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한 만 마리의 물고기떼, 신비로운 돌산을 이루다

용왕의 아들이 수많은 물고기를 데리고 와 미륵이 됐다는 돌미륵.

처음 보는 광경이다. 산중턱에서 시작한 거대한 바위의 물결이 해발 670m 정상 아래 절터까지 역류하듯 이어졌다. 계곡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돌무더기가 산 아래로 흘러내려 쌓일 것은 쌓이고 멈출 것은 멈추고 깨질 것은 깨지고 다듬어질 것은 다듬어져 바위의 바다를 이뤘다. 그 모습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정상으로 오르는 모습 같았다. 바위들은 합체해 돌의 계곡 전체가 커다란 한 마리 고래로 변신해 산을 향해 올라 가고 있었다. 스페인 몬세라트의 푸니쿨라 산악기차가 연상됐다. 하늘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신비롭기 그지없다. 머리부터 몸통, 선명하게 갈라진 꼬리까지 한 마리의 고래 모양이다. ‘장자’ 첫 구절에 등장하는 북쪽 바다의 물고기 ‘곤(鯤)’을 떠올리게 한다. 곤은 몸의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큰 고기다. 곤은 변해 ‘붕(鵬)이 되는데 한번 날갯짓에 구만리 장천을 날아간다.

이 바위의 바다를 통틀어 ‘암괴류(巖塊流)’라고 부른다. 바윗덩어리가 큰 물결을 만들며 흐르는 ‘돌강’이다. ‘너덜겅’이라고도 한다. 너비가 넓은 곳은 100m, 길이가 700m 이상이라고 한다. 면적만 115,149㎡나 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 너덜강에 붙인 공식 명칭은 ‘천연기념물 528호 만어산 암괴류’다.

돌강의 주인은 만어산 정상 아래 있는 만어사(萬魚寺)다. 『삼국유사』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만어’ 딱 한마디로 불교 프레임 속에 가뒀다. 레토릭의 힘은 세다. 자연현상을 비롯한 우주 만물의 이치가 부처님 손바닥에 있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 ‘만어’는 돌강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부처님 설법을 듣고 일만 마리의 물고기로 변했다는 설화의 압축파일이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 정상으로 헤엄쳐 올라가는 모습이고 물고기들이 향하는 곳이 부처님 그림자가 있는 만어사(萬魚寺)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0년 전 가락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버전을 바꾸고 이야기 덧붙여 완성한 설화의 바다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탑상’편 ‘어산불영(魚山佛影)’ 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만어사는 옛날의 자성산 또는 아야사신(마땅히 마야사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물고기이다)인데 그 옆에 가락국이 있었다. 옛날에 하늘에서 알이 해변으로 내려와 사람이 됐다. 그가 나라를 다스렸으니 수로왕이다. 나라 안에는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 다섯 명의 나찰녀가 살고 있었는데 독룡과 정을 통할 때마다 번개와 비가 내려와 4년 동안 오곡이 익지 않았다. 수로왕이 주술을 걸어 막아보았지만 되지 않자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설법을 청했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자 나찰녀들이 오계(五戒)를 받고 그 뒤로 재해가 없었다. 동해의 물고기와 용도 돌로 변해 골짜기가 돌로 가득 찼다. 돌마다 쇠북과 경쇠(옥 또는 돌로 만든 악기) 소리가 났다. 대정 20년 경자는 고려 명종 11년(1180)인데 처음으로 만어사를 세웠다.”

가야의 첫 왕 김수로가 나라를 다스릴 때 일이다. 옥지라는 못에 못된 용이 살았는데 역시 해롭기만 한 나찰녀 다섯 명이 못에 드나들면서 교합을 했는데 이들이 통정을 할 때마다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져 농사를 망쳤다. 그 세월이 4년이나 됐으니 먹고 죽을래야 보리 기장 같은 기초농산물 밖에 안 나오던 2,000년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수로왕이 주술을 부려 막아보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부처님께 머리를 숙이고 설법을 부탁했다. 설법을 들은 나찰녀와 용이 감복하고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줄을 이어 찾아와 돌로 변했는데 그 돌이 만어사 앞에 펼쳐진 돌강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만어’ 설화는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가다듬어졌다.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삼국유사』 인용구 중 ‘동해의 물고기와 용도 돌로 변해 골짜기가 돌로 가득 찼다’는 대목을 서사적 이야기로 꾸몄다.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소개되는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죽을 때가 되자 무척산에 사는 신통한 스님(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그곳’이라고 가르쳐줬다. 왕자는 물고기 떼를 이끌고 길을 떠나 만어사에 도착했다. 왕자는 만어사에서 5m가 넘는 바위(돌미륵 미륵바위)가 됐고 왕자를 따라온 수많은 물고기는 크고 작은 돌과 바위가 됐다. 이 돌이 만어석(萬魚石)이다.

만어사 전경.

만어사는 작은 절이다. 대웅전과 삼성각과 미륵전, 요사채, 객사 등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79년에 중건됐다고 한다. 대웅전과 삼성각 동쪽에 미륵전이 있는데 이 미륵전이 물고기 떼를 이끌고 온 용왕의 아들, 돌미륵이 있는 곳이다. 미륵불상이 조성돼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가 들어앉아 있는데 이 돌이 미륵바위, 돌미륵이다. 돌미륵은 앞에서 보면 코끼리, 옆에서 보면 고래가 고개를 물 밖으로 내미는 모습 같기도 하다. 불가에서는 부처님, 사천왕상으로 보고 있다.

미륵전 전경.
용왕의 아들을 따라왔다가 돌로 변한 물고기. 가운데 보이는 미륵전에는 돌미륵으로 변한 용왕의 아들이 있다.

미륵전 앞 마당에 서면 만어사 설화의 주인공인 돌강이 끝없이 펼쳐진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미륵전 앞에 부복하고 있는 것이다. 용왕의 아들을 따라온 일만 마리의 물고기가 전부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그저 하는 빈말은 아닌 듯싶다. 돌강에는 신비한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절을 찾은 관광객, 신도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괴질이 나돌기 전에는 관광객이 꽤 많았다고 한다.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돌을 두드린 자리가 하얗게 변했다.

저마다 작은 돌을 하나씩 들고 바위를 두드려 본다. 이 바위는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쇳소리와 옥소리가 난다고 해서 종석이라고 부른다. 실제 조선시대에는 종석을 밀양의 특산물로 정했고 세종 때는 돌로 악기를 만들려고 했다가 돌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바람에 고른 음이 나지 않는다고 포기했다고 한다.

고려중기 때 건립된 만어사 삼층석탑. 건너편 산 위로 펼쳐지는 운해가 절경이다.

대웅전과 삼성각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보물 제466호다. 『삼국유사』에 고려 명종 11년(1180)에 만어사가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기록됐는데 삼층석탑도 이때쯤 세워졌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보고 있다. 구조와 수법으로 미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탑 둘레 보호철망에는 괴질의 시대에 가족의 건강을 소망하는 표찰들이 빽빽이 꽂혀있다.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운해가 장관이다. 밀양 8경 중 하나다. 운해는 보지 못했다. 새벽 안개가 낀 날이 좋은데 도착한 시간이 한낮이었고 미세먼지가 잔뜩 낀 날이었다.

삼층석탑 둘레에는 가족의건강과 행복을 소망하는 표찰들이 가득 달려 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고 한다. 항상 눈을 뜨고 있어 재액을 방비해주는 벽사의 상징이다. 만어산 말고도 김해 신어산 양산 어곡산 경주 어래산 양평과 가평 경계에 있는 어비산이 모두 물고기 신앙과 관계가 있다. 물고기 신앙의 중심에 어람보살이 있다. 어람보살이 나찰과 독룡 악귀의 해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보살이다. 미륵전 앞에서 돌로 변한 일만 마리 물고기가 모두 어람관음의 손바닥 안에 있다. 어람관음에게 손을 모았다.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는 코로나라는 괴질을 없애고 하루빨리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글·사진=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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