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나 동화의 이야기가 고립된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 이야기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경계 넘어서기’임을 보여준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의 영웅들은 폴리스의 시민이 아니었다. 영웅이란 법의 테두리에 거주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의 터전인 시민사회를 넘어서 죽음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들이었으며, 죽음의 세계로부터 다시 삶을 길러내는 존재들이었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부활한다고 믿었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 현상으로 영혼이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아 지옥행으로 판정받으면 영원한 죽음이 되고,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링컨은 단순히 전쟁 승리자가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연방과 인권이라는 두 과제를 모두 수행해 낸 지도자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지키고, 인류 보편 가치를 실천한 지도자다.“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한 링컨. 신의 가호 아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명연설을 남긴 링컨 대통령. “ I am sorry.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대통령이다.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작전 문제로 대통령과 참모총장 사이에 의견 대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가 있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 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 인생 비바람에 꺾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이주현 작가가 한국전쟁으로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며 혼자 3남매를 훌륭히 키워온 사연이 담긴 노래 가사다. ‘그 여름 어인 광풍’이 남편을 앗아간 한국전쟁이었다. 그 여름 어인 광풍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에 한을 심었는가. 정말 광풍(狂風)이었다, 광풍 중의 광풍, 미친 바람이었다.광풍이라 이름 붙여도 될는지 모르지만 바람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 탐방 계획의 일환으로 2025년 3월 첫 일요일에 참다운 선비로 추앙받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이 배향된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道東書院)을 찾았다. 엄청 시끄러운 시국에 한훤당 선생의 올곧은 삶의 자세를 기려 본받고 싶어서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온갖 세속의 욕심을 버린 듯 훌훌 옷을 벗은 채, 해묵은 은행나무가 하늘을 받쳐 이고 있었다.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현존 건물은 1607년 선조의 친필로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이 생산한 산물을 먹고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 속으로 간다.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다. 자연은 부모요, 인간은 그 자식인 셈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정신적 가치의 영감까지 제공한다.도연명(잠)은 사시(四時)에서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 추월양명휘 동령수고송이라 읊었다. 봄의 은혜로움, 여름의 변화무쌍, 가을의 싸늘함 속의 빛남, 겨울의 추위를 홀로 견디는 소나무의 기상이다. 가치 있는 삶의 자세를 자연에서 찾은 것이다.사육신의 대표적 인물인 성삼문은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먹방’, ‘맛집’, ‘레시피’. 요즘, 음식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식문화가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맛집을 찾아가는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따지지 않는다. 맛을 즐기는 문화가 무르익어 맛있게 먹고, 멋있게 살고자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예로부터 식문화는 생활예술이었다.식문화(食文化)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조리 과정이 아름답고, 상차림이 우아하며, 만들어진 음식의 모양이나 빛깔이 예술적이어야 한다. 음식의 배치와 색상이 매우 중요하고, 다양한 색깔과 질감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업(카르마)을 믿는다. 업, 업보, 카르마는 인과율 개념이다. 본디 행위를 뜻하는 말로 현재의 행위는 이전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미래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업(業)이란 자신이 행한 선행이나 악행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생각이다. 자기가 행한 업보는 이 세상이 아니면 다음 세상에서라도 받는다고 믿는다. 지금의 언행이 사그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카르마(업)가 돌고 돌아 반드시 자신에게 온다는 믿음이다. 자신이 좋은 업보를 받으려면 악한 일은 삼가고 선한 일을 행해야 하며, 선의 기본
퇴계 선생은 “선비는 뜻을 숭상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세도(世道.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닦고, 도덕을 숭상하여 인심을 맑게 하였다. 그러나 세도를 닦고 인심을 맑게 하던 자들이 끝내 사악한 자들을 감화시키지 못했으니, 도덕과 절의가 나라에 무익한 것인가?” ‘策問(책문)’에서 던진 질문이다. 퇴계는 선비의 기본적 책무가 상지(尙志-높은 뜻을 숭상함)에 있음을 단정하고, 상지의 구체적 모습을 절의와 도덕 숭상에 두었다.맹자는 ‘진심장’에서 선비가 일삼는 것을 상지(尙志)라 하고, 상지가 인의(仁義)
“세상은 덧없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하고 정진하라” 부처님 돌아가시며 남긴 마지막 말씀. 수행 정진하라 하셨다. 힘껏 살고 열심히 살도록 당부하신 말이다, 세상이 덧없으니 수행 정진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 같다. “덧없는 세상이니 아등바등 살지 말고 대충대충 살아라” 가 아니고 힘껏 살라고 당부하셨다.세상은 덧없다. ‘덧없다’가 불법(佛法)의 핵심 사상이다. 불법에서 말하는 제법무상(諸法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순우리말로 옮기면 ‘세상은 덧없다’이다. 인생은 덧없다, 세월은 덧없다, 사는 게 덧없다, 등으로 말한다. ‘
‘먹방’, ‘맛집’, ‘레시피’. 음식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우리 생활에 식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맛집이라고 이름난 식당에는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는다. 가정 경제가 어렵다 해도 배고픔 해결이 아니라, 맛을 즐기는 시대가 무르익었다.음식을 먹는 먹새, 먹음새에도 식생활의 품위가 나타난다.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먹음새에 ‘걸쌍스럽다’가 있다. 푸짐해서 보기에도 탐스러운 먹음새다. ‘짝짝’ 입맛을 다시며, 감칠맛 나게 먹는 것은 ‘짜금거린다’이다, 입맛을 ‘쩍쩍’ 다시며 먹는 것은 품위가 없어 보인다. ‘입맛을 다신
동몽선습(童蒙先習)에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衆) 유인최귀(惟人最貴)라 했다.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다. 귀한 존재인 사람도 좋은 만남으로 이어져야 삶 또한 귀하고 아름다워진다.만남이 참으로 소중하다. 괜찮은 사람을 찾기에 앞서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그도 내게로 다가와 좋은 사람이 되어준다. 소중한 만남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어야 삶에 행복의 꽃이 핀다.김춘수 시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가을이다. 가을걷이로 들판이 비워지고, 휑한 느낌이 든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와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 낼 수 있을 거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지만, 눈물겨운 이별이 없는데도 어딘가 허전하다.가을이 아니라도, 도시화와 기술의 발달, 개인주의가 현대인을 외롭게 만든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강조하다가 인간관계의 단절을, 도시화는 좁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발달이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를 줄여 외로움을 심화시키고 있다.‘외로움’과 ‘고독’이 사전적 의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 속임수는 남을 속이는 술수, 뻔뻔함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태연한 것을 말한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부끄럽다. 속임수가 들통나도 부끄럽다. 당연하다. 뻔뻔함은 들통이 나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얼굴 붉히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 없다.수치심 없는 인간이 뻔뻔한 인간, 잘못하고도 얼굴을 치켜드는 인간도 있다. 국회의원 중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도 당선된 사람이 있다. 검찰의 과잉수사 때문일 수도 있고, 판사의 오판일 수도 있다. 3심을 받아야 죄의 유무가 확정되지만, 지금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긴 한다. 덥다 덥다 해도 그러려니 지내다 보니, 입추를 훌쩍 넘어 참외 맛이 없어지고, 모기 입도 삐뚤어지는 처서(處暑)를 넘기고, 백로도 지났다. 가는 세월 누가 잡을 수 있으랴. 덥고 짜증 나는 시간이라도 아껴야 했다.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세월은 쉬지 않았다. 저 매미의 울음. 땅속의 7년 세월을 보내고 세상에 나와 사랑하고 갈 시간이 일주일. 1분 1초가 아까워 애를 태우다 기진맥진 잦아들었다.덥고 습할 땐 불쾌지수가 올라가 신경이 예민해진다. 찬물에 씻어도 금방 땀이 맺힌다. 그래도 덥다 덥다 하지 마라
“이시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히 네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일러라”성종 임금이 사직하고 떠나려는 신하를 만류하는 내용의 시조다. 임금이 지켜야 할 체면과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인간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초장은 진솔한 정(情)이 담뿍 담겨 있고, 중장은 보내는 이(성종 자신)의 섭섭한 마음이 서리어 있다. 종장의 ‘하 애도래라’에서,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는 마음과 귀향의 연유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간곡하게, 숨김없이 담겨 있다. 짧은 노래 안에 군
1980년대 후반까지는 우리나라 전 들판이 청보리밭이었다. 6월 초 망종(芒種) 무렵에 보리를 베내고 모심기를 한다. 들판이 온통 청보리밭이었을 때 배는 고팠지만, 하늘에는 어김없이 노고지리(종달새)가 ‘노골노골지리지리’ 우짖었다. 푸른 하늘에 굴러가는 옥구슬, 평화의 노래다. 일에 지치고, 가난에 시달렸지만, 청록 보리밭 위의 파란 하늘. 종다리가 불러주는 천상의 노래. 참으로 맑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종다리가 지금은 없다.밭고랑에서, 밭둑에서, 숲 가장자리에서 종다리 노래를 듣고 자라는 잡초 중에 ‘꼭두서니’가 있다. 줄기에 까
갈매기를 생각하면 바다가 떠오른다. 바다와 갈매기.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 바다 노 저어 가요. / 저녁 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 저어 와요.” 금빛과 행복 실은 갈매기.인생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여행. 금빛 실은 갈매기와 함께 희망에 찬 아침을 노 저어 간다. 떠남은 돌아오기 위한 둘레길. 갈매기와 더불어 행복을 싣고 안식과 평화가 깃든 곳으로 노 저어 온다. 출발과 돌아옴을 함께 하는 갈매기. 갈매기의 나래 위에 희
지난 주말 선산 桃李寺(도리사)를 중심으로 탑도 보고, 부처도 보고, 낙동강도 보고, 맛집도 찾으며 하루를 보냈다. 쌍암고택, 북애고택에서 조선 말 양반가의 생활상을 보기도 했지만, 사찰의 극락전 아미타불을 통해서 늘그막 인생 갈무리를 생각해 보았다.반야용선(般若龍船)이든, 연화화생(蓮華化生)이든, 거인의 광주리에 담겨 단번에 가든, 극락 가는 길이 외길은 아닌 모양이다. 표를 가지고도 시간을 놓쳐 겨우 밧줄에 매달려 가는 청의 동자의 악착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느 길이든 무임승차는 없다. 좋은 마무리로 극락행 표를 구하고
나날이, 아침저녁으로 손을 닦는다. 깨끗하고 고운 것 골라 만지고, 따뜻이 베풀며 살려고 손을 닦는다. 나날이, 아침저녁으로 낯을 씻는다. 머리 감으면 모자 털고, 목욕하면 옷 갈아입고, 맑은 정신으로 살려고 낯을 씻는다. 나날이, 아침저녁으로 입을 씻는다. 입이 보살이란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향기롭게 살려고 입을 씻는다. 나날이,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씻는다. 세상에 밉다 곱다 해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단다. 미워하지 않고 살려고, 곱다 곱다 하면서 살려고 마음을 씻는다.나날이 씻는다. 낯도 씻고, 손도 씻고, 입도 씻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너무 믿지 마라. 사람들은 대개 진리는 자기 측에 있다고 믿는다. 자기와 다른 의견은 틀리다 여긴다. 이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앞서가는 사람, 뒤따라오는 사람, 모두 안개에 싸여 있다. 오직 자기만이 보인다. 사실은 자기 자신도 안개에 싸여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나보다 한 수 위의 삶이 있는 것을.북송시대, 천하에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궁이었다는 진요자. 어느 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멋진 활 시범을 보였다. 화살 열 개 가운데 열 개를 다 명중시켰다. 보는 사람마다 손뼉을 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