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198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미국혈액학회(American Society of Hematology)는 외국에서 개최된 학회 중에서 처음으로 참석을 한 곳으로 그 규모는 엄청났다. 그 당시 국내에서 학회 참석인원이 많아야 300명이었는데, 여기는 5,000명으로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같이 참석한 사람도 인파에 밀려 잠시 떨어지면,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는 시대이어서, 다시 만나기 힘들 정도로 참가자들이 바글바글(?)하였다. 발표 장소도 10개 이상이어서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참관할 수 있었다. 5일 간 지속되는 학회는 매일 중요한 연제는 제일 큰 방(main hall)에서 열렸는데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 앉아서 세기의 강좌를 들어야 할 정도였다. 많은 의학도들이 이렇게 열정적인 학회 장면에 몰입되면, 자신도 향 후 이런 연구자가 되기를 꿈꿀 수 있다는 생각에, 레지던트 생은 물론이고 의과대학 3~4년생들도 학회 참석을 권유하는 추세이다. 이 학회 참석으로 필자는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지금까지 이 학회를 비롯해서 다른 국제학회에서 많은 연제를 발표하였다. 지금은 ASH학회 참가자가 2~3배 증가하여 미국 내에서도 이 많은 참석자를 수용할 국제 컨벤션 홀을 갖춘 도시는 몇 곳이 되지 않아 늘 개최하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 샌디아고, 올랜도, 뉴올리언스, 애틀랜타에서 매년 번갈아 가면서 개최된다. 그러므로 이 5개 도시는 가끔씩 참석하는 곳이라 지리 파악이 잘 되어 있다.

코로나-19 유행 시작 전, 2018년에 참석한 샌디아고에서의 ASH 학회 때에는 숙소를 학회 장소와 가까운 곳에 정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처음으로 호기심에 부둣가에 정박 중인 요트 배를 빌려 숙소로 정하였다. 배 하나를 통째로 빌려 숙박 만 하는 곳이어서 불편한 곳이었지만, 이색적이고 저렴하고 매력적이어서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문제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과거에 하듯이 호텔명만 가지고 숙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번지수를 택시기사에 알려주어 스스로 정박 중인 배 이름 하나하나 확인해서 찾아야 했다. 열쇠도 항구 사무실에 가서 받아야 되고, 머무는 동안 종업원에 의한 침대 청소는 없어서 스스로 깨끗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세 개의 침실이 있었으니 욕실도 세 개였는데 모든 샤워 실은 팔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작을 뿐 아니라, 주 침실의 화장실에 물이 배수되지 않아 다른 두 곳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으며,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하기 전부터 부둣가 갈매기 소음에 늘 일찍 깰 수밖에 없었다. 괜한 호기심에 선택한 요트에서 지낸 며칠 밤은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서, 처음으로 올리는 여행 후기에 낮은 점수를 줬을 정도였다.

Seeger교수와의 구두 약속에 따라 신경모세포종 세포 검출에 관한 연구는 1987년 3월 귀국 후 필자가 관장하던 염색체검사실에서 계속하였다. 이 암은 콩팥 위에 붙어있는 장기인 부신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진단 시 2/3에서 이미 골수까지 전이되어 있는 4기이므로, CT나 MRI 장비가 없던 시절에는 복부 덩어리(mass)의 진단을 위해서 단순 복부X-선 촬영으로 mass의 음영이 복부의 척추 중앙선을 넘었으면 이 질환을 먼저 생각하고, 넘지 않았으면 신장 암 등 다른 암으로 판단하라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보다 좀 더 정확한 검사가 골수천자 검사였는데, 골수에서 정상 세포 외에 외부에서 전이된 세포의 확인과 여러 가지 임상소견을 합쳐서 잠정적인 진단을 붙이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 모든 병리학자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이 암세포와 형태학적으로 닮은 파란색 원형세포(blue round cell)에는 구별해야 할 세포들이 5개나 되어 확진에 필요한 결정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외과적 수술로 제거 후 병리조직검사에서 확진을 하는 수순이었다. 그런데 Seeger 교수는 이 암으로 확진 되어 항암치료 후 자가골수이식술을 병행했을 때 그 당시로는 최상의 생존율인 60%를 얻을 수 있다는 발표를 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때였다. 그 방법은 수술에 의한 mass적출과 항암 치료 후에 자신의 골수세포를 뽑아, 골수세포 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이 암세포에 대한4가지 항체와 철 면역 염주(iron immunobeads)를 사용해서 골수세포와 혼합을 해서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지남철로 둘러싸인 좁은 유리관을 통과시키면, 암세포 표면에는 4개의 특정한 항체가 붙고, 여기에 다시 면역 염주가 붙은 암세포들은 유리관 벽에 붙게 되어 유리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항체와 면역 염주가 붙어 있지 않은 정상 단핵구(mononuclear cell)는 통과해서 자가골수세포이식을 하는데 이용되는 것이다.

타인의 골수를 얻어서 자신의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골수이식술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Thomas 교수에 의해 연구, 개발되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받았다. 이 교수와의 첫 직접 대면은 2000년 뉴욕에서 개최된 국제세포생물학회에서였다. 필자는 ‘Tuberculosis in childhood cancer during chemotherapy(소아 항암치료 중 발생한 결핵)’와 ‘A comparative study on mononuclear cell separation and cryopreservation of human cord blood(태반에서 얻은 단핵구의 분리와 냉동에 관한 비교연구)’의 2개 포스터 발표를 위해서 자비로 뉴욕에 갔을 때였다. 학회장에는 80세의 나이에 초청이 되어 참가한 분이 있었는데, 필자만 몰랐지, 참가자 모두가 존경의 눈빛으로 인사를 하였다. Thomas 교수가 골수이식 창시자로 노벨상 수상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바로 이 분이 그 분인지는 학회장과 함께 3명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처음 구매한 디지털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난 후였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의학자로서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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