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첫 승전보…충의 가득 현인들의 역사 고스란히

금호리 전원주택 등 마을 풍경

완연한 가을인 9월. 충의(忠義)의 마을 영천시 화남면 금호리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한천승첩지(漢川勝捷地)로 유명하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 동래성을 침입해 4월 22일 영천성이 함락되자 같은 달 27일 지역의 수 많은 지사(志士)들이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창의기병(倡義起兵)해 5월 6일 이곳 한천 일대를 중심으로 전투를 전개해 최초의 승리를 기록했다.
 

임란의병한천전승첩탑

금호리는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잔잔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학루산(鶴樓山)의 근원을 둔 연봉들이 마을 뒤로 이루어 구릉지를 형성하고 앞들의 끝쪽에 고현천을 건너 연이은 기암절벽은 그 광경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춘하추동 변화무쌍함으로 고재부터 현인들의 유적이 많은 곳이다.

마을은 내지, 중리, 구만리, 질구지로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내지마을은 중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강이 감돌아 강 속에 있다 하여 내지라 불렸고 또 강 속에 땅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1580년(선조 13년)경 창녕 조씨 조황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정착해 개척했다.

중리는 금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1500년(연산군 6년)경 창녕 조씨와 안동 권씨가 들 가운데 거주하면서 중리라 불렸다.
 

한천전투 의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충훈당 입구 창의문

특히 구만리 마을은 임진왜란 때 권응수 장군이 의병을 모아 말을 달리면서 훈련을 시키던 천변(川邊)이라 하여 구마강변(驅馬江邊)이라 부르게 됐다.

질구지 또는 옹기굴은 옛날부터 천연자원인 점토를 이용해 옹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곳저곳에 옹기굴이 많이 있는 관계로 이름을 옹기굴로 불렸으며 또 질그릇을 만든다는 뜻에서 질구지라고도 한다.

도공생활을 60여 년 했다는 노수태(86)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이 마을에 진흙이 많아 동네가 전부 다 항아리를 만들 정도였다.
 

노수태 할아버지가 김성숙 화남면 직원에게 무너진 항아리 굽는 터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항아리 기술자로 어릴 때부터 전라도, 경기도 등 전국을 다니며 항아리를 만들었다. 40여 년 전 이곳 질구지 마을에 정착해 항아리를 제작하다가 10년 전 그만뒀다.

현재는 이 마을에 옹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나거나 나이가 들어 그만둔 상황에 터마저 무너져 잡초가 무성한 상황이다.

폐허가 된 항아리 굽는 터

하지만 조상들의 뜻을 이어받아 4대째 도자기를 빚고 있는 젊은 청년이 흙과인 강준호 대표가 이곳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 대표는 1인 공방의 어려운 현실에 같은 고민을 하는 4명의 청년 도공과 함께 2017년 젊은 예술적 감각과 특성을 살린 ‘흙과인 협동조합’을 설립,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화남면 토박이며 금호리가 고향인 조규창(69) 전 번영회장은 “임진왜란 때 백형(伯兄)인 권응수 장군을 따라 영천복성에 공을 세운 자가 중수이고, 호가 동암인 권응평 장군은 훈련원 첨정겸 경상도 병마동첨절제사로 지내며 인근 지역 자인, 하양에서 왜군을 무찔렀다”고 말했다.
 

권응수 장군 기념비

권응평 장군은 또 경주복성전에도 참전했는가 하면 문경 당교, 안동 구담 등 전투에서 적을 격파하는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등훈(等勳)에 봉해지는 등 충의의 마을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그를 기념하는 제사, 광사제(廣思齋)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가야토기(伽倻土器)가 출토되는 지역으로 마을의 지형이 북쪽은 비교적 높고 구릉지로 되어 있으며 동남쪽은 평지로 겨울에는 매우 따뜻한 곳으로 유명해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

현재에도 마을 뒤의 구릉지를 개발해 논밭을 만들 때 땅에서 많은 가야토가 출토되기도 한다.

정해동 화남면장은 “현재 금호리 마을은 300여명이 사는 동네이고 토기를 만들 정도로 토질이 좋아 사과, 자두, 복숭아, 포도 등 다양한 과일 생산지로도 유명하다”면서 “특히 최근에는 인근에 북영천IC가 생겨 대도시 접근이 용이해 귀농귀촌 인구와 전원주택 신축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권오석 기자
권오석 기자 osk@kyongbuk.com

영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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