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살짜리 아이가 발뒤꿈치를 다쳐서 상처 봉합이 필요한 상황으로 필자(마취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에스포항병원의 응급실에 방문했다.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서 평소에 소아과 환자를 받지 않지만, 휴일 저녁이고 지역 내에서 소아를 응급으로 봉합해 줄 병원을 찾기가 어려움을 알기에 정형외과 선생님께 직접 부탁드리고 필자가 직접 응급실에 가서 아이를 수면마취 해주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늦게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소아 환자를 진료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응급실에서 아이의 울음을 잘 달래줄 방법이 없어 아무 처치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진정제를 투여해 수면을 유도한 뒤에 금세 치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시행하는 각종 검사나 시술, 간단한 수술 등에서 많은 사람이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면(또는 진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완전히 잠들지는 않지만, 불안을 해소해 주거나 나중에 기억이 안 나는 정도의 상태를 “진정”이라 하고, “수면”은 그보다는 좀 더 의식을 저하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진정, 수면은 환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편안함도 중요하지만 안전함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 대부분은 수면이 필요한 경우 주치의–내과, 정형외과, 치과, 피부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이 직접 약물을 투여하고 검사나 시술, 수술을 시행하고는 있다.
수면을 위해 사용하는 약물들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기 때문에, 때로는 호흡, 혈압이 불안정하거나 약물에 대한 이상 반응이 생기기도 하고, 기도 흡인, 갑작스러운 움직임 등으로 위험부담이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을 꼭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마취과 전문의가 참여해 환자를 살피고 약물 조절하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모든 현장에 마취과 전문의가 참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병원마다 수술실에서 전신마취를 요하는 수술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마취과 전문의가 환자의 안전을 감시하면서 수면을 시행하기를 적극 권장하며, 이를 “감시하 마취관리 (MAC, Monitored Anesthesia Care)”라고 부른다.
이를 얼마나 많이 시행하는가는 병원 인증 평가에서 의료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감시하 마취관리(MAC)”는 간단한 수술이나 시술을 받을 때 전신마취 없이, 필요에 따라 정맥주사로 진정제나 진통제를 사용하면서, 마취 전문의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감시하고 관리하는 마취 방법이다.
쉽게 말해 ‘깊게 재우는 전신마취’와 달리 환자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상태에서 안전하게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실례로, 내시경실에서 수면으로 검사를 진행하려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마취전문의의 도움을 요청받을 때가 가끔 있다.
폐쇄공포증이 있어 진정제를 맞고 MRI 검사를 시도하였으나, 진정이 적절히 안 되거나 중간에 깨서 검사에 실패하는 경우 마취전문의의 도움이 절실하다.
수술실에서 시행하는 간단한 수술에도 불안이 심하여 진정을 요구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수술실에는 늘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므로 “감시하 마취관리”를 해 주면 환자뿐만 아니라 수술하는 의사도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간단한 수술을 예상하고 시작하더라도 어떤 경우는 예상보다 깊은 마취가 필요한 경우가 있어 수술 전 일정 시간 금식을 하고 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은 짧은 회복 시간 후 당일 퇴원이 가능하기도 하다.
보통 일반인들에게 “마취”라는 용어가 생소하고 무섭게 인식되기 쉬우나, 주치의 뒤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마취 전문의가 환자의 안전을 보살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요청하시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