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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걷다] 2. 원효와 혜공의 숨결로 가득한 오어지 둘레길

운제산 구름 자락 따라 오어지 거닐며 역사·설화 속으로 여행

윤석홍 시인 등록일 2018년04월15일 17시28분  
오어사와 자장암 전경
오어사 오어지(吾魚池)로 향하는 도로변 벚꽃들이 활짝 피어 벚꽃 터널을 이루는 봄이면 살짝 부는 바람에 꽃비가 흩날리고 꽃잎은 물 위에 떠다닐 것이다. 그 기간이 너무 짧아 이 찬란한 환상적인 풍경도 자칫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 모른다. 오어사 주차장에서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오어사로 향한다. 1964년 운제산 계곡을 막아 만들어진 오어지는 겨우내 메말라 있다가 봄비로 인해 물이 가득 차 넘실거리고 있다.

오어사 가는 벚꽃길
원효 대사와 혜공 선사가 수도하면서 산봉우리를 구름사다리로 왕래해 이름 붙여졌다던 운제산(雲梯山·478m)에는 오어지를 맞대고 있는 오어사(吾魚寺)와 기암절벽 꼭대기에 제비 둥지처럼 내려앉은 자장암(慈藏庵), 사색하기 좋은 오솔길이 있는 원효암(元曉庵), 오어지를 끼고 돌 수 있는 걷기 좋은 둘레길이 있어 최근 이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소나무, 메타세쿼이아, 참나무 등 각종 활엽·침엽수림이 우거진 데다 저수지 풍광이 빼어나 느긋하게 명상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봄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며 일상에 찌든 마음을 씻고자 절집으로 들어간다. 저수지 주위를 산들이 감싸고 있어 수묵화처럼 펼쳐진 오어지는 물의 양이 무려 500만t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고 넓다. 그 넉넉함으로 천년 고찰 오어사를 고즈넉이 품고 있다. 소중한 수변 공간이라는 장소 덕분에 이 절집은 좋은 풍광을 사계절 간직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은 이곳에 일정 기간 머물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머물렀던 군위 인각사, 양양 진전사지, 청도 운문사와 이곳 오어사까지 전부 물가에 있었기에 새로운 창의력이 샘물처럼 솟아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어지 둘레길 안내도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만나는 최근에 세운 일주문을 지나면 오어사가 이내 눈에 들어온다. 오어지 둘레길을 걷기 전 준비 삼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장암을 먼저 올라가 본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산봉우리에 위치한 삼면이 절벽인 암봉 꼭대기에 자리 잡은 암자이지만 150m 거리라 산자락을 따라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계단 초입부터 오랜 세월이 엿보이는 오어사 부도탑이 길을 안내한다. 잘 정비된 계단, 푹신한 흙, 나무뿌리, 돌계단이 번갈아 나오며 발바닥의 감각을 깨우고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자장암에 올라 절벽 끝에 서서 눈앞에는 툭 터진 하늘이, 눈 아래에는 반짝이는 오어지와 운제산 자락 절벽 아래 자리한 절집을 내려다본다. 반달형 땅 위에 오어사가 있고 또 하나 초승달 모양의 호수가 절을 에워싸고 있는 절경이 펼쳐진다. 천 년 전 원효스님이 내려다본 풍경도 이와 같았을까. 관음전과 나한전을 거쳐 뒤편에 1998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세존진보탑이 있다.

오어지 풍경

오어사로 다시 내려와 본격적으로 오어지 둘레길을 걷기 위해 길이 118.8m 원효교를 건너간다. 주변 풍경을 살피며 건너면 곧바로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오른쪽은 원효암 가는 길로 지난해 산사태로 폐쇄됐다. 활엽수와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함께 어우러진 울창한 숲길 사이로 진달래가 한창이다. 첫 갈림길에서 대골 방향으로 간다. 물과 길이 나란히 하는 둘레길을 걷노라면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화엄의 세계가 따로 없다. 길바닥 또한 부드러워 맨발로 걸어도 다칠 염려가 없을 정도다. 남생이바위 안내판에서 발길을 멈춘다. 남생이바위가 앙증맞게 수면 위로 올라와 자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53호인 남생이는 우리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산비탈을 깎아 만들어 낸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짧은 길이지만 힘이 들 정도는 아니다. 삼거리 이정표 지나 곧바로 가면 메타세쿼이아 숲이 나온다. 팔각정자와 쉼터를 비롯한 여러 시설이 마련돼 있다. 여기서 잠시 오어사 창건 유래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어사는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있는 신라 진평왕 때 세운 절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가운데 몇 안 되는 현존하는 절이다. 자세한 창건 내력은 알 수 없지만, 신라의 네 고승(高僧) 원효(元曉·617~686), 자장(慈藏·590~658), 의상(義湘·625∼702)과 더불어 ‘신라 4성(聖)’으로 불리는 혜공(惠空·생몰연대 미상)이 수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웅전은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형식 팔작집으로, 천장이 화려하게 조각돼 있고, 정면의 꽃창살에 새겨진 국화와 모란이 그윽한 멋을 더한다. 1995년 11월 경북일보가 특종 보도한 저수지 준설 작업 중에 발견된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 원효 대사 삿갓과 숟가락은 오어사 유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한국 불교 최고의 사상가인 원효 대사가 유일하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한 이가 혜공이다. 원효가 여러 가지 불경의 소(疏)를 찬술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물었다. 혜공이 말년에 지금의 오어사(吾魚寺)에 머물 때 일이다. 오어사에 대한 유래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하루는 둘이서 계곡 상류에서 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뤘다. 그런데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다가 딱 한 마리 차이로 승부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중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였다가 ‘오어사’로 바뀌게 된 유래로 알려져 있다. ‘항사’란 ‘갠지스 강의 모래알’이란 뜻인데, 불가에서는 ‘무한한 수’란 의미로 쓰인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1206~1289) 스님은 항사사란 절 이름에 “항하(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세속을 벗어났기 때문에 항사동이라 부른다”고 풀이한 각주를 달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졸시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를 읽어본다.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적바림에 잊고 있다
혜공이 원효를 만났다는

오어사 동종이 바람에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기운 빠진 여름이 풍경에
매달려 소리 공양 올리고

제비집 같은 자장암과
산 깊은 원효암에 올라

오어지가 보이는 법당에
인연이 물살로 흔들리면

산속 암자에 눌러앉아
그냥 쉬고 싶어집니다

원효와 혜공의 내공이
듬뿍 담긴 밥공양하다

산 물고기 가지고 서로
다툼했다는 아름다운 절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오어지 둘레길
길에서 만난 도마뱀
봄바람에 찰랑이는 물결 소리에 깨어 다시 길을 나선다. 완만한 경사길을 오르내리면 원터골에 다다른다. 오래전 오천에서 경주로 넘어가는 길목인 이곳은 심산유곡이라 해가 저물면 길을 찾기 어려워 고을 원님이 숙소를 지었는데 현재 그 터만 남아 ‘원터’라 불리고 있다. 저수지로 흘러드는 상류 계곡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나무계단을 올라 조금 전에 왔던 반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신작로 흙길따라 가다 보면 황새등 쉼터에 닿는다. 저수지 상류를 가르는 산 모습이 황새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새등 쉼터에서 안항사 입구 삼거리로 향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어사 주차장까지는 약 2km 거리다. 항사리 마을까지 1.9㎞, 다시 0.1㎞ 더 가면 오어사 주차장이다. 항사리 마을까지는 포장도로지만 오어지를 보며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현재 도로정비공사로 어수선하다. 이처럼 오어사 주차장을 출발해 오어사 원효교 건너 오어지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은 7㎞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오어지 둘레길
돌 징검다리
만약 오어사 주차장으로 가지 말고 흙길을 걷고 싶으면 안항사 삼거리에서 처음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 메타세콰이아 숲 쉼터 지나 삼거리 이정표에서 오어사 쪽으로 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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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위쪽 헬기장 방향으로 올라 능선길을 걸어 헬기장까지 갔다가 원효암으로 내려오는 것도 괜찮다. 원효암에서 오어사 오는 길은 계곡 물 소리와 함께 그늘이 가득해 어두운 숲길이다. 내려오다 콘크리트 다리 건너기 전 바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면 햇빛에 반짝이는 오어지와 아담하게 자리한 오어사, 절벽 위 아스라이 얹어진 자장암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오어사 경내를 둘러본다. 이처럼 오어지 둘레길을 걷고 나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스님들의 치열했던 구도(求道) 정신과 법문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환경과 우리네 마음만 변해갈 뿐이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자. 이곳은 무수히 많은 역사와 설화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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