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대 총선이 끝난 뒤 전북 김제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했다. 간판이 있었다. ‘만고풍상상회’ 지친 삶의 냄새가 밴 이동 잡화상이었다. 확성기에서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못 잊어서 또 왔네/ 미련 때문에/울며가던 내가 왔네/ 못 잊어 왔네/그리운 님 찾아서 내가 또 왔네’ 전북 김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최낙도가 방물트럭을 만들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틀며 4년간 지역구를 누볐다. 얼굴도 알리고 생활비도 버는 신판 보부행상이었다.이어진 11대 총선에 민권당 후보로 출마한다. 또 낙선. 가사처럼 미련을 버리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큰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리 붕괴 사고는 1940년 11월 7일에 있었던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의 현수교 타코마교 붕괴 사고다. 타코마교는 개통 당시 최첨단 현수교 공법으로 건설돼 미국 공학기술의 결정체란 평가였다. 태풍에도 버틸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하지만 개통된 지 4개월 만에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타코마교는 시속 190㎞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다리였다. 그런데 타코마교가 붕괴된 날의 풍속은 산들바람 수준인
“대통령은 딱 한 사람에게 감정이 있다.” 2011년 1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 최고위가 ‘부적격’ 결정을 내린다. 이 ‘반란’으로 정 후보는 낙마한다. 청와대가 안상수 대표를 겨냥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예정된 만찬이 전격 취소된다.민주주의의 절차적 본질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효율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경로가 가장 효율적일까. 수 세기에 걸친 실험 끝에 ‘정당’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정당은 심판받는 조직이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고 실행하고 있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정치인의 언행이 또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지원 유세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야당이 정부를 공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손을 연거푸 비비는 행동을 곁들인 이 날 발언은 야당 대표의 것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이 대표는 “중국인들이 한국이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질 않는다.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謝謝·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뜻)’,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심지어 이 대표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
1950년대 초 미국에 소아마비가 창궐했다. 한 해 5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걸려 3000여 명이 죽어 갔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걸렸다. 공포였다. 백신 개발이 절실했다.조너스 소크도 연구에 매달렸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진전이 없었다. 그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 날 천장이 높은 한 수도원 성당을 찾았다. 아이디어와 공식이 준비된 듯 떠올랐다. 미국으로 돌아와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백신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해 소아마비 정복 길을 활짝 열었다. 소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건립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은 사실 부담스럽다. 철사처럼 메마른 다리와 팔. 생각할 수 있는 뇌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머리.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몸이다. 피카소가 재능을 질시했다는 그는 20세기 최고 조각가로 손꼽힌다. 작품 최고 가격이 2000억 원을 넘는다. 그는 왜 더 이상 건조될 수 없을 만큼 건조된, 미라 같은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었을까.그는 청년기에 기차여행을 하다 한 노인을 만난다. 예술에 깊은 영감을 갖고 있는 자코메티에게 노인은 매료됐다. 헤어진 뒤 아쉬움이 남은 그는 자코메티를 찾는 신문광고
삼기팔괴(三奇八怪), 경주에는 옛날부터 세 가지 진기한 보물과 여덟 가지 괴상한 일이 전해진다. 그중 삼기는 신통력을 가진 금척(金尺)과 만파식적으로 불리는 옥적(玉笛), 태양으로부터 불씨를 얻었다는 화주(火珠)다.금척(金尺)은 박혁거세 거서간이 왕위에 오르자 하늘에서 금으로 만든 자를 선물로 내려주었는데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다시 살아났다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이 소문이 중국의 한나라 황제에게까지 알려졌다. 황제는 금자가 탐이나 사신을 보내 보여줄 것을 청했다. 사실 보여주길 바란 것이 아니라 보내줄 것
저항 기질이 강했던 생육신 김시습. 3살에 시를 썼고 5살에 세종 앞에서 경연을 할 정도로 천재였다. 그는 단종에 대한 신의를 지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유랑 생활을 했다. 율곡 이이(李珥)는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의 ‘백세 스승’이라 그를 불렀다.김시습의 허리춤에는 표주박이 늘 달려 있었다. 그는 시심이 동하면 숙식을 전폐했다. 시가 완성될 때까지 침잠했다. 그러다 완성되면 시를 쓴 종이를 환약같이 돌돌 말아 표주박 속에 간직했다. 시환(詩丸)이다. 하지만 바람처럼 떠나고 싶어지면 시환들을 펴 계곡물에 먼저 떠내려 보냈다. 혼을
[삼촌설] 이강인을 변호함철학자 이성민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말 놓을 용기’(민음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선후배 사이의 말 놓기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존비어 관계나 존댓말 관계를 공식 표준으로 삼고 있는 한국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평어 또래 관계를 공식 표준으로 삼고 있는 서양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 구조를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한국과 다르게 서구 문화권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평적 인간관계가 보편적이다. 선배도 ‘You’, 후배도 ‘You’다. 한국어처럼 ‘~님’이니 ‘~십시오’니 하는 존댓말이
혜성이 하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사라졌다. 유난히 밝고 꼬리도 길었다. “혜성은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이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던데…”예종 원년(1468년) 10월. 숙직하던 겸사복장(현 대통령 경호처장) 남이가 하늘을 쳐다보며 걱정을 했다. 이시애 난을 평정해 세조의 총애를 받은 그는 26살에 병조판서(정2품)까지 올랐지만 새로 즉위한 예종 측근들의 견제로 종 2품으로 강등돼 있었다. 유자광이 그 말을 들었다. 귀가 번쩍 띄었다. 정적 남이를 칠 절호의 기회였다. “한명회 등 훈신을 제거하기 위해 남이가 신진세력과 모반을 꾸민다”
“동정심 많고 선의를 가졌지만,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었다.”이 짧은 한 문장이 미국 대선 정국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에 명시돼 있다.한국계인 로버트 허 특별검사는 1년간의 조사를 마치고 최근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임기를 마친 민간인 시절에 고의로 기밀문서를 보관하고 공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형사 고발이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불기소 방침을 밝혔다. 그 이유가 바로 이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다.기소될 경우
헌법재판소가 2022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한다’는 민법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가까운 친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혼의 범위 등을 규정하는 법률 개정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면서 다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근친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옛날부터 지속되고 있는 논쟁거리다. 동양에서는 예법을 중시한 고대 중국 주나라는 아버지의 성이 같으면 혼인을 금지했다. 주나라 예법 주례(周禮)를 따랐던 조선시대에는 동성동본 결혼은 불가였다. 조선
조국과 정의하버드대 교수였던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와 공정 개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저서 ‘정의론’은 수많은 논쟁과 파생 이론들을 낳았다.그는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개념을 제시했다.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신분이나 재력 등 사회적 조건을 장막으로 가린 채 판단하고 합의를 거쳐 계약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인이나 계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단을 막아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절차의 원초적 평등성과 판단의 엄정
[삼촌설] 포스코 창업정신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측근들의 재산 상황을 조사한 후 비서실장 박태준을 불러 물었다. “임자는 장군이었으면서 어째 집 한 간이 없소?” 박 비서실장이 “군인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특별하사금을 주어 집을 마련케 했다. 박 비서실장은 서울 아현동에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40년간 그 집에 살다가 2000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집조차 처분해 사회에 환원했다.청암 박태준은 무보수 명예회장으로 지냈다. 포스코 측에서 생활비라도 드리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청암은 마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매우 철학적인 질문이다. 종교인들이 던지는 화두 같기도 하다. 프랑스 탈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작품명이다. ‘세상에서 고갱의 작품이 모두 사라져도 이 작품만은 꼭 지켜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원시 예술의 정점’을 이루는 이 작품의 사이즈도 139㎝×375cm로 대작이다.세 부분으로 나뉘는 그림에서 고갱은 근본적인 의문을 시각화하고 있다. 두루마리를 펼치듯 오른쪽에 아기와 젊은 세 여자를 배치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조선 말기인 1894년 7월 갑오개혁이 단행된다. 개화파는 군국기무처를 통해 근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위한 사회개혁 정책들을 잇따라 발표한다. 정치, 경제, 법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개혁이었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 차별과 과거 제도 폐지, 조혼 금지, 공평 과세 등 210건에 달했다.문제는 이 봇물 발표를 국민이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개혁 정책들이 쏟아졌지만 국민은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발표된 정책은 반드시 시행된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각은 고심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동대
임신과 여성 권리 의제는 역사가 깊다. 대표적인 법의 제단이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로 대 웨이드(Roe v. Wade)로 이름 붙여진 이 판결은 미국 여성 권리 신장의 중대한 이정표 중의 하나로 평가한다.제인 로(Jane Roe 법정 기록을 위해 사용한 가명)는 21살에 임신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키울 능력이 없었던 그녀는 낙태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불량배들로부터 윤간당했다고 경찰에 거짓 진술한다. 하지만 당시 ‘오직 산모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던 낙태법 때문에 의사는
“정신력이 문제다. 동기 부여가 뛰어나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경기를 지배하려는 창조력과 통제력이 매우 부족하다. 무엇보다 팀 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다.”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은 뒤 문제점을 분석해 내놓았다. 그는 정신력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팀의 핵심 개혁 과제로 꼽았다.이를 바탕으로 나이 중심의 위계질서 파괴를 선언했다. 선후배 간의 심리적 간격이 경기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경기 중에 경칭 없이 선배 이름을 부르게 했다. 10살 이상 차이 나는 대선배 이름을 부르며 공을 달라고 콜을 했다. 신기하게도 그
TK 공천 유감“나 같은 바보가 보기에 이 사회에는 좌파니, 우파니 그런 거 없다. 좌파 특권층 우파 특권층과 그들의 노예들 뿐이다. 정치가 아니라 정신병이 있을 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세계의 노예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가 아니다.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를 못 알아보는 자이다.”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은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P237 민음사)에서 정치는 물론 이사회의 부조리를 선정적 언어로 지적하고 있다. 이 작가의 이런 정치 혐오성 발언에 대해 이른바 ‘TK(대구·경북)’,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민
“절대로 내게 아부하지 마시오. 아부하면 반드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오.”나폴레옹은 단호했다.유럽 대륙을 정복해 프랑스 대제국을 건설한 그는 참모들에게 아부하지 말고 직언할 것을 주문했다. 측근들은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했다. 어느 날 한 참모가 나폴레옹에게 조용히 다가왔다.“폐하! 폐하께서 아부하지 말라고 하신 지난번 그 강력한 명령이 너무도 멋졌습니다.”“정말 그랬어?” ‘아부는 영리하게 보이려는 무능력자의 무기’라고 했던 나폴레옹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이재명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다른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