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아픔의 끝에서 다시 일어서는 마음 담아”
우아지 시조시인 “전통과 신앙, 존재의 근원을 형상화한 진솔한 시세계”
삶의 깊은 상처를 시로 다스리는 시인이 있다. 경북 청도 출신 이석란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코끼리의 지문’(육일문화사)을 펴내며 또 한 번의 문학적 울림을 세상에 던졌다.
이 시인은 50대 후반이던 지난 2014년 ‘문예시대’를 통해 등단한 뒤,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중년의 시세계를 넓혀왔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감성 위에 문학의 언어를 더해, 삶의 결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시집 ‘코끼리의 지문’은 총 4부로 구성됐다. ‘고향뜰’, ‘코끼리의 지문’, ‘화가의 자작나무’, ‘밤하늘 바나나’ 등 네 개의 부에 실린 작품 99편은 상실과 치유, 회한과 희망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표제작이자 제2부 첫 시 ‘코끼리의 지문’은 시인의 깊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생의 거대한 존재였던 시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남은 공허와 회한을 코끼리의 발자국에 비유했다.
이석란 시인은 “정박한 바지선의 휴식 기다리는 것이다. 넓은 바다에 발 담근 물질은 끝이 아닌 희망이라는 물갈퀴이다”라고 시인의 말을 남겼다. 그는 “아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을 노래하고 싶었다”며 “상실이 끝이 아니라 희망의 기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우아지 시조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이석란의 시는 전통, 신앙, 그리고 삶에 대한 사유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표제작 ‘코끼리의 지문’은 시아버지를 잃고 쓴 시로, 떠남과 회귀, 상실과 재생의 양가적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시 속 코끼리는 인도의 전통에서 우주를 받드는 상징물처럼, 시인의 가문을 지탱하는 존재이자 다시 빛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힘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코끼리의 ‘지문’은 존재의 흔적이자 근원의 빛으로 향하는 문으로 읽힌다는 분석이다.
이석란 시인은 청도에서 문학의 꿈을 키우다 50대 중반에 첫 시집을 냈다. 늦은 등단이었지만 이후 행보는 뜨거웠다. (사)부산문인협회, (사)부산시인협회, (사)부산불교문인협회, 부산영호남문인협회 등 다양한 문단 단체에서 활동하며 지역 문학의 저변을 넓혀왔다.
그는 영호남문학 작품상, 문학공간 신인상, 문학도시 작품상, 실상문학 우수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역의 한 독자는 “이석란 시인의 시는 읽을수록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있다. 지역 출신 시인이 전국 문단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석란 시인의 시집 ‘코끼리의 지문’은 단순한 개인적 상실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회복과 희망을 향한 시적 여정이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지문’처럼 남기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다.
문학평론가들은 이번 시집을 “삶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 여성 시인의 진솔한 자화상”으로 평가한다. ‘코끼리의 지문’은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우리에게 묻는다. 상실 이후의 삶, 그 자리에 희망은 어떻게 자라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