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취가 깊어가는 계절, 짧아서 더 아쉬운 이 시기에 단풍과 함께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영천 임고서원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된 이곳은, 영천 시민들이 ‘가을 명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이기도 하다.△포은의 정신이 깃든 서원.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부래산에 처음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선조 36년(1603) 현재의 위치에 중건되어 사액을 받은 유서 깊은 서원이다.서원 경내에는 포은유물관을 비롯해 조옹대, 선죽교,
어디로 향하든 여행길에 오르는 순간 마음은 늘 설렘으로 출렁인다. 그러나 고향을 향한 여정만큼은 조금 다르다. 발걸음을 내딛는 그 찰나부터 이미 마음은 동네 어귀에 닿아 있는 듯, 기억 속 풍경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피어오른다. 바람결마저 따스하게 감도는, 깃털 같은 여행의 시작이다.가을이 깊어진 지난 10월 25일 아침, 서울을 떠난 버스가 예천 들녘에 닿을 무렵 덕봉산 능선 위로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재경대창중고총동문회·수주회·경언포럼 회원 25명이 함께한 ‘아주 사(史)적인 문화답사-오늘의 시선으로 과거를 새롭게 읽는다’는
가을이 깊어간다.바람엔 차가운 기운이 묻어나고, 나뭇잎은 하루가 다르게 색을 달리한다. 그런 날이면 사람은 본능처럼 걷고 싶어진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발길 닿는 대로 자연의 품속을 거닐며 계절의 결을 느끼고 싶어진다.그럴 때 떠오르는 길이 있다. 구미시 고아읍 ‘매학정 낙동강 생태숲 길’. 낙동강을 따라 굽이도는 이 길은 늦가을의 정취가 가장 짙게 스며 있는 곳이다. 하얀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고, 붉은 노을이 강물 위로 스며드는 그 시간, 걷는 이의 마음도 함께 물들어 간다.△ 정자에서 시작되는 시간의 길, 매학정.매학정(梅鶴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와 부남면 대전리를 잇는 깊고 험한 산줄기 위, 굽이진 길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다. 이 길의 이름은 삼자현(三者峴). ‘서넘재’ 혹은 ‘서넘티’라고도 불리는 이 고개는 ‘세 사람이 함께 넘어야 할 만큼 험한 고개’란 뜻을 담고 있다. 이름부터가 비범한 이 고개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청송 사람들의 고난과 연대, 그리고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야기의 무대다.삼자현은 거리가 약 30리, 곧 12km에 이르는 긴 고갯길이다. 태산을 굽이도는 듯한 경사와 구불구불한 길은 지금도 차량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숨을 헐떡이
가을의 울진은 풍요롭다. 들녁 벼는 누렇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가을비를 머금은 산속 버섯들은 쑥쑥 자라 식탁을 풍요롭게 한다.울진읍의 동쪽 언덕, 나무 사이로 드러난 작은 정자 하나가 이 길의 출발점이다. 이름은 연호정(延湖亭).연호정은 조선시대 울진현감 이연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다. 연호공원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정자는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정자에 올라서면, 평온한 풍경과 함께 아침 햇살이 물 위로 떨어지면, 물안개가 천천히 피어올라 하늘과 강을 잇는다. 그 순간, 세
가을빛이 깊어지는 10월, 울릉도는 바다만큼이나 산이 아름답다. 섬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해발 984m 성인봉은 울릉도의 ‘지붕’이자, 섬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이번 ‘걸어서 힐링 속으로–경북을 걷다’에서는 나리분지에서 출발해 신령수를 지나 성인봉 정상에 오르는 최단 코스를 직접 걸으며 가을 울릉도의 속살을 담아본다.성인봉 정상까지는 왕복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되며, 초입은 완만하지만 중반 이후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만큼 등산화와 스틱, 충분한 수분을 챙기는 것이 좋다.△나리분지에서 시작하는 여정
“옛 정취와 사람 사는 온기가 만나는 길”대구 군위군 깊은 산골짜기, 기차가 멈춰선 작은 간이역이 있다. 1938년 문을 연 화본역(花本驛).중앙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2024년 12월 공식 폐역됐지만, 역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위군은 국가철도공단·한국철도공사와 협의해 역과 부지를 임대하고, 주민과 관광객에게 무료 개방했다. 그 결과 화본역은 ‘잊힌 역사’가 아닌 ‘머물고 싶은 시간’을 품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군위군은 2025년 8월, 코레일과 8개 지자체(구례군, 고흥군, 장흥군, 강진군, 해남군, 의성군, 봉화군, 예산군)
안동호의 잔잔한 수면 위로 길이 열린다. 안동시 도산면 예끼마을에서 출발하는 ‘선성수상길’.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이 길은 자연과 예술, 역사와 기억을 품고 있다.‘선성’이라는 이름은 생소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조선시대 예안현의 별칭인 ‘선성현(宣城縣)’에서 비롯됐다. 이 일대는 퇴계 이황과 더불어 수많은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정신세계를 펼쳐나간 유서 깊은 고장이었다.수상길이 시작되는 예끼마을은 안동댐 건설의 아픔을 간직한 마을이다. 1976년 안동댐이 준공되면서 옛 예안현의 중심 마을과 수많은 삶의 터전이 수몰됐다. 주민들은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날,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길은 사람을 품고, 걷는 이는 그 길 위에서 위로를 얻는다. 경북 성주 초전면 뒷미지와 칠선~용성 숲길은 그런 여정의 출발점이다. 여름이면 연꽃의 향연이, 가을이면 능선 위의 사색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풍광을 넘어, 성주의 역사와 삶,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스며든 ‘살아있는 풍경’이다.△ 100년 세월을 품은 뒷미지 - 연꽃의 부활.뒷미지는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다. 조선 정조 원년, 마을 뒤 산세가 인재를 길러낼 명당이라는 뜻에서 ‘후산(後山)’이
나침반이 필요 없었다.물이 먼저 길을 내어 주고 숲이 그늘을 드리웠다.호수에서 시작해 능선을 넘어 강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따라 걷다 보니 하루가 가벼워졌다.아침의 조성지, 정오의 청화산, 오후의 낙동강, 저녁의 관수루.시간의 순서가 풍경의 깊이가 되는 여정이 의성 서쪽 끝에서 펼쳐진다.하루를 천천히 펼쳐 들면 그 속에 사찰의 고요와 로컬의 맛, 반려견과 함께 웃는 순간까지 모두 들어 있다. △ 조성지 청산愛 뚜벅이길에서 맞는 아침의성 최대 저수지인 조성지는 구천면 장국리와 청산리와 조성리 세 마을을 포근히 안고 있다.1959년 농업
경주 남산은 흔히 ‘박물관보다 더 큰 야외 박물관’이라 불린다.산 곳곳에 불상과 탑, 왕릉과 절터가 흩어져 있어 천년 신라의 종교와 정치, 생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남산 동쪽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동남산 가는 길’은 신라인들의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코스다.월정교에서 출발해 염불사지 삼층석탑까지 약 8km, 두세 시간을 걸으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의 풍경을 담아 봤다. △길 위에서 배우는 역사동남산 가는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월정교에서 염불사지 삼층석탑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낙동강의 물결이 부드럽게 굽이치는 강변 절벽 위로 한줄기 길이 이어진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경포공원에서 우곡면 부례관광지까지 약 4.2km에 이르는 ‘개경포 너울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강과 숲, 마을과 옛길을 함께 걷는 체험형 탐방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풍경과 이야기가 달라지고,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어 여행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개경포 너울길’은 편도 약 4.2km, 왕복 8km에 이르는 코스로 평균 두세 시간이 걸린다. 시작점인 개경포공원에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이 쉽다. 입구의 안내판을 통해
푸른 바다와 솔향 머금은 고장, 동해중부선 영덕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람이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평선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마치 ‘고요한 위로’ 같았다. 이곳은 경상북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영덕. 복잡한 도심을 잠시 뒤로한 채,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비우기 가장 좋은 고장이다. 푸른 바다 따라 걷는 길 블루로드영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블루로드’다. 총 4개의 코스로 구성된 이 길은 바다와 산, 마을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도보 여행의 진수다. 그중 가장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날,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길은 사람을 품고, 걷는 이는 그 길 위에서 위로를 얻는다. 경북 성주에는 사계절 내내 숨을 고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왕버들의 그늘 아래 보랏빛 맥문동이 피어나고, 그 끝엔 천오백 년 시간을 품은 고분과 마을이 기다린다. 성밖숲에서 성산 고분군을 지나 비채길과 한개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은, 자연과 역사, 일상의 쉼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성주의 대표 힐링로드다. △ 성밖숲 왕버들길. 150년 세월의 그늘, 성밖숲 왕버들길에서 시작되는 위로성주읍 중심부를 흐르는 이천
도시의 빠른 시간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어, 경북 김천시 대항면 사명대사길을 찾았다. 이 길은 임진왜란의 격변기 속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승병을 이끌고 싸웠던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의 발자취를 따라 조성된 숲길이다. 사명대사의 강직한 정신과 호국의 열정이 배어 있는 이곳은 자연과 역사가 함께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책처럼 다가온다. 평소 역사와 인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되새기며 이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숲길에서 만난 사명대사의 숨결. 사명대사길의 입구에 들어서자, 청량한 숲 향기가
무심한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을 맴돌던 어느 여름날 아침.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길을 나섰고, 그렇게 도착한 곳이 구미시 구포동의 ‘구미다온숲’이었다. 다온숲. 이름부터가 따뜻하다. ‘좋은 모든 일이 다 온다’는 뜻을 품고 있다는 그 이름은, 마치 사람의 위로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그렇게 나는 숲의 품에 안겼다. 최근 SNS를 통해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며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는 ‘구미다온숲’이다. △버려진 땅, 새로이 피어난 숲. 구미시 구포동(양포동)에 위치
해마다 더워지는 여름,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시원한 그늘과 찬 계곡물이 그리워질 때면 누구나 마음속에 떠올리는 이상적인 피서지가 있다. 에어컨보다 시원하고, 인파 없이 조용하며, 자연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곳.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팔각산로 230번지 일대, 이른바 ‘청송 얼음골’이 바로 그곳이다.청송군 주왕산에서 영덕 옥계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 얼음골은, 보기만 해도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인공폭포와 함께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으로 유명하다. “더울수록 얼음이 더 잘 어는 곳”, 처음 듣는 이에게
‘‘숲길’ 하면 흔히 깊은 산 속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갖춘 ‘도시 숲’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숲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며 도시 숲이 많은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경북 영천의 우로지자연숲과 우로지생태공원은 그러한 도시 숲 트렌드에 부응하며 바쁜 일상 속 한 걸음의 여유와 쉼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도심 속 힐링명소다. △우로지자연숲, 걷기 좋은 메타세쿼이아길과 황톳길. 영천시 언하공단 인근에 위치한
경북 칠곡군 석적읍 국립칠곡숲체원내에 조성된 ‘다누리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무장애 숲길이다. ‘다누리길’은 모든 국민이 다 누릴 수 있는 길을 의미한다. 노약자·아동·휠체어이용자 등 누구나 안전하게 숲을 이용하고 즐길 수 있도록 경사 7% 이하로 길이 조성돼 있어 편하게 가족들과 이동하면서 자연을 호흡할 수 있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산책로와 연결, 경사가 완만한 순환형 둘레길로 만들었으며,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수목 및 초화류 식재는 물론 쉼터, 의자, 돌담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
영주는 빼어난 절경과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소백산의 기운을 품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한국 유학의 발상지이자 정신문화의 근간인 소수서원이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소수서원은 1543년 설립된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약 350여 년 동안 4000여 명의 유생을 배출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전국의 670여 개 서원 중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은 것은 소수서원이 가진 한국 서원의 전통적 특색과 성리학적 가치가 세계 보편성에 부합했음을 의미한다. 영주시는 유네스코 등재 당시 강조되었던 서원 주변의 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