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불 가는 일은 갓 시집온 새댁 몫이었다. 낯설고 힘들었다. 다 탄 연탄이 들러붙어 속을 썩였다. 부엌칼로 떼려다 재가 깨지면 아수라장이 됐다. 가스를 마시지 않으려 숨을 참고 참다 눈물을 쏟았다.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연탄을 갈아야 했다.“시어머니와 남편이 방에서 편히 드라마 보는 동안 연탄 아궁이 앞에 앉아 얼마나 많이 꺽꺽거렸는지 모른다.”수필가 박은희 씨는 ‘내 기억 속의 연탄’에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기억을 풀어 놓는다. ‘방을 따뜻하게 데워 주어야 할 연탄은 내 마음을 싸늘하게 식히는 무기 같은 존재였다.’ “방 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3년 9개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원하면 영토를 내놓으라”는 ‘종전안’이 제시됐다. 한때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지만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하며 무장을 내려놓은 나라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핵을 포기하면 안전을 보장하겠다’던 국제사회의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됐다.평화안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는 말할 것도 없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등 돈바스 전역을 사실상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동부의 일부 요새 지역까지 내어주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유엔 체제가 세운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 금지’ 원칙이 이미 수
장판파 골짜기 바람은 사나웠다. 백마 위에 앉은 그의 도포와 수염이 날린다. 죽은 군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입은 흰 도포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상대는 조조의 50만 대군. 적진을 응시하던 조자룡이 두 눈을 부릅뜬다. 백마가 유령처럼 날아오른다. 창이 신들린 듯 바람을 일으킨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만든다.단기필마, 그의 앞에 적장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조조가 총애하는 하후은이 길을 막았다. 조조의 천하명검 청홍검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2합도 겨루지 못하고 하후은이 쓰러졌다. 조자룡 품에는 그가 구해낸 주군 유비의 아들 아
“내가 적이라고 선언했던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한 것 같이 나도 용서받기를 갈망한다.” 스페인을 37년간 철권 통치한 프랑코 총통. 그는 용서를 구하는 유언을 남기고 1973년 사망한다. 그리고 마드리드 국립묘지에 묻혔다.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스페인 국민들은 독재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스페인 의회는 프랑코가 군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것을 ‘쿠데타’로 뒤늦게 규정했다. ‘프랑코 정권 희생자 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돼 스페인 내전 이후 희생된 100만 명에 대한 피해조사와 명예회복이 진행되고 있다. 민간인 학살과 정치범 처
둥근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어서 아래위 구분이 없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북쪽을 위쪽으로 생각하는 통념이 있다. 지구 북반구의 영토가 넓고, 많은 나라가 위치해 있어서 관습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통상 서양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오른쪽에, 아메리카 대륙을 왼쪽에 그린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다.하지만 이 서양식 지도를 거꾸로 놓으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 때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를 배후로 해 대양으로 나가는 부두 모양이며, 일본은 이 부두를 보호하는 방파제
문화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 속에 생성되고 발전해 간다. 20세기 후반 들어 이 문화 충돌에 완충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이 본격화하면서 문화예술과 경영의 접목이 시도됐다.프랑스 좌파 소설가 앙드레 말로. 그는 극우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10년간 지내며 ‘문화예술 경영’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다.귀족 엘리트 계층뿐 아니라 대중들도 문화 예술을 향유하게 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됐다. 미학과 실용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키워드가 접목되고 대중도 예술 소비자로 부상한다. 공공예술이 새로운 차원을 맞게 된다. 대중과 공감하면서 그들의 문화적 영감을
“쓸쓸히 낙엽 지는 소리/ 비가 내리나 해서/아이 불러 문밖 나가보라 했더니/개울 남쪽 나무 끝에 달이 걸렸다 하네” 가을밤 정취를 그린 송강 정철의 ‘산사야음(山寺夜吟)’이다. 조선조 김도징은 금강산 ‘산영루’에 올라 “맑은 물 하얀 바위 속세를 떠나 있고/높다란 누각에 올라보니 반쯤 허공에 걸린 듯/ 늙은 스님 울 밖의 물 길어오니/금강의 가을빛이 표주박에 담겼구나”라 읊었다. 조선조 정조 때 이병휴도 가을밤에 홀로 앉아 한 수 지었다. “오두카니 앉은 채 밤은 깊어가는데/추당에 밤기운이 청량하구나/하늘 한복판 저 달빛 아름다워
고대 그리스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예상 못한 철삿줄이 출토됐다. 그리스 고고학자가 흥분했다. “고대 그리스 때 유선 전화를 사용했다는 확고한 증거입니다.” 로마 고고학자는 우울했다. 로마가 그리스 문명에 뒤처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 유적지 발굴을 제안했다. 하지만 발굴에서 철삿줄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 학자가 더욱 우쭐댄다.“그것 보시오. 당시 로마에는 유선 전화가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요.” 가만히 듣고 있던 로마 고고학자가 발끈한다. “무슨 소립니까? 철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때 이미 무선전화를 사
먼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정적이 실내를 무겁게 누른다. 엄숙하다 못해 신령스런 기운까지 느껴진다.“개반(開盤)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긴장된 표정의 장인이 개반을 선언한다. 그리고 천천히 흰 천을 오른쪽부터 걷는다. 천 년의 시간이 멈춘 황금빛 바둑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삿됨을 피해 새벽에 대국장으로 옮겨진 바둑판은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다. 이어서 은은한 향을 바둑판 위에 올리며 예를 갖춘다. 그리고 검은 돌을 잡은 기사가 바둑판 한가운데, 천원 자리에 돌을 놓는다. 착수예식이다. 깊고 청아한 소리가 정적을 깬다. 바로
“위대함은 돈이나 권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남을 돕는 모든 작은 행동이 세상을 돕는 것이다. ‘황금률(Golden Rule·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라)’만큼 좋은 삶의 지침은 없다”‘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95)이 10일(현지시간) 자신의 인생 여정을 포함한 삶의 통찰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주주들에게 띄웠다. 그의 마지막 주주서한은 투자 조언보다 노철학자의 인생 고백으로 들린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을 향해 “신문에 실릴 부고 기사의 내용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걸맞게 살아가라”고 충고한다.그는
글로벌 금융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확장 전략이 집요하다. 미국과의 G1 경쟁 핵심이다. 신흥국을 집중 공략해 ‘위안화 블록’을 형성하면서 달러화를 위협한다는 달러 포위 전략이다. 통화 스와프가 최전선에 있다. 미국은 상시 통화 스와프를 유럽과 일본 등 준기축통화국만 대상으로 한다. 임시 스와프도 있지만 의회가 부정적이다. 대규모 미국 투자와 연관된 우리의 통화 스와프 요구에도 소극적이다.하지만 중국은 위안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통화 스와프를 전략적 인 연대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40여 개국과 체결했다. 우리도 지난
“한 시대가 끝나고 오랫동안 억눌렸던 민족의 영혼이 목소리를 낼 때가 온다.” 뉴욕 시장에 당선된 인도계 무슬림 조란 맘다니는 승리 연설에서 인도 초대 총리 네루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의 뿌리를 잊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그는 우간다와 인도의 합성어인 ‘우긴디아(Ugindia)’라 적힌 모자를 즐겨 쓰고 다녔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나 인도 부모를 둔 이민자 혈통. 그에겐 단순히 다문화의 혼합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식이었다.미국에서 인도계의 약진은 더 이상 이례적 성공 사례가 아니다. 구글 모회사 알
절집에서 수행하다 포기하고 하산하는 수도승이 간혹 나온다. 법정 스님이 이들에 대한 분석을 한 적이 있다.“들뜨기 쉬운 봄에 나온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봄철에 온 사람과 가을이나 겨울에 온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봄 출가자는 바랑을 챙겨 쉽게 절집을 떠나지만 가을과 겨울 출가자는 어지간해서는 물러서지 않고 정진한다는 이야기다.만추(晩秋)다. 단풍세상이다. 여름 흔적에 집착해 푸른색을 지키려 애쓰는 잎도 있다. 하지만 오래 갈 수 없다. 찬바람이 용납하지 않는다. 추억은 퇴색되고 희망은 메말라 갈
신라 왕실 창고가 텅 비었다. 속주와 군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적이 들끓고 반란도 일어났다. 국가재정이 궁핍해 대책이 시급했다. 진성여왕은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골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로는 희망이 없다고 보았다. 정치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녀는 승부수를 찾는다. 6두품인 최치원을 주목했다.‘토황소격문’을 써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진 그는 고국 신라 발전을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진골들은 그를 배척했다. 지방 관서를 전전해야 했다. 진성여왕은 낡은 체제 개혁에 그가 적임자라고 보았다
뉴욕은 ‘미국의 거울’이라 불린다. 금융과 문화가 집약된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는 도시다. 그 뉴욕에서 우간다 출신 무슬림 이민 2세, 민주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가 시장에 4일(현지시각) 당선됐다. 이는 미국 정치의 균열선들이 한 지점에서 겹쳐 만들어낸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다.맘다니는 부유층의 도시가 된 뉴욕에서 “집은 권리”라고 외쳐온 정치인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시장경제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주·교통·의료·교육 같은 기본 생존 조건을 시장의 논리에서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이는 뉴욕 시민 다수
일본 아키타현(秋田縣)에서 ‘곰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9월 일본 환경성이 집계한 곰 출몰 건수는 2만792건. 지난해보다 무려 30%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포획된 개체 역시 6063마리로 역대 최고다.도토리 흉작에 굶주린 곰들이 산을 내려와 민가를 휘젓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잇따르자 마침내 일본 정부는 자위대까지 투입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전직 레슬링 심판이 곰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는 야외 온천 욕조를 청소하다가 곰에게 50m 정도 끌려가 숲속에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이후 아키타현 북부
멕시코의 변방, 캘리포니아는 버려진 땅이었다. 1839년 가을 요한 A. 수터가 ‘신대륙의 남아도는 땅’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나타났다. 그는 멕시코 정부로부터 어떤 개발이라도 할 수 있는 독점권과 함께 경기도 성남시 전체 면적보다 큰 197㎢를 불하받는다. 그리고 그의 왕국, ‘노이 헬베티엔(Neu Helvetien)’을 만들었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포도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과일 농사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평화로웠다.그런데 문제가 터진다. 1848년 그의 땅에서 금이 발견됐다.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귀국길 ‘기내 간담회’에서 “미국도 핵실험을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트럼프의 핵무장 선언은 단순한 돌발 발언이 아니다. 미국이 더이상 ‘핵 우위’를 지킬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국제환경이 그 배경이다. 중국의 핵탄두는 최근 6년 새 2배로 늘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계기로 핵무기 투발체계 현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35년이면 중국의 핵전력이 러시아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트럼프는 지난 2020년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핵
“다자 무역 시스템을 함께 지키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이행해야 한다.”중국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강력한 다자주의 옹호 메시지를 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다.” 그는 APEC이 다자무역 구도 복귀에 힘을 보탤 것을 요청했다.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다자주의에 회의적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불공정 기관’이라며 탈퇴를 추진했다. 중국 중심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위법 판정이 잦자 WTO 신규 재판관 임명을 보이콧해 재
한·미 관세 무역협상이 지난 29일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대미 수출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최대 걸림돌이었던 3500억 달러에 대한 연차별 투자 조정과 조선 분야 합의는 큰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조선부분은 자세히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조선 산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우리가 빨간 모자를 통해 미국에 제시한 선물이다.해양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밀릴 위기에 처한 미국에게 조선 산업 부활은 절박한 과제다. 미국은 조선 산업을 핵심 전략산업으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