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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44. 청송백자 전수관 윤한성 관장
[명인] 44. 청송백자 전수관 윤한성 관장
  • 이창진 기자
  • 승인 2020년 09월 06일 19시 3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07일 월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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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은 그릇 전통 '청송백자' 명맥 살려야
윤한성 관장과 달 항아리
조선의 4대 민요(民窯)로 꼽히는 청송백자는 설백색의 빛과 기벽이 매우 얇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흙으로 제작하는 다른 지역 도자기와 달리 청송군 주왕산면 법수지역에서 나오는 ‘도석’이라는 돌을 빻아서 빚는다.

백옥 같은 낯빛에 진주 같은 광이 나며 계란 껍데기처럼 얇고 공기처럼 가벼워 투박하게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지만 왕실이나 반가에서 쓰던 도자기가 아니라 민간에서 쓰던 막 그릇이다.

당시 청송백자 도요지인 법수골 주변 10km 반경 안에는 물 흐르고 푸른 소나무 빼곡한 골짜기마다 도요지가 있었다고 한다.

가마는 40도 정도로 경사진 산비탈에 5개의 봉우리가 사다리꼴로 솟아 있고 사기굴은 돌과 불의 특성을 이용해 초벌구이만으로 사기를 완성하며 연료와 노동력을 절약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사기를 생산했다고 한다. 지금은 청송백자전수관이 복원돼 운영되고 있다.

사기굴(가마) 백자 제작에서 소성단계가 이루어지는 가마가 굴과 같다하여 사기굴이라고 불리고있다.
청송은 국립공원 주왕산과 사과로 상징되는 곳이다. 이곳에 백자가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청송백자는 아직은 생소하지만 깔끔한 디자인과 뛰어난 품질로 세대를 아우른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성장 중이다. 청송백자는 서민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던 생활 그릇이었다. 외국에서 사기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1958년부터 50여 년간 제작이 단절된 바 있다.

청송백자의 부활은 마지막 청송백자 사기대장이었던 고 고만경 옹과 지금 청송백자 전수관장을 맡고 있는 윤한성 관장이 만나면서 시작됐다. 전통은 이어나가되 현대적인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한성(48)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기움. 청송백자 제작을 위해 원료 준비부터 성형·건조·보관등 모든 공정이 움집에서 이루어진다.
△청송백자와의 특별한 만남.

고향이 청송이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대학은 공예과를 갔다. 여러 가지를 경험했는데, 가장 내 감성에 맞는 것이 도자기였다. 아마 시골에서 흙을 만지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흙이 주는 물성 같은 것이 좋아서 도자기 쪽으로 공부하게 됐고 대학원도 갔다. 그렇지만 업으로 삼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고만경옹의 생전 작업모습
전 고만경옹과 윤한성(오른쪽) 관장
서른하나쯤이었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뒤에 강단에서 수업도 하고 공방도 운영하던 때였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40대 중반 되신 여자분 목소리였다. 도자기 체험을 해 보고 싶다는 내용 이였다. 그때는 체험은 받지 않고 작품 활동만 하던 때라 그렇게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아버님께서 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놀러 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두어 달 뒤에 진짜로 그 따님과 아버님이 공방으로 오셨어 아버님께서 물레를 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흙을 내 드렸더니 기가 차게 물레를 돌리시길래 놀랐습니다. 그분이 청송백자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 선생님이셨다며 당시 연세가 일흔 여섯이셨다.

청송백자 전시관에 전시 된 달 항아리
청송백자는 조선 후기 집안에서 직접 쓰는 그릇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도자사적으로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았다. 청송백자도 그렇고 다른 백자들도 그렇다. 그런데 고향에서 전통 도자기를 하셨던 선생님을 뵙게 되니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는데 이후로 3년 정도 교류만 오가다 2006년 청송군에서 백자 재현 사업을 시도했고 고만경 선생님을 찾았다. 당시 개별적으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고향인 만큼 기록 차원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연세도 있으시고 50여 년 가까이 단절된 시간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윤한성 청송백자 전수관 관장 작업모습
△청송백자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1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2009년에 개관을 하고 2년 동안 옛날 원형을 복원하는 사업에 몰두했다. 복원한 작품을 갖고 처음 전시를 시작한 것이 2011년. 전통적인 청송백자를 모티브로 현대적인 실용도자기로 재해석하고 작업을 해 브랜딩하기 시작한 것이 2012년이다. 고만경 선생님은 전통적인 것과 완성을 담당하셨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전문 디자이너, 진흥공예원에 문의하기도 했고 그 이후로는 자체적으로 디자인했다.

제례에 사용되는 제기. 유교적인 도덕률 속에 청렴과 결백, 절개를 숭상하고 검박 검소한 기풍을 가진 백자로 인기가 높다.
△청송백자가 특별한 이유는.

청송백자의 전통적인 가치는 ‘도석’이라는 재료다. 도석으로 가벼운 무게에 흰색을 낼 수가 있다. 독특한 제작방식과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나 공방의 구조들도 모두 도석과 연관이 있다.

대체로 흙이면 고령토, 돌이면 도석이다. 특정한 암석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도자기를 빚을 수 있고 자기를 빚을 수 있다. 도석은 여러 군데 많이 나지만 청송에서 나는 도석은 특별한 성분을 갖고 있다. 청송 지역에 1억 년 전 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이후 생겨난 것이 도석이다.

청송은 세계 지질 공원으로도 지정된 바 있는데 지질학적으로 생겨난 것을 사람이 활용해 전통적으로 이어온 것이 청송백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청송백자는 자연이 빚은 그릇” 으로 전해지고 있다.

흙을 사용하는 일반 도기와 달리 청송법수골 채석장에서 생산되는 도석 (陶石 )을 곱게 간 돌가루로 청송백자가 빚어진다. 청송법수골 채석장.
△도자기 일을 배우려는 사람은 많이 있나.

요즘은 직업이나 전문적으로 도자기 쪽 일을 원하지 않는 추세다. 우리는 늘 사람이 필요한데, 모집하면 잘 오지 않는다. 정말 힘든 직업이다.

현재 함께 있는 전수자나 이수자도 브랜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공모를 통해 뽑게 된 경우다. 기본적인 도자기 기술은 대학 교육을 받아서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곧장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들어온 후 1년 정도는 청송백자만의 느낌을 뽑아내기 위해 교육을 따로 한다.

일제시대 때 경영했던 법수동 고령토 광업소
△도자기를 빚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예전 고만경 선생님 때는 새벽 세 시에 시작해 저녁 여섯 시쯤 끝났다고 한다. 새벽에 일어나 물레질을 한다. 점심쯤에는 만들어 놓은 것이 시간 차별로 건조가 된다. 사발 식기를 예로 들면 따내서 반건조가 되면 굽을 깎아 정리한다. 오후부터는 차례대로 시간별로 그릇을 깎고 그렇게 일과가 끝난다.

지금은 일반 회사원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청송백자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고 있다. 분기나 월 제작 계획이 나오면 작가마다 라인별로 계획을 세운다. 그에 따라 한 달 동안 개인 작가가 일정에 맞춰 검토하면서 제품을 만든다.

또 다른 것은 옛날에는 사기만 빚는 사기대장, 그를 도와 작업하는 수정꾼, 불만 때는 불 대장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분업화가 돼 있었다. 지금은 도예가들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한다. 도방 규모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그래야만 작가별로 주도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수골 백자 작업장인 사기움집과 가마터(오른쪽)
△청송백자 미래는.

책임감이 크다. 2018년 5월 고만경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한순간만 소홀해도 앞으로의 청송백자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두려웠다. 청송백자는 한 번 단절된 적이 있다. 50년간 명맥이 끊겼는데 내가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크다. 사명감인 셈이다.

매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디자인이든 학술적이든 청송백자 인지도가 올라가고 전문가 평가가 달라졌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다. 최근 2~3년 사이 마니아층도 생기고 청송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청송백자는 전통 생활자기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것이 결국 전통이다.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대중이 얼마나 선택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고 본다.

도자기 체험을 마치고 각자의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자전시관 체험장
나는 다른 일을 꿈꾼 적이 없다. 힘든 적도 많았지만 다른 것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했다. 정말 힘들 때도 몇 번 있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다.

청송백자를 브랜딩 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다. 그 이후로는 개인 작업을 할 예정이다. 지금은 못 하고 있지만. 그때는 내가 하고 싶던 작품들을 많이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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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진 기자 cjlee@kyongbuk.co.kr

청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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