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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0년] 10. 대한민국의 모든 이목이 집중한 1970년4월1일 포항

박태준 "1일 콘크리트 700㎥씩 타설", '돌관공사'로 고로화입 목표 완벽 달성

이한웅 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등록일 2018년05월13일 17시03분  
포항제철소 종합 착공식(1970)
1) 드디어 종합착공식, 영일만 가득 힘찬 굉음 울러 퍼져

1972년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

포항열연공장착공(1970)
1970년 4월 1일 오후 3시.

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이 포항종합제철소 1기 설비 종합착공식이 열리는 포항으로 집중됐다.

주빈으로 단상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 박태준 사장, 김학렬 부총리가 착공버튼을 누르는 순간, 영일만 가득 힘찬 굉음이 울러 퍼지고 오색찬란한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잘살아보자는 결의가 大地를 뒤덮었다.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 이후 토지보상과 부지조성, 설비와 원료구매, 종합제철 인프라 구축 등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온 지 꼭 2년 만에 제철소 공장이 비로소 건설되는 것이다.

원료처리설비 착공식
이날 1기 종합착공은 사실 공작정비공장 착공식이었다.

제철소설비 중에 가장 먼저 착공한 것이 공작정비공장. 이 공작정비공장 착공식을 1기 설비 종합착공식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공작정비공장 부지에 파일 항타기 3대를 준비해놓고 착공식 단상까지 케이블로 연결했다. 식단 테이블 가운데에 박정희 대통령, 그 오른쪽에 박태준 사장, 왼쪽에 김학렬 부총리 이렇게 섰고 테이블에는 버튼 세 개를 준비했는데 버튼 세 개 중 두 개는 가짜였고 대통령 앞의 버튼만 케이블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만약에 버튼 작동에 이상이 있을까 봐, 단상 옆에 빨간 기를 든 직원까지 배치했다. 대통령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를 흔들면 현장에서 바로 파일 항타를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착공 버튼을 누르자 항타기 3대가 굉음을 내며 작동했고 단상의 세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영일만 모래 벌에는 금세라도 쇳물이 흘러내릴 듯, 행사장에 참석한 근로자들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대한민국 경제사에 큰 획을 깊게 긋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기간산업 중 가장 중요한 포항종합제철은 1973년 여름까지 103만 톤 규모의 공장을 완공하고 계속 확장해 1970년 후반에는 1000만 톤 정도의 생산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선(先)공정인 제선·제강공장부터 건설하는 ‘포워드 방식’을 따르지 않고 후(後)공정인 열연·후판 공장부터 건설했다. 해외에서 반제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생산하고 여기서 생기는 이윤을 제철소 건설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공사중인 포스코 고로 (1970)
이날 착공식에 이어 1973년 7월 3일 1기 종합준공까지는 고지를 향한 쉼없는 전투가 또 시작되었다. 4월 1일 공작공장 착공과 함께 9월 1일 시험검정설비, 10월 1일 열연공장, 10월 30일 후판공장 순으로 잇따라 착공되고 1971년에 들어서는 4월 1일 제선공장, 7월 2일 제강공장의 순으로 모두 18개 공장설비가 잇따라 착공되어 동시다발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열연공장 콘크리트 타설 장면(1971)
1971년에는 토건공사, 1972년에는 전기공사가 절정을 이뤘으며 이 기간에 토목 259건, 건축 149건, 상수도 배관공사 72건, 기계 공사 71건, 전기공사 156건 등 무려 930여 건의 공사가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발주되었다.

1972년 말에는 회사 본사를 포항으로 옮기고 이를 계기로 공기 단축 계획을 수립하는데, 고로 화입일은 1973년 6월, 전설비의 조업 개시일은 7월로 정하고 있었다.

또 종합준공에 대비해 본격적인 공정관리에 들어간다. 회사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 일관조업에 대한 준비체제를 사전에 철저히 강화하는 종합카운트다운을 시작해 1973년 4월 1일부터 6월 8일의 1고로 화입까지 68일간 중점실시 하고 이 기간 중에는 모든 직원이 빨간색 안전모를 착용하고 정신적 재무장을 추진했다.

열연비상 철야작업(1971)
2) 열연 비상 불가능은 없다 (밤 낮 없는 24시간 돌관공사)

종합제철소 1기 공사장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건설이 시작되자 현장의 직원들은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밤낮없이 건설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1971년 4월 열연공장 기초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산이 3개월이나 지연되자 박태준 사장은 공기만회를 위해 “하루에 콘크리트를 700㎥씩 타설하라” 라는 비상체제를 선포했다. 이것이 건설비상 1호인 ‘열연 비상’으로, 공기 준수를 위한 포스코 특유의 주야 돌관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열연공장 건설에는 콘크리트 9만 6370㎥, 철근 5800톤, 강재 640톤이 투입되는 등 단일공장 공사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 그러나 사실 당시 포항지역 건설 상황으로 볼 때 레미콘 차량 200대 분량인 700㎥의 콘크리트를 타설하라는 지시를 완수하기에는 무리였다. 이 콘크리트분량은 이미 지어진 동촌 독신료 한 동의 용적과 맞먹는 양이었으니, 하루에 독신요 하나씩 쏟아 부어야 했다.
착공식 행사장으로 걸어가는 박대통령, 김학렬부총리,박태준사장
모래벌을 일구며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모습 (1967~71)
그동안 실적과 열연공장의 복잡한 구조를 감안하면 1일 250~450㎥의 타산이 적정 작업량이었으나 박태준 사장의 비상지시에 24시간 돌관(突貫)공사로 하루 700㎥ 타산을 강행, 전사적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레미콘 트럭이 들락거리고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해가 지면 조명탑을 세워 밤을 환하게 밝혔다. 매시간 각 야드에서 부은 콘크리트 양을 보고하고 그것을 종합해 그래프를 그렸다. 매일 초긴장 상태였다. 열연비상 두 달 동안 제대로 숙소에 들어가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열연비상은 관리·행정 분야 직원까지 모두 투입되고 부·차장의 일일 총감독제 실시와 함께 24시간 ‘돌관공사’를 이어간 끝에 불과 2개월 만에 5개월분의 콘크리트를 타설함으로써 지연된 공기를 100% 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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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웅 작가·콘텐츠연구소 상상 대표

이 열연비상이 계기가 돼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1기 설비공사를 예정 공기보다 1개월 단축, 1973년 6월 8일 고로화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기설비착공 현장중계
3) KBS 현장 생중계 “발파음까지 잡아라“

포항제철소 종합착공식은 KBS를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당시 포항지역 유일의 방송 매체였던 포항 KBS는 이날 공사장 현장에 중계석까지 설치해 최규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종합착공식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그 후 이어진 종합준공식, 2기 착공식, 주물선고로공장 기공식 등 주요 설비착공 때마다 현장에서 중계를 진행했다.

이에 앞서 1967년 10월 3일 영일군 대송면에서 열린 종합제철단지 기공식도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 방송했던 KBS 공영방송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1973년 7월 3일 포항종합제철 1기 종합준공식 때는 KBS 포항방송이 정명식 건설본부장을 인터뷰한 화면이 KBS 9시 전국뉴스의 메인 뉴스로 송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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