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쉼터' 포항 효자경로당
더위를 씻어줄 비가 내리지 않아 습하고 후덥지근했던 9일 오후 1시 포항시 남구 효자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맞아주는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줬다. 경로당에는 25여 명의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집안의 경사들을 자랑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할머니들의 손자·손녀의 결혼 소식을 비롯해 취직에 성공해 무척 기쁘다는 등의 얘기가 오갔다.
효자경로당의 ‘큰언니’ 박분순(91) 할머니.
나이가 들어 귀도 먹먹하고 거동도 쉽진 않지만 매일같이 이곳 경로당을 찾아 다른 할머니들 수다 떠는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박 할머니는 “유독 더운 올 여름에 경로당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더위도 피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요즘 여기 오는 낙으로 산다”고 말했다. 냉방비 때문에 집에 있으면 선풍기도 아껴 틀게 돼 덥다는 박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이렇게 시원하게 못살아”라고 손을 내저었다. 한 할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낮 동안 모두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혼자서 에어컨을 틀기 부담돼 매일 경로당에 나온다. “혼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곳에 오면 시원하고 심심하지 않아서 매일 밤이면 빨리 날이 밝아 경로당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날 경로당에는 포항남부소방서 직원들이 방문해 혈압과 당뇨 등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한편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이곳 경로당의 소방시설점검을 진행했다.
한 할머니가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을 위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한다.
노인정 회원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가 하면, 몇몇 할머니들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래를 마친 유경선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에 가서 열심히 노는 것도 좋지만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은 경로당이 최고의 피서지다”고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들은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누고, 각자의 장기를 살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유독 더운 올 여름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