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은 미국 옵션 만기일이었다. 시장은 초입부터 두려움이 짙게 깔렸다. 금리도, 실적도, AI 수요도 불확실한 가운데 작은 소문 하나에도 지수는 과하게 흔들렸다. 단순한 걱정을 넘어서 시장이 예민한 공포의 문턱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억지로 긍정적인 신호를 찾다 보니 작은 변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라클 CDS 프리미엄이 아주 미세하게 내려앉은 것이다. 11월 초 80에서 114까지 단숨에 치솟던 지표가 처음으로 멈칫했다. 이 조그만 숨 고르기가 시장을 안정시키진 못하지만, 가뭄의 빗방울처럼 한순
올해 시장은 마치 한 편의 긴 드라마 같았다.5천 년 동안 인류가 사랑해온 금과, 이제 겨우 중학생 나이쯤 되는 비트코인이 정면으로 맞붙은 시즌이었다. 날카로운 기술, 화려한 서사, ETF 자금 유입… 비트코인은 “이제 곧 금을 잡는다”고 외쳤지만, 마지막에 웃은 쪽은 결국 역사였다. 외계에서 날아온 금속 하나가, 지구인이 만든 코드 전체를 다시 눌러버린 것이다.비트코인은 올해 유난히 피곤한 한 해를 보냈다.한때 ‘디지털 금’이라 불리며 대체자산의 왕좌를 노렸지만, 시장은 점점 이 자산을 ‘인플레 헤지’가 아니라 ‘고위험 성장자산’
우리는 지금 경제 질서의 구조적 변곡점에 서 있다. 돈이 곧 권력이자 안전망이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인류의 경제사는 언제나 ‘희소한 것’을 두고 벌어진 경쟁의 기록이었다. 토지가 희소하던 시대에는 토지를 가진 자가 귀족이 되었고, 자본이 부족하던 산업혁명기에는 공장을 세운 자가 부를 독점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는 역설적으로 돈조차도 희소하지 않은 ‘과잉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과잉의 국면에서 경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치의 방향을 묻기 시작한다.AI와 자동화의 확산은 노동의 의미 자체를 더욱 강하게 흔들고
요즘 이런 대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요즘은 부동산이야, 주식이야?”예전엔 정답이 있었다. “당연히 부동산이지.”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서울 중심을 제외한 집값은 멈췄고, 돈의 향기는 점점 증시로 옮겨가고 있다.이젠 ‘건물’이 아니라 ‘칩’과 ‘데이터’가 부를 만든다.이 변화의 키워드는 진정한 이이제이(以夷制夷)다.과거엔 부동산으로 경기를 살렸지만, 이젠 주식으로 부동산을 안정시키려 한다.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내세워 5년간 150조 원 규모의 민관 합동 자금을 만든다.AI, 반도체, 바이오 같은 첨단 산업에 투자해 돈의 흐름을
2000년 닷컴버블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했고, ‘닷컴’이라는 이름만 붙여도 주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기술보다 돈이 먼저 달렸고, 결국 거품은 꺼졌다. 25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혁신의 파도 AI가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2025년 하반기, 글로벌 증시의 중심 화두는 다시 “AI 버블인가, 혁신인가”로 모인다.데이터를 보면 열기는 확실하다. 생성형 AI 인프라 투자액은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고,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는 2027년까지 1조4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
2025년, 세상은 데이터 위에 서 있다. 스마트폰은 하루 수십억 번의 터치를 기록하고, 자율주행차는 매초 테라바이트급 영상을 분석한다. 사람의 언어, 행동, 표정, 심지어 뇌파까지 디지털로 수집되며 인공지능의 연료가 된다. 기술의 진보 속도는 산업혁명보다 열 배 빠르고, 데이터는 그 속도를 유지시키는 엔진이 되었다.이제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 국가의 안보, 개인의 일상까지 모두 데이터로 측정된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누구나 데이터를 모을 수 있지만, ‘실용데이터’를 만드는 능력은 극소수만 가진다.
2025년, 세계 금융의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금리 정상화의 끝자락에서 자금은 다시 ‘기술이 만든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 중이다. 미국 SEC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더리움 현물 ETF(상장지수상품)를 승인했고, 블랙록은 부동산·채권·사모펀드까지 블록체인 위에 옮기기 시작했다. JP모건의 ‘온체인 펀드’는 수조 원 규모로 성장했고, 나스닥은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한 거래 인프라를 열었다.스테이블코인은 단지 예고편이었다. 진짜 영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미국은 눈에 보이는 모든 자산을 블록체인 위로 옮기고 있다. 부동산, 채권, 사
세상은 언제나 강자의 화폐로 가격을 매겨왔다. 고대에는 황금이, 근대에는 파운드가 그 자리를 차지했듯 지금은 달러가 세계의 기준이다. 국제 무역에서도, 국채 발행에서도, 심지어 디지털자산의 영역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모든 가치의 저울이 된다. 화폐의 역사는 곧 힘과 패권의 역사였고 지금 이 순간도 예외가 아니다.겉으로 보기에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이 낳은 새로운 결제 수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달러 표시 채권, 다시 말해 미국 통화체계의 연장선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금융
한 세기의 흐름을 긴 렌즈로 바라보면, 자산 가격을 움직여온 가장 근본적인 힘은 언제나 ‘수요’였다. 공급은 한정돼 있었다. 땅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기업과 기술도 하루아침에 무한히 불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요의 얼굴은 시대마다 달랐다. 인구 구조와 양극화라는 두 축이 맞물리며, 자산을 향한 갈망은 물처럼 차올랐다.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종종 이성적인 계산보다 세대의 욕망이었고, 그 욕망이 모여 곧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경제사의 핵심 장면이다.비유하면 간단하다. 열 살 아이에게는 자산 수요가 없다.
요즘 사회의 공기 속에서 가장 자주 감지되는 단어는 단연 투자다. 주변 대화는 물론이고 뉴스와 온라인 공간까지 온통 투자 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누군가는 이 흐름을 ‘대투자의 시대’라 부른다. 동시에 또 하나의 키워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FOMO,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심리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강렬한 FOMO에 빠져드는 것일까. 단순히 남들이 돈 버는 것이 부러워서만은 아니다.첫 번째 이유는 화폐의 타락, Debasement다. 로마시대 은화 속 은의 함량이 줄어들며 신뢰를 잃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화폐 역시 가
10월 15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단순한 규제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간의 ‘간보기’식 미세조정과 달리, 한 줄기 의지를 꿰어낸 종합의 틀이었다. 이번 정책의 중심은 ‘안정’이 아니다. 일정 부분의 하락까지 감수하겠다는 태도, 어쩌면 1그램의 용기를 드러낸 것이다.시장은 언제나 숫자가 아니라 뉘앙스를 먼저 읽는다. 이번에도 “이제는 다르다”는 작은 떨림을 감지했을 것이다. 집값 안정의 차원을 넘어, 정책이 사회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다.지난 정부의 실패는 하락을 두려워한 데 있었다. 시장은 오르고
서울 강남 재건축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뜨겁다. 최근 오세훈 시장과 조국 전 장관의 공방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 싸움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재건축을 촉진하면 공급이 늘어나 집값이 잡힐까?”라는 질문이다.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이미 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강남·서초·송파 전역에서 재건축이 진행됐지만 가격은 결코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신축 공급은 시장에서 상품 가치를 높이고 희소성을 강화하며 가격을 끌어올렸다. 재건축은 수요를 억누르기보다 기대를 자극하는 호재로 작용한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거대한 흐름이 도사리고 있다. 첫 번째 흐름은 초저출산이 만든 ‘피크아웃’ 메타다. 2022년 기록된 최저 출산율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은 주거 수요가 감소하며 매력이 약화되고, 자산 보유자들은 더 안전하다고 여기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지방 집값 하락과 서울 집값 상승은 단순한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적 불균형의 결과다.두 번째 흐름은 세대 간 부의 이전이다. 부모 세대의 자산이 자녀 세대로 사실상 준증여
요즘 자금시장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과거의 양털깎이는 가격을 단숨에 무너뜨려 공포를 퍼뜨렸지만, 지금의 양털깎이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들고 천천히 다가온다. 이름은 인플레이션이다. 이제는 가격이 붕괴되기보다 물가가 끊임없이 치솟고, 산업과 기업, 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의 압력에 시달린다. 버티는 쪽만이 다음 사이클에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쪽은 자연스레 밀려난다. 코로나 이후 경기 사이클이 짧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5년간 쏟아부은 재정이 남긴 높은 물가의 고착이 더 큰 이유로 작용한다. 결국 지금의 시장은 겉으로는 잔
최근 금융위 정책 발표를 계기로 부동산 시장을 다시 살펴본다. 며칠 전 실거래 내역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비강남권 아파트가 올 초 무려 15억 원에 거래된 것이다. 시장이 이토록 뜨거운데도 서울 집값이 고평가됐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21년만해도 노형욱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신호를 보냈지만 지금은 그마저 사라졌다. 나라님들 눈에는 태평성대처럼 보이는 걸까. 경고 없는 풍경 속에서 “보유세를 더 걷기 위해 집값을 띄운다”는 루머가 커뮤니티에 퍼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다음 주 발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화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에 닿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노동도 마찬가지다. 한 시대를 지탱한 가치였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앞에 서 있다.노동은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이 희소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진 존재였고, 그 노동은 곧 가치였다. 사회는 이를 기반으로 굴러갔고,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생계와 존엄을 유지했다. 노동은 곧 인간을 증명하는 수단이자 공동체의 기초였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테슬라는 “노동의
최근 뉴스를 보면 “전쟁(WAR)”이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들린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국방부 이름을 전쟁부로 바꿀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니, 지금의 긴장된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전쟁이라는 말은 언제나 돈과 연결돼 묵직한 울림을 준다.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실은 정정기사가 떠오른다. 무려 103년 전 영란은행(BOE)이 했던 거짓말을 바로잡은 내용이었다. 당시 영국은 전쟁채권을 발행했는데 시장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입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해버렸다. 실제로 돈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성공한 것처럼 꾸
지난 금요일 테슬라 주가가 상승했지만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가 19% 폭등했고, 로켓랩도 10% 올라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시가총액 40억 달러 남짓의 아이온큐가 단숨에 거래대금 상위에 오른 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시장이 먼 미래의 가치를 앞당겨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다가올 9월 FOMC 회의는 사실상 시장 변수로 기능하지 않는다. 금리 인하 가능성은 이미 100% 반영됐고, CPI가 다소 높게 나와도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안팎에서 안정세라 충격은 제한적이다.
지난주 미국이 국방부를 ‘전쟁부’로 되돌릴 수 있다는 뉴스에 이어, 또 다른 의미심장한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국방부 내부에서 “본토와 서반구 보호를 우선하자”는 새로운 국가방위전략(NDS) 초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수년간 중국 견제를 최우선에 둔 전략 노선과는 크게 다른 궤적이다.만약 이 변화가 실제 정책으로 굳어진다면, 미국의 지정학적 후퇴는 곧 세계경제 구조의 균열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세계 공급망의 중심이자 국제금융의 최종 보증인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전략의 초점이 ‘해외 견제
실거래가 제도는 한때 부동산 시장을 맑히는 혁신이었다. 다운계약을 끊고 누가 얼마에 집을 샀는지 드러내며 거래를 투명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빛은 그림자가 되었다. 국토부가 공개하는 거래 데이터는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최고가’만 부각된다. 단 한 건의 고가 거래가 시장의 얼굴이 되고 평균은 사라진다. 불안한 실수요자들은 뒤처질까 서둘러 매수에 뛰어든다. 패닉바잉은 반복된다.문제는 균형의 실종이다. 국토부는 시장을 달구는 정보는 신속히 공개하면서도 안정을 위한 데이터는 감춘다. 자금조달계획서 같은 건전성 지표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