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부터 복숭아 무성…아름다운 경관 더해 살기좋은 마을

홍도마을전경

경북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는 청도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숭아를 재배한 곳이다.

신봉리는 홍도·신기·노봉·비석리 등 4개 자연부락이 복숭아, 청도 반시, 자두 등 농업을 주 소득원으로 옹기종기 화목하게 살고 있다.

오산지 속편에 의하면 홍도·신기·노봉이 합쳐 신봉리가 됐다고 한다.
 

마을 표지석

면적은 146만1718㎢이고 93세대( 남자 73명 여자 83명) 1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봉리가 홍도마을과 신기마을로 갈라지는 표지판

신봉리는 동쪽으로 교촌리, 서쪽은 각남면 칠성리, 북쪽으로는 서상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청도 읍성 내의 서상리나 동상리 주민들과는 다르게 집성촌을 이루고 아직까지 전통적인 유교 사상이 생활습관으로 남아 있는 마을이다.
 

마을회관

청도군의 진산인 화산(남산)에서 서쪽으로 굽이쳐 내린 갈마봉 줄기는 신라 천년고찰인 죽림사와 홍도·신기·노봉마을을 아늑하게 품고 있다.

낙응봉과 갈마봉 사이를 흐르는 신봉천은 마을 주민들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신봉리 마을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조망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봄이면 골짜기마다 활짝 핀 복숭아꽃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낸다.

일찍부터 신봉리 주민들은 산기슭을 이용한 밭농사와 좁게 펼쳐진 들을 중심으로 논농사를 지었다. 마을 주변 지명은 박등산(똥뫼산), 질매산, 홍도골, 빨래 할미바위, 톳고개(토고개), 외목 고개, 신봉 지, 늑원 등이 있다.
 

죽림사 전경

△죽림사

죽림사는 신라 진평왕 32년(610년)에 법정 대사가 화남사라는 아름으로 창건했다.

그 후 법정 대사는 선덕여왕의 명을 받아 화친사(和親使)로 일본에 건너가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노고에 대한 답례로 화남사 옆의 땅 약 900여 결을 하사했는데, 그때 심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지금의 죽림사(竹林寺)가 됐다.

1992년 산령각과 요사인 ‘전을 당’,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대웅전에 봉안된 주불(主拂)인 석조여래좌상은 조선 후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마을입구에 복숭아유래지 표석이 서 있다.

△홍도골.

홍도골 마을 입구에는 홍도 복숭아의 유래와 전설을 기록한 비를 세워 놓았다.

홍도골은 지금의 신봉리 옛 이름으로 신라 때부터 전해온다.

이 마을에는 죽림사(竹林寺) 전설에 의하면 도림, 송림, 죽림이 시기에 따라 무성해 붙여진 이름으로 복숭아가 무성하면 마을의 살림살이가 풍성해 홍도화발(紅桃花發), 천가부(千家富)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백도 복숭아

홍도골의 복숭아는 신라시대부터 자생 식물로 군락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로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이 지역의 선각자들이 자생복숭아를 접목 기술을 개발해 품종 개량과 함께 재배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재배면적이 늘어나 홍도골이 복숭아의 대명사가 됐다.

차일용 씨가 일제 말기 일본에서 가져온 품종을 홍도마을 재배종과 접목해 ‘대백’이라는 신품종이 개발되어 각광 받아 이웃마을로 확산 되면서 복숭아 주산지가 됐다. 이로 인해 청도 복숭아는 지역의 특산물로 인정받으면서 높은 소득원으로 자리 잡아 주민의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게 됐다.

이복덕 신봉리 이장은 “홍도골은 복숭아의 고장 청도에서 살기 좋은 마을로 이름나있다. 인심 좋고 부지런한 주민들이 맛 좋고 품질 좋은 복숭아를 생산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3년 전에 비해 주민 수가 늘어나고 있어 찾아오는 농촌마을로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재기 기자
장재기 기자 jjk@kyongbuk.com

청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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