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공사협회원사들의 ‘콘센트’가 되고 싶다.”학원도, 과외도 없는 문경의 한 시골마을에서 성장한 고걸(30)씨의 어린 시절은 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그는 “어린 시절 살던 마을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차를 타고 40분이 걸렸다. 촌에서 공부 좀 한다고 했는데, 문경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은 정말 커 보였다”고 회상했다.우연한 기회에 출전한 지리올림피아드는 학업 증진에 자신감을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교내 대회 입상과 도 대회 출전, 여기서 또 뽑혀 전국대회에 나갔고, 최종 전국대회에서 학교에서 유일하게 동상을 수상했다.학교 정문 주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12년부터 지역 의료원에 취업했지만, 근무를 하면서도 항상 자영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어요.”고향 김천을 지키면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해 보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뚜레쥬르 김천 혁신점 대표 윤성호 씨(30).3~4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도 ‘개인사업을 하면 아버지처럼 일찍 기반을 잡고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2015년부터 퇴근하자 마자 여기저기 시장조사를 하면서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김천의료원에 근무하면서 직원으로서의 고충도 느꼈지만 동료들
구미대 산학협력단에서 근무하는 심세화(30)씨는 “2020년은 특별한 해”라며 “2월에 결혼해서 30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구미에서 태어나 구미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 졸업 후 인천공항 내 외국 항공사에 취업해 업무를 하면서 인정받는 직장인이었다.대학 중 영어와 스쿠버다이빙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누구한테도 빠지지 않는 실력으로 전문직장인으로 서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그러던 중 2017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8년간의 서울생활을 청산해야 했다.직장 뿐 아니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한의대학교 한약재 약리학을 전공한 청년 농부 홍경흠(30) 씨는 ‘사과체험농장’ 운영과 ‘사과 명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현재 부모님과 함께 4만3000㎡(1만3000평) 규모의 ‘사과농원(군위군 부계면 동산2길)’을 운영 중인 홍 씨는 어릴 적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린 적이 없었다.20살이 돼 공부를 위해 시골과 떨어진 곳으로 독립했고, 24살 상근병 입대 영장을 받으며 시골로 다시 돌아왔다.그렇게 지난 2017년 정식적으로 과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홍
의성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외지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근무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바른쌀빵(의성군 봉양면 도리원 1길)’을 창업한 한송이(30)·한아름(33) 씨 자매.‘전국 유명 빵집’ 같은 리스트에 들 정도로 “맛있다고 칭찬하는 빵집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바른쌀빵’ 대표이면서 공간대여와 꽃 판매를 담당하는 한송이 씨는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가 재충전을 위해 의성으로 돌아왔다.원래 여유롭고 조용한 걸 좋아했던 탓에 재취업이 아닌 고향에서 창업의 길을 택했다.‘바른쌀빵’에서 제과제
“관객들에게 신기함을 넘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마술사가 되고 싶습니다.”씨아트 매직(C Art Magic) 소속 제너럴매직(스토리가 있는 마술) 전문 김인수 마술사.1990년 포항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 첫 꿈은 축구선수였다.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 축구 경기 중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은 뒤 약 2년 간 후유증을 겪으며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치료받던 당시 TV를 통해 처음 본 마술쇼에서 그는 마술사라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독학으로 마술을 배우고 재료를 손수 만들며 친구들에게 마술을
“방황하는 시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30살, 늦으면 늦은 나이로 대학을 졸업한 유승준 씨.대구에서 태어난 유 씨는 지난 2017년 영진전문대 전자정보통신공학과 학사학위전공심화과정에 입학, 올해 8월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다.2009년 지역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유 씨. 하지만 대학 생활을 순탄하지 않았으며 1학년조차 마치지 못한 채 휴학을 결정했다.곧바로 군 생활을 시작했고 군 제대 후에도 복학보다는 학교를 계속 다닐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결국 2014년 스스로 학교를 나왔
“더불어 나누는 삶, 그 속에서 함께 웃고 싶어요.”경산시립박물관 계약직으로 근무 중인 서주형 씨는 30살이 되면서 ‘더불어 나누는 삶’을 꿈꾸게 됐다.10대에는 우연히 보게 된 자동차 광고에 매료돼 트렌디한 광고기획자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실 막연하게 미술대학에 진학하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고등학교 졸업 후 지방대학 서양화과에 진학을 했지만 트렌드에 민감하고 다양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수도권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고 자퇴했다.이후 수도권으로 상경해
“농사 5년째가 되니 기반이 잡힌 것 같습니다.”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에서 ‘달을 보는 농부’라는 농장을 운영 중인 박민혁(30) 대표는 “가족이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그 감동을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 신선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고 멋쩍게 웃었다.지난 2016년도 경북대 농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전기기사로 일하시던 아버지 (박의엽·63)가 노후 준비를 위해 마련해 놓은 농소면 봉곡리 감나무 밭 3305㎡(1000평)에 고추와 고구마 재배로 농촌에 뛰어들었다.“대학교 2학년 때부터 농사를
한국수력 원자력 예천양수발전소의 함성식 주임은 1990년 강원도 인제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초·중학교를 인제에서 나오고 춘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강원대학교 입학 전까지 늘 아버지 같은 공무원을 꿈꿨다.늘 전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남들과는 달리 무엇이든 전자기기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2016년 당당히 한국수력원자력 공개채용 응시에 합격해 그때부터 에너지를 생산하는 사나이가 됐다.그는 “대학 입학 전까지 아버지가 걸어온 공무원의 길을 걸을까? 생각하다 대학 입학 준비를 하면서 기계·전자·IT가 접목된 발전소의 일을 하기로
의성에서 태어나 의성에서 초·중·의성고를 졸업하고 직업군인 5년간을 마치고 청년창업에 뛰어든 박지원(30) 씨.꼭 하고 싶은 것으로 ‘육가 공장’ 운영을 꼽았다.그는 육류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독일식 도제 기술교육을 수료했고, 건조숙성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최근 의성군 의성읍 동서1길 72번지에서 무항생제 건강한 고기(숙성 고기)와 맛있는 소시지를 판매하는 ‘박가정’을 오픈했다.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식’에 있어서 바른 음식을 위해 정성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서다.빠른 현대화
“성주군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야무진 포부를 밝힌 최희선(30)씨는 현재 성주군청 기획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대구 달성군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기획부서의 홍보분야에 몸담으면서 군정 홍보를 위해 자신 나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지역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목표에서다.현재의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학 시절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부모님을 따라 지역 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축제 기획을 한 사람
“저에게 중요한 가치는 ‘관계’인 거 같아요.”보통사람, 평범한 꿈을 가진 30살 황태희 씨는 영천시청 총무과에 근무하는 새내기 공무원이다.그는 1990년 대구에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며 피해는 주지 말고 살아라”는 부모님 말씀을 지키며 경북대학교에서 경제통상을 공부했다.“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에 ‘역지사지’란 말을 항상 품고 생활하고 있습니다.”평소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던 황 주무관은 어느 날 동네에서 점심 봉사활동을 하면서 작은 실천으로 다
영덕군 영덕읍 내 한 건축자재상에 근무 중인 박대현(30)씨의 꿈은 축구선수였다.영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운동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초·중·고 대학교까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갔다.대학 졸업 후 해병대를 지원해 백령도에서 군 복무를 마칠 만큼 활기차고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었지만, 사회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특히 취업만 생각하면 고민은 깊어만 갔다.20대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운동밖에 없었던 박 씨에게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고민 중이던 그를 이끈 건 부모님이었다.영덕에서 건축자재상을 운영 중인 부모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대학교를 졸업한 김현지(30)씨는 고령군 세무부서 주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이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는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으로 고민을 하던 중 교수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세무서 단기아르바이트를 하면서다.매번 수업으로만 쌓아오던 지식을 실무에 적용해 스스로 역량 발전을 할 수 있었다.미숙했지만 민원업무를 처리해주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그로 인해 공무원의 꿈을 키워나갔고 지금은 주무관이라는 직위를 달고 일을 할 수 있는 세무직 공무원이 됐다.30살을 맞은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면 ‘힘들
“나와 ‘나의 일’과 ‘가정’이 조화로운 삶을 살자”상주시에서 ‘무양주택’이라는 문화공간카페를 운영 중인 박지원 씨(30)씨 삶을 목표다.그는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그래서 제 인생이 참 재미있다”며 웃음지었다.박 씨는 아무 연고도 없고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상주에 자리를 잡았다.올해 서른 살이 되는 박 씨는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나 충남중, 대성고를 거쳐 경기도 용인대학교 체육과학대학 특수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대학을 졸업하며 전공 관련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축구), 장애인스포츠지도사 2급(럭비·농구),
대구대 장애학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도 활동 중인 조영규 씨.고등학교 2학년 18살에 그는 레버 시신경 병증이라는 병으로 시각장애인이 됐다. 지금 그의 나이 30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세월이 18년 그리고 시각장애인으로 산 세월이 12년이었다.그는 6년 전쯤인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세월이 18년이면 18년 동안 세상을 못 본 후에는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18+18. 36살에는 눈이 나아질까? 그때의 생각대로라면 이제 6년만 있으면 다시 세상을 볼 수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결국 저도 같은 직업을 갖게 됐네요.”한울원전본부 홍인애 대리(30)는 1990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강원도 양양에서 보낸 뒤 충남 보령에서 초·중·고를 마쳤다.그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닌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가 한국전력에서 근무한 이력 때문이다.한전 산하의 수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오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사하는 일이 잦았다.한국전력은 전력산업구조 개편으로 발전부문을 지난 2001년 분리했다. 이때 한수원은 원자력과 수력발전을 포함해 별도 운
“행화촌이라는 새로운 농촌체험공간을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농업을 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김태윤 행화촌 대표는 30살임에도 불구하고 10년 경력의 청년농부다.칠곡군 청년농업인 김태윤 행화촌 대표가 농업6차 산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행화촌’은 칠곡군 지천면에 소재한 8개 농가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먹거리·체험·숙박·관광을 연계한 ‘지천농업체험협동조합’을 2016년 설립해 농촌자원을 활용한 6차산업화에 노력하고 있다.감자·고구마 캐기, 두부 만들기, 마늘장아찌 만들기, 된장 담그기, 장가르기 등 다
“한적한 봉화에서 태어나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꽃을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제가 수목원을 직장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모릅니다.”한국수목원관리원 소속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난 박소현(30) 주임은 국가기관 직원으로서의 사명감과 고향 지역발전에 기여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했다.박 주임은 수목원 산림생물자원과 문화예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인문계 출신 다운 문장 실력과 조경학도 출신의 디자인 감각을 살려 일의 효율성도 뛰어나다는 평이다.외국어문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