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 간 성황제 올려 상주 민속문화 메카로
무속인의 전설 이야기로 전해오는 상주시 천봉산 성황사 ‘남매 전설 이야기’와 함께 일찍부터 성황신을 숭배하던 ‘성황제’(고려 시대부터 추정)의 역사에 관해 설명하는 황국남(80) 대한노인회 상주시지회 부회장의 바람이다.
경북 상주시에서 문경 방향으로 3번 국도를 따라 북천을 건너면 상주 3악(천봉산·갑장산·노음산)의 하나인 천봉산이 서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상주시의 안산이면서 진산인 천봉산은 만산· 부원·남적·봉강 등의 자연마을을 품고 있다.
상주시 만산동(蔓山洞)은 바깥너추리(현 상주교육지원청이 있는 마을), 안너추리(마을 초입에 저수지가 있는 마을, 현 상주소방서 신축현장), 산태골(상주중학교 뒤편), 자산(침천정 지나 안쪽 마을) 등 크게 네 곳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중 자산 산성과 호국 성지인 임란북천지가 있는 천봉산 남쪽 자락을 지나 처음 만나는 만산동 안너추리 마을에는 남매상을 모신 성황사와 바위집인 영암각, 국사남매 성황당 등이 자리해 우리나라에 보편화 된 성황 신앙을 전승해 오고 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매년 음력 4월 8일이면 성황제를 올리며 상주 민속 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해 왔다.
무속인들이 자주 찾기도 해 영험한 산으로 알려진 천봉산 7부 능선에 ‘천지당’으로 불렸던 큰 절벽바위가 있어 무당들이 굿을 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남매 성황당 왼편에 굿터가 마련돼 있다.
지금도 해마다 음력 4월 초파일이 되면 산신제단, 성황사, 영암각에서 안너추리 노인회 등에서 준비한 성황제가 치러진다.
성황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우물마루를 깐 민도리 팔작집으로 서향하고 있고, 성황사 신위로는 목각된 부부신상 또는 남매신으로 일컬어지는 한 쌍의 목각신이 모셔져 있다.
성황사는 지난 1617년(광해군 9년) 창석 이준이 편찬한 ‘商山誌(상산지)’ 등의 천봉산 성황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 중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전에는 정월 보름에도 천제당(천지당)에서 천황제를 지내고 내려오면서 성황제를 거쳐 동신목(마을보호수)에서 마지막 제를 치렀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치고, 지난 1991년부터 관리권이 마을노인회로 넘어온 뒤 매년 음력 초파일 오전 10시에 성황사 바로 옆 두 개의 돌탑인 산신당에 먼저 고한 다음, 성황사, 영암각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아쉬운 점은 ‘성화채화단’이 마련될 만큼 상주 민속 신앙의 중심인 이곳이 동네를 지키는 동신목 중 한그루가 번개를 맞아 불타고, 호랑이를 타고 문경 성황사를 오갔다는 ‘목각호랑이’와 ‘호랑이 그림’ 등이 도난당해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의 소원성취를 위해 치성을 드리는 뜻에서 미륵당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암각은 거대한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성황사 바로 아래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암각에 대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1788년 상주 목사 홍원섭의 성황사 중창 불망비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곳은 △신(神)이 잘 내리는 영험한 천봉산 △매년 남매상의 옷을 갈아 입히는 무속인 △성황사에서 백일기도 끝에 얻은 아들 △바위집(보호각)을 지어준 덕에 평안해진 상주 등 성황사·영암각과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예로부터 물을 끌어 쓰기 어려워 생업 조건이 열악했던 안너추리 마을이 ‘돌탑 있는 마을’ 혹은 ‘성황당 마을’로 불려진 것은 민속신앙이 다양하게 전승됐다는 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황국남 대한노인회 상주시지회 부회장은 “지난 2018년 경북 도민체육대회에서 상주 천봉산의 성화와 경주 토함산의 성화가 합쳐져 대회를 치른 경험이 있는 곳이다”며 “마을 신앙을 넘어 고을 신앙이었던 ‘안너추리’ 성화 체화단 일대의 관리·보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