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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하봉길 대구 대중금속공고기계과 2회 졸업생 등록일 2018년06월20일 15시44분  
▲ 하봉길 대구 대중금속공고기계과 2회 졸업생
나에게는 항상 6월이 되면 옛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당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산을 넘어다녔다.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며 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간혹 철모며 불발탄 어떤 때는 사람의 머리뼈(해골) 엉치뼈 또 어떤 때는 막대기같이 조금 올라있는 허연 것을 뽑아보면 사람의 정강이뼈가 드러나 기겁을 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사람의 뼈를 봤을 때 그날은 학교에서 조잘대며 떠들긴 했지만 언제나 귀신이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가을운동회가 제일 싫었다.

운동회연습이라고 항상 늦게 마치고 어둑해 질 때쯤이면 학교를 파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하교를 하지만 누구 하나 사람의 뼈를 봤느니 하는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머리가 쭈뼛 선 기분으로 발걸음을 종종거리며 걷기에 바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나머지 공부하는 친구가 있으면 운동장 구석에서 공기놀이 땅따먹기를 하던지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다같이 하교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단지 여럿이 같이 하교하는 게 조금이나마 덜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중학교 3년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진을 아홉 번 쳤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구진산성을 넘어서 매일같이 등하교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체력 하나는 참 좋았던 것 같다.

이제는 담배를 40년 가까이 피우다 보니 그것도 옛말이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가 아버지가 돼 돌아보니 지금은 도시 생활에 찌들어 허겁지겁 세월만 지나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가끔 나는 내 아이들에게 “옛날에 아빠는~”이러면 어김없이 꼰대같은 소리한다고 밖에서는 절대 하지 마란다.

나의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서 대전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가끔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굴렀다. 그럴 적마다 어머니는 한밤중이라도 보리쌀 한 되박을 들고 구진산성을 넘어 약방에 가서 약과 바꿔서 아버지께 갖다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그때는 몰랐지만 6·25 때 총상으로 부상 당한 배가 아파서 못 견뎌 하셨던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민주화 운동 바람이 불고 김대중 정권이 되어서야 참전용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짐으로써 아버지도 그즈음 보훈처에 유공자신청을 하셔서 그때 서야 알았다.

그전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셨던 것 같다.

서슬 퍼럴 때는 함부로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셨던 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의 작은아버지도 국가유공자이시다.

외상으로 확연히 드러났으므로 작은아버지는 진즉에 유공자가 되셨다. 아버지가 왜 아팠는지 조금 성장해서는 관심도 가지지 못 했던 나는 불효자 중에 상 불효자였나 보다. 이제는 그 무서움에 떨며 넘나들던 초등학교는 폐교되어서 박진지구 전쟁기념관으로 바뀐 지 오래됐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수많은 희생자의 유해는 계속된 발굴로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모셔져 있다.

나는 올해 초등학교 모교에 터를 잡은 전쟁기념관과 전적비를 둘러 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다.

남북회담 북미회담이 이루어져 비핵화 평화협정 얘기가 나오는 시점이지만 우리의 지나간 시간 역사는 잊지 않으려 가슴에 새겨본다.

이번 주에는 현충원에 아버지 어머니 작은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

그리고 우리들의 스승님 고 주명호 선생님(육 군준장 출신·전 대중금속고업고등학교 교장)도 뵈어야겠다

10년 전부터 매년 가는 현충원이지 만 올해는 스승님도 뵙는다 생각하니 지금부터 설레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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