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승천한다. 자세히 보니 비상하는 푸른 뱀이다. 분홍빛 자태를 화려하게 뽐내는 목련이 있어 혐오스럽지 않다. 생기가 넘친다. 한 땀 한 땀 망치와 칼로 표현한 나무의 질감은 포근하기까지 하다. 김정림(47·여)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기념해 서각 작품을 내놓은 김 작가는 “다사다난을 넘어 암울했던 2024년은 모두 잊고, 모든 이들이 꽃길만 걷기를 기원한다”면서 활짝 웃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결혼과 육아 중에 늦깎이로 공예에 입문해 3년 넘게 서각에 몰두한 김 작가는 “팔순을 바라보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친정어머니 덕분에 서각에 입문했고, 미술에 관심이 깊었기에 글과 그림을 나무에 옮겨 입체화하는 서각에 쉽게 녹아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겨울 정도로 긴 시간 망치와 칼로 평면인 나무를 입체화한 뒤 색을 입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꾸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꾸준함’이란 재능을 물려받은 나에게 ‘딱’이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그림을 2번, 3번 새겨도 똑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자체가 서각의 매력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내 생각을 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다”라면서 “작업 중에는 걱정조차도 사라져 버리고, 무념무상이 된다”라고 했다.
글자, 한자 위주의 단조로운 전통 서각에서 벗어나 있는 김 작가는 ‘확장성’을 말했다. 그는 “캘리그래피가 유행하면서 한글 위주의 서각도 많이 하는 추세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한계가 없다”라면서 “나무의 질감, 색상 등 무궁무진한 표현방식을 녹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각양각색의 질감과 향기를 가진 나무라는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라는 김 작가는 “나무는 편안함 그 자체”라면서 “매력적인 나무에 망치, 칼이라는 투박한 도구로 지루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과정 자체가 중독”이라면서 “몰입하는 과정에서 욕심과 근심은 모두 사라진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지구 반대편을 상상한 ‘행성의 봄’, 꽃에 둘러싸인 행복을 새긴 ‘시간의 향기’ 작품으로 대구미술대전에 입상했는데, 작가라는 말보다 ‘서각인’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서를 쓴 장계향 선생이 개척한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 있는 소설가 이문열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낸 석간고택 대문에 ‘서기집문(瑞氣集門 : 상서로운 기운이 이 집 문안에 다 모여 든다)’을 새긴 작품이 걸렸는데, 김 작가의 솜씨다.
‘행복’을 작품의 세계관으로 정립하고 싶다는 김정림 작가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내 작품을 보고 웃으면서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라면서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서 서각이라는 예술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