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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는 우리나라 유일한 입법기관으로서 모든 법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과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여 일정한 절차를 거쳐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여야 한다.

그동안 이러한 절차와 원칙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 헌법 이래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는 70년간의 민주공화국 운영과정 중 권위주의 정권을 30여 년간 거치면서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을 거쳐야 이루어지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시되는 광경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모든 집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말과 대화로서 할 수 있는 것도 집단으로 모여서 고함을 지르거나 행동으로 보여주어야만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다른 국가들이 경험하지 못한 압축된 경제성장을 하면서 어쩌면 부득이하게 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어떤 식으로든지 피해배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에서 국가의 운영과 정책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는 대립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여야 간의 대립이 치밀한 법리와 정책적 논리의 대결이 아니라 감정적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2012년 5월 25일에 쟁점 안건의 심의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며,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심의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모든 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만 하지만, 법사위가 이유 없이 회부된 날로부터 1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심사대상 법률안의 소관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하여 이의가 없는 경우에는 의장에게 해당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하고, 의장은 본회의 부의 요구가 있는 때에는 해당 법률안을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여 바로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쾌속으로 법률안이 입법되는 과정에서 이의가 있거나 합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부되거나 졸속으로 입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예외적으로 두 번에 걸쳐 부의 여부에 대한 표결을 거치도록 하였다. 먼저 심사대상 법률안의 소관위원회 위원장이 간사와 협의할 때에 이의가 있는 경우 해당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해당 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로 심사대상 법률안의 소관위원회 위원장의 본회의 부의 요구가 있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때에는 그 기간이 경과한 후 처음으로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해당 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여부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도록 하였다. 국회는 2017년 12월 8일에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던 세무사 자격을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훼손하고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며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에 반한다고 반대하였지만, 국회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세무분야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소비자들에게 고품질의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합리적 이유 없이 변호사자격 취득자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제도라고 하면서 통과시키고 말았다. 지난 10년간 세무사단체는 법률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한 반면에, 변호사단체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민의 눈으로서는 자신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많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그럼에도 직역을 둘러싸고 무척이나 이해관계가 예민하게 충돌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도록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해서 통과시킨 것은 당초 쟁점 법안의 일방적인 직권상정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입법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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