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골 정취 가득한 아름다운 풍광…걸음마다 힐링

기산면 각산리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마을은 참외·복숭아·자두·사과·배 등 과수가 풍부하다.

기산면은 칠곡군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왜관읍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성주군 선남면과 만나면서 도고산이 솟아있다. 서쪽에는 성주군 월항면 달암티·박집산·지경산이 차례로 북으로 이어지면서 성주군 월항면과 접한다. 북쪽으로는 서진산·비룡산·배석이재·봉산 등이 차례로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약목면과 접하고 있다.

서진산에서 발원한 서원천이 면 중앙을 동서로 지나 평야가 형성돼 낙동강으로 흐르고 있다.

하천 및 낙동강 연안 비옥한 농경지에서 채소 농사 등으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본 면 중앙으로 왜관 성주 간 국도가 지나고, 영리에 기산농공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각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동군이 칠곡군으로 병합되면서 인동군 기산면 찰전·내각·외각·서치·봉산 등 5개 마을을 병합해 내각과 봉산의 이름을 따서 각산이라 하고 칠곡군 약목면으로 편입됐다.

1943년 원래 기산면 행정 구역에 약목면동부출장소가 개소돼 6개 동을 관할하다가 1986년 약목동부출장소 관할 7개 동이 다시 기산면으로 승격됐다.

각산리는 북쪽으로는 비룡산과 서진산이 약목면을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서진산 산줄기가 내려오면서 성주군 월항면과 경계를 이루며 지경령으로 통하고 있다.

남쪽에는 박집산이 우뚝 솟아 있고 동남으로는 봉산리와 만나는데 특히 서진산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왕령을 주봉으로 삼고 그 네골짜기와 다섯 줄기마다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대흥사 골짜기에서 발원한 황계천이 남으로 흐르다가 덕곡천과 합류해 팔암천이 돼 서원천으로 흘러간다.

이수윤 기산면장이 기산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수윤 기산면장은 “기산면은 토지가 비옥하고 공해 없는 지역이다”며 “농산물, 과일이 풍부한 마을이다”고 밝혔다.

◇각산1리 마을의 유래.

기리· 각산·구무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인동인 장언극·장주 두 선비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장언극·장주는 공실로 들어와서 주변 산천을 살펴보니 너무나 기이하다 해서 마을 이름을 ‘기리’로 지었다가 그로부터 약 30여 년 후 이곳에서 도학을 크게 융성시켜 자손들에게 이를 깊이 각성시키겠다는 의지로 마을 이름을 각산(녹리)으로 바꾸게 됐다.

그 후 장주의 손 사미헌 장복추가 좌우 산천을 살펴보니 북쪽에 우뚝 솟은 서진산이 남쪽으로 뻗으면서 왕령을 주봉으로 삼고 마치 오지탄금으로 골짜기를 형성해 다섯 줄기의 지맥을 이루었다.

또 마을 앞 안산마루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의 들에서 농사 작황을 살필 수 있다 해 이를 ‘농산’이라 했다. 그 건너편 서남쪽 산세는 마치 소가 길마를 메고 앉아 있는 모양이라 해서 ‘길마재’라 했다. 또 그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산봉우리를 ‘우수봉’이라 했다.

그러나 소는 뿔이 있어야 힘을 쓰는데 우수봉엔 뿔이 없다고 해 마을을 우수봉의 뿔로 비유해 ‘각산’으로 바꾸었다. 외뿔형이어서 ‘녹리’라 바뀌기도 했다.

◇기산면의 문화유산

△각산리 녹동서당.

일제강점기인 1926년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회당 장석영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강학지소로 창건 당시에는 만서정이라 했는데 나중에 아들 장우원이 녹동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장석영은 유림 대표 독립운동가다.

1851년(철종 2) 기산면 각산리에서 형조참판 장시표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 이진상에게 사사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지방회장으로 활약했으며 1919년 3·1 운동 때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전국 유림청원서를 초안하고 성주 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각산리 녹리서당.

1814년 각산리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사미헌 장복추가 1880년에 강학을 위해 녹리고택 중턱에 건립한 서당이다.

장복추는 본관은 인동으로 여헌 장현광의 9세 손으로 가학의 정신을 이어받아 주자와 퇴계로 이어지는 학문적 연원을 사숙했다. 성품이 지극히 효순해 벼슬을 거부하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영남의 삼징사·삼학사의 한 분으로 추앙을 받았다.

△말하는 은행나무.

말하는 은행나무는 칠곡군목이다. 기산면 각산리 서학산자락이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30m, 나이는 900년 정도 된 보호수다. 나뭇잎이 피는 횟수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든다는 유래가 있다. 항상 꿋꿋하고 변함이 없어 군민이 총화 단결해 함께 전진하기 위해 군목으로 지정돼 있다.

△노석리 마애불상군(보물 제655호).

도고산 중턱 가로 5m, 세로 5m의 바위 면에 얕게 돋음새김을 한 마애불상이 1997년에 발견됐다.

붉은색, 주황색, 푸른색 등 채색 흔적이 남아 있으나 언제 채색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상의 상호와 몸매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는 좌·우 협기보살 등 삼존불좌상, 바로 오른쪽에 작은 불좌상이 놓인 특이한 구도를 갖고 있다.





박태정 기자
박태정 기자 ahtyn@kyongbuk.com

칠곡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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