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준호 (주)선이한국 대표
▲ 문준호 (주)선이한국 대표

최근 뉴스를 보면 “전쟁(WAR)”이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들린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국방부 이름을 전쟁부로 바꿀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니, 지금의 긴장된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전쟁이라는 말은 언제나 돈과 연결돼 묵직한 울림을 준다.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실은 정정기사가 떠오른다. 무려 103년 전 영란은행(BOE)이 했던 거짓말을 바로잡은 내용이었다. 당시 영국은 전쟁채권을 발행했는데 시장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입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해버렸다. 실제로 돈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성공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이 자금은 국가 부채라는 이름으로 덮였고, 사람들은 100년 넘게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더 흥미로운 건 FT가 덧붙인 해명이다. “국가 부채 관리란 원래 복잡하고, 특히 전시에는 거의 헤라클레스급 과업이다.” 쉽게 말해 “전쟁인데, 뭐 어쩌겠냐”는 태도였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실은 분명하다. 전쟁은 화폐 가치를 가장 빠르고 거칠게 녹여버린다. 전쟁이 터지는 순간,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정부는 화폐를 찍어내며, 사람들의 주머니 속 돈은 눈 녹듯 사라진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테더(Tether)의 금 투자 소식은 예사롭지 않다. 테더는 이미 스위스 취리히 금고에 87억 달러 규모의 금을 보관 중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캐나다 토론토에 상장된 금 로열티 기업 ‘Elemental Altus’의 지분 37.8%를 1억 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추가로 1억 달러를 더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단순한 재테크가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과 방향성을 담은 행보임이 분명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쟁과 불안은 종이 화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반대로 금처럼 실물로 존재하는 자산, 그리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은 힘을 얻는다. 특히 미국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순간, 금과 함께 강세를 보일 새로운 화폐는 디지털 달러와 스테이블코인일 가능성이 크다. 테더의 금 투자는 단순한 방어책이 아니라 미래 글로벌 화폐 질서 변화를 겨냥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100년 전 전쟁채권이 허공으로 사라졌듯, 지금의 종이 돈도 언젠가는 힘을 잃을 수 있다. 다가오는 시대에 강세를 보일 화폐는 종이가 아니라, 실물과 디지털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다. 이것이 전쟁이 남긴 교훈이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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