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소비자 동의 없는 한전 일방적 약관 불공정
24일부터 변경 가능···1년에 한 번만 가능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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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기요금 검침일을 전력 사용량에 따라 고객이 직접 조정해 누진제에 따른 전기료 ‘폭탄’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고객의 동의 없이 한국전력공사가 일방적으로 검침일을 정하도록 한 한전의 불공정 약관을 고치도록 했다고 6일 밝혔다.

한전의 ‘기본공급약관’에 따르면 전기요금 검침일은 한전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다.

문제는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검침일에 따라 전기요금이 적지 않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사이는 냉방기 등 사용이 많아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때지만 이 시기를 하나의 전기요금 산정 기간으로 정하면 그만큼 높은 누진율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기간을 두 개의 산정 기간으로 분리하면 상대적으로 누진 효과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7월 1일부터 15일까지 100kWh, 15일부터 31일까지 300kWh, 8월 1일부터 15일까지 300kWh, 15일부터 31일까지 100kWh의 전력을 사용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검침일이 1일이라면 7월 전기요금은 400kWh에 대해 총 6만5760원이 부과된다.

하지만 전기 검침일이 7월 15일이었다면 8월 15일까지 한 달간 총 600kWh에 대해 13만6040원의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

전력 사용량은 50% 늘어났음에도 전기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면서 100% 이상 커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공정위는 고객의 동의 없이 검침일을 정하도록 한 한전의 약관은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보고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한 전력량을 사용해도 검침일에 따라 전기요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한전이 고객 동의 없이 검침일을 정하도록 한 약관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공정위의 결정에 따라 소비자들이 검침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약관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원격 검침은 고객 요청에 따라 검침임을 바꿀 수 있도록 했고, 기타 일반 검침은 한전과 협의해 인근 지역의 검침 순서 등을 고려해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은 한전이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을 개정·시행하는 오는 24일부터 검침일 변경을 한전에 요청해 7∼8월 전기요금 산정 구간을 바꿀 수 있다.

가령 정기검침일이 15일인 고객이 검침일을 5일로 바꾸면 전기요금은 7월 15일부터 8월 4일까지, 8월 5일부터 9월 4일까지로 나눠 계산된다.

정기검침일을 26일로 바꾸면 7월 15일부터 25일까지, 7월 26일부터 8월 25일까지 각각 계산이 이뤄진 뒤 합산해 청구가 이뤄지게 된다.

여름철 전력 사용이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에 집중되는 경향을 고려하면 검침일이 15∼17일인 소비자가 월초나 월말로 검침일을 변경하면 누진제로 더 많은 요금을 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내년 폭염이 다른 기간에 발생하면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검침일 변경은 1년에 한 번만 할 수 있다.

한전의 한정된 검침인력을 고려하면 실제 검침일 변경을 실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아파트처럼 개별 가구가 아닌 단지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 모든 가구가 검침일 변경에 동의해야 한다.

검침일은 2016년 여름에도 논란이 됐고 이후 한전은 희망하는 소비자에 한해 검침일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 사실을 기본공급약관에 명시하지 않았다.

이후 약 47만 가구가 변경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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