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고 있었다찰나의 순간이찰나를 향해아침 겨울햇살은 빛나고바람은쌀쌀함이 묻어 있다강가에서햇살이 다가온다밤새지친 그리움으로다가오는 햇살을 향해몸을 뻗는다
겨울 햇살이보석처럼 빛나고 있다햇살은차가운 하늘을 지나와떠나지 않은 가을과 만난다혼자 남은 가을은햇살을 환대한다어서 오라고기다리고 있었노라고어느 추운 날 아침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메타세쿼이아가 햇살을 만나황금빛으로 빛난다아쉬움도, 원망도미련도 없다그저 반갑게 맞이한다너 때문에너가 오지 않았다면나는 여기서더 오랫동안머물 수 있었으리라이것은 인간만이가질 수 있는 불행한 착각이다나무가 햇살에게 말한다너로 인해 나는더욱더 빛나고가는 길은 가볍고 확신에 찬다햇살은 화답한다따뜻한 환대가나의 길이 정도라는 이정표라고떠남은 새로운 만남만남은 새로
태양초 마르는 소리장터 마당 가득하다9월 막바지햇살은 쏟아지고붉은 고추 자지러진다오일장에만 사람소리왁자지껄하던 청하장터사흘 남은 오일장날도장터는 요란하다심쿵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촬영 현장을 찾는 발길 이어진다오늘은 붉은 고추가드라마 주인공이다
어렴풋하다는 것모든 걸 감싼다세상에보여주기 싫은 것안개 속에 숨기고한 폭의 그림이 된다선명한 것 너머어렴풋한 안개 속에산이 묻혔다엷은 먹물 퍼지듯산이 신비에 갇혔다저곳에무릉도원이 있을 거야날카로운 금속성인간들의 악다구니가안개를 뚫지 못하는 곳그곳엔어렴풋한 안개가서로를 신비롭게 하고충만한 환희의 적멸만이꽃비처럼 내릴 거야
길을 가다가 사랑을 잃었거든 이곳으로 오라사랑으로 걷던 길이 문득 사랑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세상이 시시하고 짜증이 늘어날 때도따뜻하게 잡았던 손이 차가워진 것 같을 때길가 들꽃들의 인사가 반갑지 않을 때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보기 싫어질 때따뜻함이 그리워질 때잃어버린 낭만을 찾고 싶어질 때젊은 날이 아득하게 느껴지거든 이곳으로 오라이곳으로 오라폭력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상한편의 그림동화가 눈 앞에 펼쳐지는 곳으로사랑을 잃었거나, 시작했거나모두 이곳으로 찾아온다추석 연휴, 꼭 가보아야겠다는 발길들이이곳에서 사랑을 찾거나 키운다텅 빈
삶은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마치형광등 불빛이빠른 속도로 반짝여움직임이 없어보이는 것과 같다삶도 그러하다순간적 생과 멸이 점멸하는 것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육진, 빛(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법(法)이육근, 눈(眼)ㆍ귀(耳)ㆍ코(鼻)ㆍ입(舌)ㆍ몸(身)ㆍ뜻(意)을 만나인식하는 생각이 생겨난다생각은 생겨나자마자과거가 되어 기억이 된다사라진 것은 허망한 것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모두가 사라진 지금은적멸이다과거도 미래도 없는 공간태초의 고요, 적멸뿐이다적멸위락(寂滅爲樂)적멸은 락이다번뇌가 사라진 고요만이지금 찰나에 가
너는 가을을 너무 사랑했다 가을은 아직 저기 있는데 떠나기 싫은 여름의 아쉬움이 가득한 길에 비가 내린다 가을은 저만치서 눈치를 보며 서성이는데 너는 벌써 아직 오지 않은 가을이 됐다 여름의 탄식이 들리지 않는가 여름이 떠나기를 재촉하는 빗소리에 숨어서 조용히 가을을 부른다
차창 가에 어린빗방울 사이로어렴풋이영일만 바다가 보인다마치안개에 싸인 것처럼푸른 바다가회색빛 비안개에갇혔다영일만에는육사가 목놓아 부른광야의 초인도돛단배를 탄 청포도손님도 보이지 않는다자전거 두 바퀴에부딪혀 부챗살처럼 흩어지던햇살도영알만을 바라보며단독자가 됐다던소설가 김훈의 바다도보이지 않는다물안개뿐이다불투명 유리처럼비 내린 차창 가 너머바다는 물안개에 휩싸이고나는 그저 바라만 볼 뿐흘러간 기억을 초대한다영일만 바다는 푸르고 고요했다고물안개 핀 바다는푸르렀던 기억을 거부한다세상이 안개처럼 덮이고번뇌도 감동이 됐다그 바다회색빛 안개세상
하늘을 향해 열병식을 하는오대산 전나무 숲 사이로유월 햇살이 부챗살처럼쏟아진다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으로찰나에서 영원으로숲은 말한다항상 여기 있노라고누가 떠났다고 말하는가숲에는바람과 햇살이 머물고마침내생각도 쉼을 얻는다알 수 없는 신비와투명한 공간우리의 시작은이러했으리라끝없이 솟아나는붉은 약수우리네 삶의 박동이다세상을 품은 숲은우리의 가슴이다번뇌가 잦아드는 곳숲은 위대하다
영축산 백운암 가는 길에가을이 깊게 내려앉았다.통도사를 지나 극락암에다다랐다.경봉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거처하셨던 삼소굴은여전히 소박한 모습그대로였다.세 사람이 웃는다는 삼소굴유교 불교 도교의 근본은한곳이라는 가르침이다.붓다가 살던 인도의 산 지명을 딴영축산은떠나가는 가을에취하게 하는 낙엽 내음이가득했다.처음 가보는 혼자의 길호젓하기보다 설레임과막막함이 함께했다.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 길은한 걸음 한 걸음이 번뇌에서벗어나 지금 여기 이 순간에집중하라는 죽비였다.돌계단 위에 내려앉은낙엽과 가쁜 숨을 몰아쉬는내가 하나가 되어갈 때쯤백운
부탄의 아침은 싱그러운자연과 함께 시작된다나무와 풀과 땅은방금 얼굴을 씻은 듯청초하다맑은 기운이 대지를가득 채운다세속의 오염을 씻기라도 하듯가끔씩 자주실비가 내린다사방으로 신령스런히말라야 고산 준봉들이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같이버티고 호위한다오고 가는 사람들은자연과 닮아있다자신이 초라하지도 않고더이상 욕심을 일으켜서안됨을 생리적으로알고 있는 듯하다오로지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자비의 삶으로더 나은 다음 생을 기약한다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여느 여행객들과 달리한결같이 얼굴이 평화롭다깊은 내면의 보물을 발견한 듯충만한 미소가 가득 배어 나온다
둑이 터지듯햇살이물밀듯 몰려온다비 갠 여름 아침비좁은 산길로게릴라처럼 다가온다밤새어둠 속인내의 포위망을 뚫고기습이다단숨에세상을 가지려는 태세다좁은 산길을 지나맥문동의 반가운인사를 만난다마침내들판을 지나푸른 망망대해와마주한다숨이 막힌다끝없는 수평선아득한 바다절망의 바다그리움의 바다치유의 바다그 망망대해한없이 작아진다목놓아 울고 싶다지나온 쉼 없는 세월바다에 무너진다햇살과 바다하나가 됐다그 하나를 바라본다
문득삶을 잠시 멈춘다상념은금빛 날개를 타고아득한 공간을 날아오른다기억의 어느 지점따스한 자비를 만난다언제부턴가잃어버렸던 자비의 눈길샘솟듯 따스한 등천국과 극락이거기에 있다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그 눈길, 잊은 지 오래숨 가쁘게 달려왔다불안한 눈빛이 맴돌고거친 호흡이 에워싼다지친 삶의 언저리에서울음을 삼키고걷던 길을 뒤돌아본다어느 길모퉁이붕어빵 봉지를 들고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돌아보면 사라지고걸어가면 들려오고천천히 걸어본다내 걸음을 따라잡지 않을까아니면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어느 옆 골목에서불쑥얼굴을 내밀지 않을까상념의 나래는 끝나
서유럽 끝, 새로움이 시작되는 곳.이베리아 반도아름다운 에스파냐를 아시나요누구나 한 번쯤 아름다운 풍광을가슴에 묻어 두었을에스파냐를 추억하나요아프리카와 유럽의 교차점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관문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혼재하는 곳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독특한 문화유산이 많은 그곳인류의 가슴에 무한감동을 주는그곳에도 코로나 광풍이 불고 있다아득한 구석기 시대 호모사피엔스가피레네 산맥 남쪽 동굴에 경이롭게 그려놓은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잘 있을까동굴 유적 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산타야나 델 마르 마을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겠지동화 속
석양이내리기 시작하자도시는거대한 점과 선이 됐다낮 동안의날카롭게 빛나던 빌딩의 위용과 권위어둠이 스며드는 석양에 묻혔다그 속에서의수많은 언어와 몸사위정적에 휩싸였다그저 침묵뿐이다검은 점과 선들은 평온하다이것은 분명 평화이리라억울함과 비굴해야 하는 삶모두 잊혀졌으리라나는 소망한다삶이 끝없는 분노라도석양에 아름답게 물들고어둠의 침묵이 새로운 시작이었으면내재된 분노가 아닌새롭게 태어나게 하는그러한 밤이눈물겹도록 그립지 않은 밤이기를…
축축한도시의 안갯속으로오렌지 색 가스등은하나, 둘 꺼져가고전혜린의독일 뮌헨 슈바빙 거리회색빛 도시의 오렌지 색 가스등예술과 자유가 숨 쉬는 슈바빙전혜린은 잊지 못했다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등대불빛이 반짝이는항구도시 포항예술과 문화의 공간에도오렌지 색 가로등이광장을 홀로 밝힌다가슴을 적시던감동도 잊혀가지만예술과 문화의 거리엔오렌지 색 가로등이여전히 가슴을 적신다
바닷가에 가면누구나 소년이 된다아득함에,끝없는 수평선에환갑이 지나서도소년이다아득한 선사시대그때도 소년이바닷가에 왔을 것이다칠포리 암각화의 주인공수렵과 채취를 하던그 시대 사람도이곳동해 바닷가 모래밭에발자국을 남겼으리라모래에 맨발로발자국을 남기며바다를 거닐었다소년의 꿈은수평선을 향해달려나갔다마침내 그 꿈은수평선 저 너머어디엔가 다다랐다언제부터인지도 모를밀려오는 파도와 해조음점점 파도와하나의 호흡이 된다지나온 세월이무색해진다오직찰나만이 진실하다
유월의 햇살이쏟아지는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아미타 삼존불이햇살의 삼배를 받으며깊이를 알 수없는선정에 들었다불단 수미단에장엄된 아름다운 꽃 문양엔삼배를 마친 햇살이 스며들었다수미단 꽃들은선정의 향기를 피워 올린다삼존불의 정수리를 지나법열을 법당 가득 채운다참배객 머리와 가슴도맑아진다존재를 참구하는삼배가 이어진다법당을 둘러싼 절집구석 구석에도 꽃들이 피어난다강렬한 햇살과 하나가 된수련과 붉은 인동초, 황금낮달맞이우단동자, 산수국절정의 희열로 절집을 감싼다삼배의 몸짓과진리를 향하는 눈빛에살아 숨쉬는 수미단 꽃그를 호위하는절집 꽃은 하나다안과
깊은 산 속비구니 참선 도량은해사 백흥암은유월의 한가운데였다유월 하루평소 절문을 열지 않는신비한 도량을 찾아갔다구비구비를 돌아마침내 아늑한 곳어머니 뱃속의 편안함이었다무언가 꽉 찬텅 빈 충만이 절집에 가득했다산이 깊지만 유월의 햇살은절집 가득 쏟아졌다오랜 기왓장을 미끄러져 내려극락전과 전각에 머물렀다극락전 아미타 삼존불에 삼배를 마친햇살이 보화루에 길게 몸을 뉘었다그림자가 된 햇살은 참선에 들고뒤따르는 햇살은 극락전으로 향한다오늘은 참선중인 비구니 스님 목욕하는 날운 좋게 한나절 백흥암 주인 된듯했다극락전 앞마당은 해탈의 고요가 머
강물은 흐르고꽃은 피어난다옥천을 적시는 강물쳐다보는 장미는붉다 못해 처연하다언제부터였던가시작을 알 수 없는물의 행렬 속에오래된 침묵이 흐른다강물은관룡산 화왕산에머물다관룡사 부처님 그늘에서선정에 들었다이젠세상으로 만행을 떠날 때흐르면서 대지를 적신다삼라만상에 생명을 창조한다자연은 물의 보시에 춤춘다꽃도 절정이다장미, 페튜니아, 클레마티스분홍낮달맞이, 작약, 불두화꽃들은 바라볼 뿐만행길 떠나는강물을 관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