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제대혈은행의 개설은 그 당시 공여자 부족으로 조혈모세포이식 시행에 제한적인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법이었다. 공여자 부족은 학회를 통해서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와 HLA(인간 림프구 항원) 정보를 공유하여 제공하기도 하고, 받기도 할 정도로 적극적인 상황이었으나, 그 당시에 다른 장기이식처럼 받을 환자 수에 비해 제공자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였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제대혈에서 얻은 조혈모세포 이식은 또 다른 돌파구였다. 그러므로 충분한 양의 확보는 골수에서 얻은 조혈모세포와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때로는 제대혈 조혈모세포가 이식을 받을 환아의 필요량에 부족할 때에는 HLA가 동일한 2개의 제대혈이식도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해서 HLA 다음으로 조혈모세포 양이 조혈모세포이식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하나의 여건으로 제대혈은행을 개설하기 위해서 안정적으로 산모의 태반을 공급받을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당시에 종합병원 단위에서 이웃 대구파티마병원은 전국에서 출산이 가장 많은 병원이었으나, 이에 못지않게 산모가 선호하는 개인 산부인과의원이 시내 중심지에 있어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고) 이기영 선생(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역임 후 개원)을 찾아서 제대혈은행 개설을 위해서 산후에 버려지는 태반을 활용할 방안을 설명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 주어 담당 산부인과 정지영 전문의를 만나 전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였다. 이제 모든 사전 조사가 계획되어 실행에 올리면 창업이 되는 수순이었다.

그 당시 경북대병원 소아과에는 교수진이 4명으로 각자 맡은 분야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국립대병원이어서 교수 증원이 제한되어 타 사립대학병원이나 국립 서울대병원에 비해서 교수진이 턱없이 부족해서 한 교수당 책임은 2~3배나 되었다. 원로 구자훈 교수는 춘추로 개최되는 소아과학회에 다녀올 때마다 기분이 상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이유가 서울의 한 원로교수가 지방 대학을 비롯해서 모든 대학의 교수들은 우리 대학에서 교육시킨 스텝(staff)으로 채워져야 병원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면서 우리 대학병원을 ‘교수 양성 교육기관으로 승격시켜야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토로하였다. 그 것도 지금처럼 10개의 분과로 세분화되어 각 분야마다 첨단 의술을 펼치고 있는 현실에서 4명의 교수진으로 커버한다는 것이 역부족이었지, 교수 인력만 충원해준다면 경쟁력은 문제가 안 되었다. 그 당시 필자는 주 세부분과인 소아혈액종양과 진료와 세포유전학 실험실 운영뿐 아니라, 소아 신장, 소아 심장, 신생아실 진료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혼자 커버하고 있었던 것으로 5명이 해야 할 진료를 혼자 담당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 후에 있었던 일이지만, 병원 내 소아과에 할당된 입원 환자 침상(bed) 수는 제5병동의 42개였는데, 필자가 치료를 위해서 입원시킨 환자의 수가 무려 35명이나 되었다. 같이 근무하던 다른 분과 교수는 자신의 환자를 입원시키려고 하니, 빈 침실이 없다고 당시 과장을 찾아가서 한 분과에서 입원 침상을 독점하지 말고 분야별로 침상수를 나누자고 제의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필자에게 치료받으러 찾아온 환자들을 타 병원으로 전원하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병원 자체에서 ‘타과에 배정되었지만 비어 있는 침상은 공유해야 한다’고 규정을 바꿈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 당시로는 필자에게 주어진 업무는 만만치 않은 터였다. 필자는 정년퇴임 날까지 맡은 업무 즉, 진료, 교육, 연구를 혼자 수행하면서 미래에 계획될 어린이병원 개원을 위해서 세부분과 교수 충원에 혼신의 힘을 다 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분야의 전문 진료분과의 교수는 진료의 업무량에 비례해서10년 간격으로 후임교수를 뽑아 업무를 분담하거나, 보좌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그렇게 하고 있던 터였다. 다른 대학병원의 교수들도 대부분10년 터울로 후임 교수를 선정해서 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임의(fellow) 제도를 도입해서 1~2년 또는 그 이상의 (예비) 교수로 역할을 하다가 증원계획이 발표되면 발령을 받는다. 그러나 필자는 지방에서 소화해야 할 모든 분야의 타 분과를 완벽한 진료 수준 형태를 갖추는 것이 목표여서 혈액종양분과에 1명을 더 배정하기보다 ‘없는 분과를 신설해야 된다’고 매번 사양하였다. 그 당시에도 지방 의과대학병원이 생존하는 한 방법으로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발전시켜 특화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으며,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어린이병원 설립이 앞당겨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생각하고 거의 준비가 다 된 벤처 사업 개설에 관해서 심사숙고를 하게 되었다. 필자의 판단력으로 경쟁력과 사업성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소아과학 교실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서 본 사업은 미루기로 하였다. 그러나 지금 현직에서 퇴임하였지만, 벤처 사업에 전념할 수 있고, 얼마든지 재개할 역량은 갖추고 있다. 후일 언젠가 제대혈은행 설립에 대한 벤처기업이 활성화가 되면, 제2의 벤처 산업으로, 신경모세포종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약제개발이다. 이 분야는 우리나라에서는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분야지만, 아직도 이 질환의 치료에 대한 개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세계를 시장으로 개발되어야 할 분야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두 사업은 필자만의 know-how로 경쟁력을 겸비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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