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일요일, 경북한의사회는 오랜만에 회원 친목행사를 개최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되었던 연례행사가 올해는 영덕의 푸른 바닷가를 따라 걷는 ‘블루로드길 걷기 행사’로 새롭게 열렸다. 맑게 갠 가을 하늘 아래 회원과 가족 등 60여 명이 함께하며 정겨운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행사는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열린 ‘진달래 심기 행사’와도 맞물려 더욱 뜻깊었다. 산불 피해를 입은 공원에서 참가자들은 붉은 진달래 묘목을 손수 심으며 “내가 심은 진달래가 잘 자라기를”, “이 산이 다시 푸르게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았다. 직접 식물을 심고 그 생명이 자라기를 기대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원예치유(園藝治癒)’였으며, 자연과 마음이 함께 회복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영덕군은 산불 피해 복원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5~6월 1차 ‘진달래 심기’ 행사에 이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2차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참가자들은 “봄이 오면 내가 심은 진달래를 다시 보러 오고 싶다”며 복원 과정에 동참한 기쁨을 나누었다. 비가 내려 질퍽한 땅에서도 회원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삽을 들며 자연과 교감했다.
약 한 시간 남짓한 행사를 마친 뒤, 일행은 블루로드 4코스(노물항~경정3항) 구간 약 두 시간을 트래킹했다. 늘 바닷가에서 회를 먹던 기억과 달리, 파도와 함께 걷는 시간은 전혀 다른 감동을 주었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 짙푸른 수평선,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의 자유로운 모습은 마치 내가 갈매기가 된 듯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구절처럼, 이번 트래킹은 동해안의 바다를 자세히 보고 오랫동안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걸음마다 스며드는 푸른빛은 바쁘게 살아오며 놓쳤던 자연의 숨결을 되살려주었다. 청정한 동해안의 바다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시각적으로는 바다의 신선한 푸름이, 청각적으로는 처얼썩대는 파도와 갈매기 소리가, 촉각적으로는 바람의 시원함이, 후각적으로는 풀과 소나무, 그리고 바다 내음이 어우러져 온몸의 감각이 자연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트래킹 도중 마주한 산불의 흔적들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과 손상된 계단, 복구되지 못한 보호대들이 길의 상처를 말해주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이 산과 바다가 다시 푸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트래킹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회원들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짧지만 건강하고 특별한 추억이 된 하루였다. 이토록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자연이 우리 경북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웠다.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먼 해외로 떠나지만, 정작 우리 곁의 소중한 자연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조물주가 내려준 특별한 선물을 너무 가까이 있어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트래킹은 가족과 친구들과도 꼭 나누고 싶은 경험이었다.
우리 곁에 이렇게 깨끗하고 건강한 바다와 자연이 있다는 것—그보다 더 특별한 여행이 또 있을까.
멀리 떠나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마음이 맑아지고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곁엔 동해안이 있고, 블루로드길이 있다.
가을 바다의 파도처럼, 내 마음에도 잔잔한 평화가 밀려오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