. 삼존석굴을 지나자 둘레길 이정목이 두 팔을 벌리고 섰다. 파란 하늘엔 새털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고 다시 풀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낸다.

솔밭 앞 둘레길 표목
춘산리 고갯길에서 바라본 풍경

오른쪽 멀리로는 산성봉과 비로봉 등 여러 능선이 꽃잎처럼 겹쳐 색과 멋을 더하고 마을과 연결된 길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그동안 팔공산 둘레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돌담을 봐왔다. 돌담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지체한 적도 있고 아쉬움이 커 마음은 그곳에 두고 온 적도 있었다.

한밤마을 가는 길
환상적인 돌담길

오늘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대율리 한밤마을에서 무사히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초입부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돌도 둥글고 담장도 둥글다. 둥근 것끼리 모여 하나의 큰 원을 이룬 게 한밤마을이 아닐까 싶다. 갈림길에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인사를 한 뒤 마을이 정말 착해 보인다고 하자 “그럼요. 아주 순해요.” 여행자의 생뚱맞은 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재치 있게 화답하며 돌담처럼 웃는다. 여행을 왔다고 하자 왼쪽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대청이 있으니 꼭 구경하고 가란다. 인천에서 시집왔다는 아주머니는 돌담에 반해서 사십 년 가까이 이곳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남천고택
부림홍씨종택

군위 대율리 한밤마을은 부림 홍 씨(缶林洪氏) 집성촌이다. 입향조(入鄕祖)인 고려문화사 홍노 선생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이루고 이름을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밤야(夜)가 좋지 않다 하여 밤나무 율(栗)로 부르게 되면서 대율(大栗)이 되었다. 돌담의 시초는 옛날에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는데 땅 밑에서 돌이 끊임없이 나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땅의 경계를 삼은 것이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대청

대청은 전통가옥이 산재한 마을 가운데 있었다. 양 사방이 트여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인 대청은 조선 전기에 지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10년(1632)에 중창되었고 효종과 숙종 때 중수를 거쳐 완전 해체 · 보수한 건 1992년이다. 대청이 있는 자리는 오래전 대율 마을 전체가 사찰일 때 대종각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그곳에 앉아 보았다. 바람에 마음이 흔들렸다. 가진 게 딱히 없는데도 뭘 잔뜩 가진 듯 꽉 찬 기분이다. 욕심을 내려놓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문득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시조 한 수 읊고 싶단 생각을 하는데 뜬금없이 하여가와 단심가가 먼저 떠오른다. 마루에 올라앉아 맞는 바람의 맛은 특별나다. 기둥만 두고 동서남북이 다 열렸다. 물론 과거에는 이 구조가 아니었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 옆에 방을 둔 양식이었다고 한다. 대청 오른쪽 건물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4호인 남천 고택이다. 사랑채는 현종 2년(1836)에 지어졌고 2008년 국립민속박물관이 마을 조사를 하여 ‘돌담과 함께한 부림의 터’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한밤마을의 관문인 솔밭이다.

홍천뢰장군과 홍경승 선생 추모비

이곳에 두 좌의 비석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영천성 탈환에 앞장서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홍천뢰 장군과 그의 조카 혼암 홍경승 선생 추모비이다. 청정한 소나무 여러 그루가 추모비 주변을 호위병처럼 둘러섰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과거는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의 연속성에 의해 그 이음줄이 현재로, 다시 미래로 이어진다. 그 진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대율사 석조여래입상

솔밭에서 200미터 거리에 대율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대율리 마을이 사찰일 때 본존불로 모셨다가 폐사된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을 거란다. 그동안 여러 불상을 봐왔지만 만든 시기에 따라 얼굴 형태나 통견, 법의, 육계, 수인이 조금씩 달랐다. 보물 제988호인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불상의 특징인 당당함과 세련미가 있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큼지막한 손이다. 왼손은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골반 옆으로 늘어뜨렸는데 손바닥은 정면에서 볼 수 있게끔 앞을 향하고 있다. 이 독특한 수인은 여원인(與願印)으로 부처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준다는 의미다. ‘기도는 인간의 이성과 지능을 갖고도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 힘이 되어 준다’는 글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신은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다.

맛있게 익은 산딸기

둘레길은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백송 호텔 뒤편에서 춘산리 임도를 거쳐 가호 2리로 이어진다. 찔레꽃이 피었고 산딸기가 빨갛게 익었다. 잠시 쉬면서 산딸기를 따먹었다. 유년의 어느 한 때를 소환한 기분이다. 숲에선 숲의 냄새가 났고 나무에선 나무 냄새가 난다. 본연의 냄새는 긴장을 풀어주고 심신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산의 경사진 곳에서 내려서니 가호마을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350년 된 당산나무가 동네 어귀에 섰고 그 앞으로 개울물이 흐른다. 개울을 중심에 두고 형성된 마을은 다감하고 둘레길 이정목은 듬직하다.

땅거미 내리는 화본역
화본역전 앞
화본역 주변 관광지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네티즌이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았다는 화본역에 들렀다. 1930년대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이곳엔 하루 세 번 열차가 정차한다. 상행선(청량리, 강릉), 하행선(동대구, 부산) 방면이다.

화본역 100년의 역사

오래전 마을 주민들은 손수 지은 농산물 보따리를 이고 지고 증기기관열차를 타고 신령과 영천 장을 오갔다. 대합실에는 그때 그 시절 사진과 역무원들이 쓰던 모자가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 천 원을 내고 플랫폼으로 들어가면 선로와 들판, 급수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화본역 공원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박물관

한갓진 군위는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팔공산 남쪽 끝자락과 맞닿아 있다. 석양이 질 무렵 도착한 탓에 폐교된 산성중학교 자리에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란 주제로 만든 박물관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열차 카페

음악다방과, 연탄가게, 구멍가게 등 6,70년 대 생활상을 사실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니 부모님께는 그들의 청춘을, 자식들은 힘줄같이 살아온 부모들을 이해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글·사진=임수진 수필가
돌담마을서 가 볼만 한 곳
부림홍씨종택 표석
화본마을 정미소 벽화
춘산리 고갯길~멀리 팔공산이 보인다
가호2리 개울가 이정목
가호2리 표석
낭만적인 기찻길과 급수탑
들판을 가로지른 철로
박물관에 이런 시설이 있어요
백송스파비스 호텔 앞 이정목
한밤 마을길
한밤돌담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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