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줄기 둘러싸여 펼쳐진 알록달록 가을 끝자락 풍경

주왕산면 내룡리 정경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비해 따뜻한 봄, 시원한 가을은 빨리 보내고 싶지 않은 아쉬움 때문인지 왠지 짧게만 느껴진다. 긴 겨울을 앞둔 늦가을의 하루하루는 아깝고 아쉽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 등 가을을 규정하는 말들이 많은 이유는 짧다는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굳이 가을을 규정하는 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11월이 남기고 갈 마지막 가을 풍경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의 얼음골과 주산지리의 주산지, 절골 투어에 최인서 청송군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했다.

내룡리와 주산지리는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왕산 국립공원 자락에 위치했다. 산 모양대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가다 보면 농촌이라기보다는 산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거미줄처럼 뻗은 주왕산 줄기들이 두 마을은 감싸고 있어 물과 공기가 맑고, 일교차가 커 이곳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산 사과’라 하여 야물고 당도가 높아서 상품 가치가 높다고 한다.
 

여름철 얼음골 100m가 넘는 인공폭포가 장관이다

△내룡리 얼음골.

내룡리 얼음골은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청송 얼음골은 의성 빙계, 밀양 얼음골, 전북 진안 풍혈냉천과 더불어 꽤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여름에 얼음이 얼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최인서 문화관광해설사는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여기에는 실제로 여름에 얼음이 얼고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며 “얼음골에서 몇 십 년을 살고 계시는 김상필(83세) 어르신이 얼음이 어는 두서너 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고 설명했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바람은 늦가을 바람만큼 차갑다. 냉기는 한여름으로 갈수록 더 차가워진다고 한다. 최 해설사 설명에 따르면 얼음골 계곡은 ‘냉장고 지형’이라서 사시사철 온종일 해가 들지 않아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인 냉기가 바위틈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여름철에 기회가 되면 실제로 얼음을 확인시켜 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인공폭포가 겨울에는 거대한 빙산을 이룬다

사계절 내내 섭씨 3~4도를 유지하며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약수로 인기가 높다. “특히 장을 담그는 철이 되면 멀리서도 찾아와 이 물을 길어가요, 이 물로 장을 담그면 장맛이 깊어진다고 하더군요, 이 물로 삼계탕을 몇 번 끓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더군요. 그냥 뭐 삼계탕 맛이죠, 한 가지 확실한 건 떠온 물을 며칠 두어도 침전물이 안 생기고 물맛이 변하지 않아요” 라고 최 해설사는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음골에서 펼쳐지는 드라이툴링 경기 모습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계곡 물을 끌어올려 만든 100m 넘는 인공폭포는 피서객을 끌기에 충분히 웅장하고, 겨울이면 깊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인공폭포를 거대한 빙산으로 변신시킨다.

최 해설사는 “여름에는 썸머 드라이툴링 대회가 열리고, 겨울에는 국제 아이스 클라이밍 대회가 열리지요. 지난겨울에는 유튜브을 통해 겨울 여행 핫 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젊은 커플들이 몰려들어 군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한다고 애먹었어요. 즐거운 비명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주왕산면 주산지리 전경

△주산지리 주산지.

내룡리와 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한 주산지리에는 300년 동안 마르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주산지가 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주산지는 1720년 8월 조선 경종 원년에 공사를 시작해 그 이듬해 10월에 완공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길이 200m, 폭 100m, 수심 8m로 현재까지 혹독한 가뭄에도 한 번도 바닥을 들어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르지 않는 이유를 묻자 최 해설사는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응결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아래에 깔려 있고 그 위에 비용결음회암과 퇴적암이 쌓여 전체적으로 큰 도자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루어, 비가 오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50년 동안 물속에 뿌리를 박고 끈끈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왕버들은 주산지를 지켜온 터줏대감들이다.

“사계절 다른 멋스러움을 뽐내는 주산지는 2013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105호로 지정되어 청송이 자랑하는 자연유산이 되었다”고 최 해설사는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주산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경북 봉화 출신 고(故) 김기덕 감독의 2003년 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오징어게임으로 ‘2022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영수 배우가 극 중에서 노승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불미스러운 행위로 추락한 거장과 영화의 가치는 퇴색했을지 모르지만, 주산지가 만들어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가을 주산지 2

△주산지리 절골.

주산지 공용주차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절골은 국립공원 주왕산의 한 줄기다. 아직 까지는 보존이 잘 되어 생태적 가치가 높고 경치가 아름다워 가을에는 몰리는 탐방객을 사전 예약으로 그 수를 조절하고 있다. 단풍철인 10월부터 11월까지 하루 예약 인원을 13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절골에서 가메봉 구간(5.7km)은 협곡으로 이어져 있다. 이 산행 코스를 운수(雲水)길이라 하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구름과 물을 벗 삼아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은 등산객들이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급하지 않은 경사를 따라 좁게 형성된 협곡 물길을 따라 두어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아마존 밀림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움을 떠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외지에서 지인들이 오면 꼭 이곳을 안내한다는 최 해설사는 “절골은 수도 없이 다녔지만 올 때마다 새롭게 다가와요. 혼자만 알고 간직하고 싶은 원시적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해 가끔은 경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자주 오시다 보면 절골이 품은 정취의 깊이를 실감하실 겁니다”라며 절골이 감추고 있는 아름다움을 구구절절 표현했다.

사과를 한창 수확하는 철이라 인적이 드문 마을은 바람이 휑하니 지나갈 때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이 농촌을 지키는 노인 대부분은 하루하루가 힘에 부치는 삶을 살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사과 금이 좀 좋아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해마다 가격 변동이 심한 농산물 유통망이 가진 구조적 문제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생리적인 본능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농업은 천대받으며 사양산업이 되었다. 농촌에 사는 노인 한 명 어깨에 도시 젊은이 열 명이 올라타고 있는 삽화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일 것이다.

이러한들 저러한들 이곳에 터 잡아 사는 사람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만추의 산들은 아름답게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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