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 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말하지 말아라.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이 활활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감상] 심폐소생술(CPR)처럼 응급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지목이 필요하다. 책임 분산을 막기 위해 주변 사람 중 특정인을 지목하여 “빨간 모자를 쓴 당신, 즉시 119에 신고하고 자동심장충격기(AED)를 가져와 주세요”와 같이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사회심리학자 라타네가 증명한 ‘방관자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해 뜨기 전에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저문 바닷가에 홀로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나는 오늘 밤 어느 별에서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감상] 2025년 제5차
바람이 멈추었다고요로 가야겠다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고요는 침착한 두 눈으로흘러가는 시간을 보게 하고육신야말로 얼마나 가엾은 것인지 알게 한다고요는 내 안에 오래 녹지 않은 얼음덩이와그늘진 곳을 보여준다내가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는오래된 상자를 열어 보여 준다그 안에 감추어둔 비겁하고 창피하고 나약한수천 페이지의 문장들을 다 읽을 수 없다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허약하며 자주바닥이 드러나는 사람인지고요는 이미 다 안다내 안에는 타오르는 불길과오래 흘러온 강물이 있다고요는 그 불꽃을 따스하게 바꾸고수많은 것을
나가자, 오동 그린공원으로비 그친 자리 꽃을 밟고 선 신록이점령군처럼 온 산을 뒤덮고 있다바윗등에 앉아 내려다본 산오월의 햇살 속으로 주체할 수 없는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싱그럽게 번져온다산허리 지나 위아래서살랑살랑 불어오는 명지바람삐걱거린 나무 계단을 타고오르내리는 사람들 곁에나도 따라 걷는다가까운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는청설모 노니는 길섶에솜털 보송하게 핀 노루귀, 괭이눈작년에 피었다 진 꽃들한 생이 잠시 계절을 돌아갔다가그 길목을 따라다시 돌아왔구나[감상] 2026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로 안규례 시인의 시 「아침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다시 이 땅 위에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이렇게 말해보면기분이 아주 좋아요.‘아, 오늘도 살아 있네.’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면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병이 나면 ‘건강만 하면 참 좋겠다’눈을 다치면 ‘눈만 보여도 좋겠다’두 다리를 못 쓰게 되면‘걷기만 해도 좋겠다’ 하죠.이렇게 행복은 지천에 깔려 있어요.그런데 그걸 다 내팽개치고욕심에 눈이 어두워서다른 데서 행복을 찾아다닙니다.그러다 죽을 때까지행복하지 못할 수가 있어요.그러니 지금 행복하세요.[감상] 언제부턴가 잠자리에 누워서 ‘오늘도 무탈하게 잘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잔다. 아침
비몽사몽 감긴 눈 뿌옇게 하루 열고한술 뜨던 숟가락은 혓바늘에 막힌 채왜냐는 질문은 유보해, 이유 따윈 접어둘 것우정이란 이름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것치고 빠지는 타임도 절묘하게 굴려 가며철저히 계산해야 해, 관계 맺기와 일상들단잠은 돌돌 말아 옷걸이에 걸어둔 채오지선다 선택지 앞에 퇴로조차 꽉 막혀헷갈린 문제투성이 속, 내 꿈은 어디 있나[감상]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주에 있었다. 1994년 ‘수능’ 도입 이후 32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수능 뉴스는 약속이나 한 듯이 닮았다. 고교 후배들의 개성 넘치는 응원
그대 오어사에 와 보셨나요적바림에 잊고 있었던 혜공이 원효를 만나던 날오어사 동종이 바람에 뎅뎅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기운 빠진 여름이 풍경에 매달려 소리공양을 올리고제비집처럼 지어진 자장암과 산 깊은 원효암에 올랐습니다오어지가 보이는 법당에 인연이 물살로 흔들리고산속 암자에 눌러앉아 그냥 쉬고 싶어집니다혜공과 원효의 내공이 듬뿍 담긴 비빔밥 먹다고기 똥 떨어지는 소리에 물고기 바람타고 올라갑니다그대 정말 오어사에 와 보셨나요[감상] 가을 오어사에는 ‘단풍 물고기’가 산다. 거대한 단풍 물고기다. 아기자기한 단풍 물고기다. 세월을
전 생애가 꾸덕꾸덕 말라가요누구의 음모였을까요내 눈을 관통해 갈 야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눈부신 햇살과 싱싱한 비린내는 덫이라는 걸눈이 뚫리고서야 깨달아요생을 단번에 뚫고 갈 무엇이 있다면온 몸으로 안을 밖에요내 안의 비밀 하나씩 벗겨지는 동안피 흘릴 겨를도 없이 통증은 커지기만 하고마침내 남은 기름기마저 떨궈내고 있네요깊고 푸른 심해를 돌아오는 내내내 몸엔 파도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자꾸만 혹독한 풍랑을 불러들여요달빛은 벼랑 끝까지 나를 몰고 가고바다의 기억을 말리는 보름 동안늑골마다 숨가쁜 바람이 빼곡하죠장대 끝에 매달려 짜디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나는 또다시 바다를 가르네몇만 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감상] 루시드 폴의 ‘고등어’를 듣는다. 고등어를 셀 때는 ‘손’을 쓴다. 조기, 고등어, 배추 등 한 손에 잡을 만한 양이 ‘손’이다. 그런데 고등어 한 손은 두
아빠, 무섭지 않아?아냐, 어두워.인제 어디 갈 거야?가봐야지.아주 못 보는 건 아니지?아니. 가끔 만날 거야.이렇게 어두운 데서만?아니. 밝은 데서도 볼 거다.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 거야?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여기서는 재미없었어?재미도 있었지.근데 왜 가려구?아무래도 더 쓸쓸할 것 같애.죽어두 쓸쓸한 게 있어?마찬가지야. 어두워.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아빠 나라니까.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할아버지가 계시니까.돌아가셨잖아?계시니까.그것뿐이야?친구도 있으니까.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없어도
은행나무를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가을이 되면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당신이라는 별을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아름답게 지고 싶은데이런 나를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당신이라는 별에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감상] 경주 양동마을 양동초 교정에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恒星)처럼 세상의 모든 ‘노랑’은 여기서 발원(發源)한 것 같다. 공광규 시인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당신이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감상] 이원 시인의 『물끄러미-이원의 11월』(난다, 2024)을 읽는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 이야기가
잎이 떨어지면 그 사람이 올까첫눈이 내리면 그 사람이 올까십일월 아침 하늘이 너무 맑아서눈물 핑 돌아 하늘을 쳐다본다.수척한 얼굴로 떠돌며이 겨울에도 또 오지 않을 사람.[감상] 시인을 두고 ‘보는 사람’, ‘듣는 사람’, ‘줍는 사람’, ‘걷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성선 시인은 “시인이란 하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성선 시인을 두고 ‘설악의 시인’, ‘별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을 맑고 순수한 언어로 노래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김사인 시인은 이성선 시인의 시(「다리」와 「별을
악취 나는 부고는 얼마나 호소력 짙은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받을 첫 조문의 설렘, 그는 분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겠지만 금세 제복 차려입은조문객의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복도는 부산해지리라 살아서 찍지 못한 영정은비로소 찍으리라 플래시가 터질 때를 위해 미래 감은 눈은 얼마나 지혜로운가기독채널에 맞춰놓은 텔레비전에선 끊임없이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납세의 의무 다했을 자동이체의 흔적이 내 유언을 대신하리라 알맞게문드러졌을 살갗마다 들끓는 구더기로 염습 끝내고 콘크리트로 짠 아파트관속에 누워 독야청청 한 그루 오동
자꾸만 가까이 기대고 싶어 하지만서로의 거리를 두어야 잘 보이고침묵을 잘해야 할 말이 떠오릅니다남의 말을 듣고 또 듣는 것이사랑의 방법입니다침묵 속에 기다리는 것이 지혜의 발견입니다아파도 슬퍼도 쉽게 울지 않고견디고 또 견디는 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사계절 내내 중심 잡고서 있기 힘들 때도 많지만그래도 기쁘게 사는 것은흐르는 세월 속에 땅 깊이 내려가는 뿌리하늘로 뻗어가는 줄기바람에 춤추는 잎사귀들 덕분입니다오늘도 사랑받고 사랑하는 저를사랑으로 지켜봐주십시오늘 고맙습니다[감상] 소설가 펄 벅이 “조선의 가을 하늘을 네모 다섯 모로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엔진이 툴툴거리는 비행기라도불시착하는 곳이 너만 아니면 된다 오버열대 야자수 잎이 스치고 바나나투성일 거다 오버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죽이 끓고 변죽이 울고 이랬다저랬다 좀 닥치고 싶다 오버원숭이 손을 잡고 머리 위 날아가는 새를 벗삼아이구아나처럼 엉금엉금이라도 갈 거다 오버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엔꼬다 오버삶은 새로운 내용을 원하였으나형식밖에는 선회할 수 없었으니떨어지는 나의 자세가 뱅글뱅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감상]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 황지우 시인은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재무 시인은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 “괄호 같은
폭풍 후엔 고요함이 찾아오고한낮이 가면 밤이 돌아오고비 온 뒤엔 태양이 고개를 드는데,그럼, 당신이 떠난 후엔 무엇이 돌아올까.매 순간 지구는 돌고 있고매년 시간은 우리 곁을 흘러가 버려.좋은 친구를 떠나보낸 후엔 또 다른 친구를 맞이하게 되지.그럼, 당신이 떠난 후엔 무엇을 맞이할까?당신이 떠난 후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한낮의 태양도, 여명도, 비도, 폭풍도 없지. 친구들도 희망도 없어져 버려.당신이 떠난 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영혼이 있는 삶도 없고날 위로해 줄 평화도 없어.당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날 만나 행복했나요.나의 사랑 믿나요.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내가 많이 어여쁜가요.진정 날 사랑하나요.난 정말 알고 싶어요.얘기를 해주세요.[감상] KBS 한국 노랫말 대상은 1987년부터 그해 발표된 노래 중 작품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