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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국부 호치민과 남로당 당수 박헌영

박헌경 변호사 등록일 2018년08월06일 17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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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항상 곁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두고 읽었다고 한다. 목민심서는 세도정치로 부패한 19세기 조선에 있어서 목민관의 마음가짐과 행동철학을 담은 다산의 역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닌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 호치민이 중국서적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의 학자 다산이 쓴 목민심서를 평소 애독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상당히 궁금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조선로동당(남로당) 당수였던 박헌영 평전을 읽으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1930년대 소련은 아시아의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을 국제레닌대학에서 4년 과정으로 교육을 시켰다. 그때 베트남과 조선의 공산당 지도자였던 호치민과 박헌영이 국제레닌대학에서 수학을 하였고 박헌영 평전에는 호치민과 박헌영이 같이 찍은 사진도 실려있다. 국제레닌대학에 다닐 당시 박헌영이 호치민에게 선물한 책이 바로 다산의 목민심서였던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호치민은 베트남을 식민지배한 프랑스경찰에 쫓겨 다니며 해외에서 항불 공산주의 독립운동을 펼쳤고 체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으며, 박헌영은 국내에서 항일 공산주의 독립운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두번 감옥에 수감되었고 정신병자 행세를 함으로써 석방되어 전라도 광주 벽돌공장에서 노동자로 숨어지내다가 해방을 맞았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물러간 뒤 호치민은 북베트남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고 다시 베트남을 쳐들어온 침략자 프랑스에 대항해 게릴라전으로 싸워 이를 물리쳤으며, 이어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남베트남을 군사지원한 세계 최강국 미국과도 싸워 이겨 베트남이 남북통일될 수 있도록 하였다. 호치민이 죽고 난 후 중국의 30만 인민군이 베트남을 침략하였으나 호치민이 키운 베트남은 중국의 침략도 물리치고 독립된 통일 베트남을 건설함으로써 호치민은 베트남 국민의 불멸의 국부가 되었다.

그런데 박헌영은 해방 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으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좌우합작보다는 급진적 공산주의로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좌경화한 후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이 조선인의 자치활동을 불허하며 박헌영 등 조선공산당 간부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자 박헌영은 월북하여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내며 남로당을 지휘했고,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뚱의 인민군이 승리하여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김일성과 함께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1953년 7월 휴전이 되자 김일성은 한국전쟁 실패의 책임을 박헌영에게 돌려 박헌영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하였고 이때 카프문학계 시인 임화를 비롯한 남로당원 2000여명도 함께 숙청당하였다. 한국전쟁 중 북에 머무르지 않고 지리산에 웅거하면서 마지막까지 지리산 빨치산을 이끌었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도 남로당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서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지리산 빨치산이기도 하다.

호치민이 베트남의 불멸의 국부가 된 반면에 박헌영은 남에서는 비타협적 선동을 일삼던 빨갱이로 치부되고 북에서는 미제 간첩으로 반당 종파분자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호치민은 공산주의를 위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베트남을 위한 공산주의자였으며 자신과 당파의 이익을 초월하여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였고 평생 독신으로 검소하게 지내면서 권력에 집착하지 않은 반면 박헌영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철저한 교조적 공산주의자였으며 여운형의 좌우합작을 방해하고 비타협적 공산주의로 일관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남로당 20만명 봉기설을 주장한 것에서 보듯이 자신과 당파의 권력 강화에 집착한 모습을 보인 점에서 나온 것 같다.

해방정국으로부터 70년이 지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좌우의 이념대립이 심각한 이때 좌우를 아우르고 통합하며 자신과 당파의 이익을 초월하여 한반도의 통일과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리더십이 기다려진다. 구동존이(求同存異·나와 같은 것은 구하되 나와 다른 것도 존재하게 둔다)는 다양성의 인정과 포용정신만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뮨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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