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 설화·육부촌 기록 고스란히…신라 역사 처음 열린 '문화재 보고'
이 마을은 문화유적과 그 속에서 주민이 더불어 공존하고 있는 명품마을이다.
남산 밑의 작은 마을이지만, 천년고도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문화재가 산재한 유서 깊고 품위 있는 마을인 것이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지 ‘나정’과 신라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육부전’이 있는 이 마을은 신라 역사가 처음 열린 곳으로도 불린다.
현재는 5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농사와 축산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보물 2점을 비롯해 사적과 다양한 문화재가 마을 일원에 퍼져있어 그냥 평범한 시골 마을로 보기에는 예사롭지 않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함덕용(75)씨와 함께 남간마을의 숨은 가치를 되짚어 봤다.
경주시 탑동 남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남간마을은 시내에서 오릉사거리를 지나 삼릉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왼쪽으로 꺽어 지는 지점에 마을 입구가 나온다.
마을 진입도로 초입에는 이 마을이 품고 있는 각종 문화재 이름을 새긴 표지석 5개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문화재 표지석은 이 마을이 여느 마을과 다르게 문화재의 보고임을 알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라의 건국설화가 담긴 소중한 유적들이 마을 입구에서 이 마을의 품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담긴 나정이 있고, 이어 신라육부촌장의 영정을 모신 육부전(양산재)이 나온다.
마을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주민들의 쉼터인 정자와 마을회관이 보인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남간마을의 전경은 한푹의 그림과 같은 조용한 시골 마을 그 자체다.
오목한 지형에 아늑한 동네 골목에는 기와를 이고 있는 집들이 이어져 시골마을 치고는 제법 깊고 다양한 길이 이어져 있다.
남간마을에는 나정과 육부전를 필두로 남간사지 당간지주, 일성왕릉, 최초의 궁궐터 창림사지, 남간석정, 월암재 등의 문화재가 있다.
남간마을은 지금까지도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회관 바로 맞은편 수 백 년 돼 보이는 노거수인 당수에 새끼줄과 흰천이 둘러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이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지인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의 왕실 의례 장소로 현재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등이 발굴 결과 확인됐다.
나정 인근 양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육부전은 신라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이씨, 최씨, 손씨, 정씨, 배씨, 설씨 등 신라의 초대 여섯로 각기 시조 성씨가 된 6촌장을 기리기 위해 1970년 건립했다.
이곳을 양산재로 부르다가 2019년에 강당을 새로 증축하고 육부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남간사는 탑동 남산에 있었던 절로, 고승 혜통의 집이 있었던 은천동에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이 절의 승려였던 일념이 이차돈의 순교 내력을 실은 ‘촉향분예불결사문(觸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들에서 남간사가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번창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깊이가 1.4m 정도 되는 이 우물은 자연석으로 외벽을 짜 올리고, 위쪽은 2장의 다듬은 돌로 원형 틀을 덮어 마감했다.
우물 틀 둘레에 위아래로 이중테를 둘렀는데, 윗단은 직각 아랫단은 곡선으로 조각해 놓았다.
이곳의 우물은 분황사 석정, 재매정과 더불어 신라 우물의 원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남간사 터에서 남쪽으로 500m가량 떨어져 있는 이 당간지주는 양지주가 동서로 대립해 있고 상하에 간공(杆孔)이 있으며 높이는 3.6m이다.
특히 이 당간지주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 3개가 뚫려 있는데, 맨 위의 ‘+’자 모양 구멍은 다른 당간지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 없이 만들어져 그 모습이 소박하고 단순해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남간마을 가장 안쪽에는 신라 제7대 일성왕(재위 124~154)을 모신 일성왕릉이 있다.
경주 남산의 북쪽에서 뻗어 내리는 능선 서쪽의 경사면에 위치한 일성왕릉은 보광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 소나무들이 울창한 곳에 위치해 있다.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나정이 있다. 왕릉의 봉분은 지름 약 16m, 높이 약 5m로 단정하게 손질이 잘돼 있다.
왕은 북쪽 변방에 침입하는 말갈인을 막고, 농토를 넓혀 제방을 쌓는 등 농업을 권장했으며, 백성들에게 금·은·보석의 사용을 금지해 사치풍조를 멀리하게 했다고 한다.
보광사 인근에는 웅장한 규모의 ‘경덕사’라는 사당이 있다. 경덕사는 신라 개국의 원훈이며 배씨 문중의 시조인 금산가리촌장 배지타와 그 후손으로 고려개국의 원훈이며 배씨 문중의 중시조인 무열공 배현경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명활산 아래 유허비각이 있던 것을 문화재 정리 사업으로 1984년에 현 위치로 이전했으며, 다시 사묘로 개작해 금산가리촌장을 주벽으로 하고 무열공을 함께 배향했다.
이 마을에는 최근 신축한 한옥들 뒤편으로 다소 높다란 곳에 ‘월암재’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신라문화원에서 개보수 후 고택문화체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함덕용 씨는 “남간마을은 신라시대에 동네 일대에 있었던 남간사라는 절 이름을 따서 지금까지 전해진다”면서 “최근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아름다운 한옥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문화유적을 품고 사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고 마을의 가치를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