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화된 영웅은 아닐지라도 비범한 인물이 그리운 때"

명마산 능선 전망대

팔공산 약사암 입구 근처에 차를 주차한 뒤 Y자 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왔다. 개울가 식당 앞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개울을 따라 세팅된 테이블이 시원해 보인다. 흰구름 두둥실 뜬 하늘은 청명하다. 바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계곡 위 다리를 건넜다. 능성재까지 3.1㎞. 단거리지만 산은 평지와 달라 얕잡아볼 건 아니다.

인심 좋은 부부

9월에 들어서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햇살은 정수리를 녹일 듯 내리쬔다. 비포장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오른쪽에 복숭아밭이 보였다. 연세 드신 부부가 막바지 복숭아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계셨다.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건넸다. 가는데 부르신다. 돌아보니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몇 개를 주신다. “요 위에 절이 있어요. 거기 수도가 있으니 씻어서 먹어요. 장마와 태풍에 수확할 것도 없을 텐데……. 하산하는 길이었으면 한 바구니 살 텐데. 미안하고 감사하다.

관음사 주변

곧이어 관음사가 나왔다. 절 주변에 귀감이 되는 글귀를 기왓장에 써 놓았다. ‘현재를 즐겨라. 인생은 현재의 연속이다’, ‘말을 조심하라. 그것이 나의 행동이 되느니’ 알지만 습관화하는 게 쉽지 않다. 조금 전에 만난 부부는 베푸는 삶이 몸에 밴 분들 같다. 관음사를 지나니 양옆에 펜스가 설치된 좁은 길이 나왔다. 풀이 발목을 기어오른다. 최근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듯하다. 혹시 똬리를 튼 뱀이 있지 않을까 해서 우산으로 풀을 툭툭 친 뒤 지나갔다. 장군바위까지 1.1㎞. 가뿐하겠다 싶었는데 어이쿠, 시작부터 거침없는 오르막이다.

전망대 이정목
장군바위가 있는 풍경

뒤틀린 소나무 앞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괴석이 무더기로 쌓인 전망대. 하늘이 열렸다. 얼음물을 꺼내 마셨다. 산꼭대기는 바람이 좀 불까 기대했는데 이곳도 역시나 바람은 부재중이다. 골짜기 아래로 15코스 시작점인 약사암 입구 삼거리와 은해사 능선이 까마득히 보인다. 이제 오르막은 끝이다. 이곳서 장군바위까지는 완만한 능선이 연결된 숲길이다. 오른쪽으로는 관봉이 왼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장군바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군바위

팔공산 중심부는 화강암제로 구성되어 생김이 독특하고 희귀한 바위가 많다. 가까이 가서 본 장군바위는 3단 탑 형식이다. 하단은 똑같은 모양의 바위 두 개가 받침대 역할을 했고 중간에는 타원형의 안정감 있는 돌이 맞춤하게 앉았다. 그 위에 삼각모양의 끝이 조금 뾰족한 돌이 얹혀 얼핏 보면 펜촉 같은데 김유신의 단검이라고 한다. 오래전 장군은 팔공산 불굴산 원효굴에서 삼국통일을 위한 불도수행을 했다. 도업을 마치고 나오던 그는 맞은편 산에서 커다란 백마가 소리쳐 울며 승천하는 걸 목격했다. 그때부터 이곳은 명마산(鳴馬山)이 되었다.

새천년 기념 명마산 비.

기암괴석이 산꼭대기에 층층이 쌓인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해발 500m 높이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선 바위는 바위임에도 기개가 넘친다. 김유신과 연관지어 더 특별해 보인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영웅 신화는 있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영웅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감동하고 힘을 얻었다. 김유신 역시 굴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자신을 연마했다. 영웅의 주된 위업은 고난을 극복하고 악을 격파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왕건이나 김유신이 팔공산과 관련이 깊은 건 산이 가진 영기(靈氣)가 그만큼 충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군바위 앞에 섰으니 김유신 이야기를 좀 더 하고 가자. 장군은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의 12대손이다. 아버지는 김서현, 어머니는 만명이다. 여기에 영웅의 출생 비밀이 있다. 보통 여성의 임신 기간은 280일, 40주인데 장군은 20개월 만에 태어났다. 태몽도 특별나다. 황금 갑옷을 입은 소년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그의 어머니 품에 안기는 꿈이다.

등에 북두칠성과 흡사한 일곱 개의 점이 있는 것도 이미 천계(天界)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그 때문에 민간신앙의 주체인 구비전승에서는 그를 장군신으로 모신다. 강릉단오제에선 김유신 장군이 대관령을 관장하는 산신이다. 그는 열다섯에 화랑이 되었고 열일곱 살에 석굴에 들어가 기도 도량에 힘썼다. 그 결과 산신령에게 지혜를 받았고 고구려에 심한 압박을 받던 신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순환적 서사구조에 의한 신격화된 영웅은 아닐지라도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비범한 인물이 그리운 건 왜일까.

사라진 길&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쉬지 않고 올랐으니 내려가는 길은 쉬울까 했는데 예상은 뒤집혔다.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밧줄을 잡고

밧줄을 잡고 좁은 바위틈을 간신히 지나고 가탈막진 비탈을 끊임없이 내려갔다. 그 흔한 나무 계단이나 돌계단도 없다. 다듬어지지 않아 산세는 험하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곳은 편하지만 산이 가진 거친 특성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위가 젖어 있을 땐 조심

다행히 위험한 곳은 말뚝을 박고 밧줄을 연결해 놓아 붙잡고 내려가면 된다. 어쨌건 산에서는 끝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바위는 젖었고 낙엽송이 쌓인 곳은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격훈련 하듯
깊은 산속 옹달샘

유격훈련 받듯 중간쯤 내려오니 이곳에도 옹달샘이 있다. 식수로 가능하지 않더라도 손을 씻고 땀을 식히기엔 충분하다.

오솔길이 이어지고

골짜기에 생긴 개울을 건너자 좁디좁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곧이어 솔밭이 나오고 당산나무가 보인다. 누군가 그 아래 조화를 갖다 놓았다. 비석에 ‘능선동 내릿골 당산 천왕’이라 새겨졌다. 무속인이 찾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토속신앙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 있다. 여행지에서 나무와 돌탑, 솟대를 흔히 볼 수 있는 것 또한 민속신앙과 밀접함을 보여준다.

잡풀이 덮어버린 길

당산을 지나서는 길이 사라졌다. 풀이 종아리까지 자랐다. 이번에도 우산으로 풀을 툭툭 치면서 걸었다. 뱀이 있으면 달아나 주길 바라면서. 햇볕이 쨍쨍한 날 우산을 들고 온 까닭은 멧돼지를 만났을 때 우산을 펼치라고 누군가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시력이 나빠 순간적으로 우산을 바위로 착각한다고 했다.

지경마을 입구 소나무 군락
용이 되어 승천할 것 같은 소나무

지경마을 입구 솔밭은 근사했다. 보호자 없이 홀로 늙은 노인 같지만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텁수룩해도 소나무의 위용은 그대로다. 어떤 나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듯 보였다.

개울가 식당 앞 계곡
우정식당 앞 버스 정류장

드디어 오늘 마지막 코스인 우정 식당 앞이다. 식당은 문이 잠겼다.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장군바위가 까마득히 보인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리워진다더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는데도 자연이 선물해준 안온함이 다시 그리워진다.
 

글 임수진 수필가 · 사진 박성규

◇근처에 가볼만 한 곳.

영천 돌할매. 자료사진
영천 돌할매. 자료사진

영천 돌할매(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돌할매로 484)= 무게 약 10kg, 직경 25cm의 화강암. 이 돌의 역사는 약 350여년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길흉화복이 있을 때면 돌을 찾아가 제(祭)를 지내왔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두 손으로 돌을 들어 올릴 때 돌이 가볍게 들리면 염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고, 묵직하니 꼼짝도 안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단다. 여기엔 법칙이 있다. 반드시 처음에는 그냥 들어보고 두 번째는 본인의 생년월일과 주소, 나이, 성명과 소원을 말한 뒤 들어야 한다. 돌 아래서 자석이 끌어당기듯 강한 힘이 느껴진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명마산 등산로
등산로 입구
명마산 능선
골짜기 개울 건너
멀리 관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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