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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불사와 ‘참나’

박헌경 변호사 등록일 2018년08월20일 15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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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그토록 무더웠던 폭염의 맹위도 입추를 지나면서 조금씩 누그러져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한낮에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늦여름의 숲을 뒤덮고 있지만 저녁에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주택가 모퉁이마다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햇볕이 따사롭게 느껴지고 차달리는 소리조차 생기가 넘쳐나는 이 계절에 서가에서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뽑아들고 창가에 앉아 읽거나 나뭇가지에 바람이 이는 모습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세상에 공부는 두 가지가 있다. 머리에 집어넣는 공부와 머리에서 빼는 공부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공부라 하면 책을 읽거나 경험을 통하여 머리에 지식이나 정보를 입력하는 것을 말하는데 스님이나 종교인은 명상이나 기도 등을 통하여 머리에서 생각을 빼내는 마음공부를 참된 공부라고 한다. 마음공부는 축적된 지식이나 경험에 의하여 길들여진 나에서 벗어나 ‘참나’로 가기 위한 공부이다.

단청불사(丹靑佛事)란 오행에 따라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배합하여 목조건물인 법당을 다양한 문양으로 칠하는 것을 말한다. 단청불사에 관한 경허대사와 그의 제자 만공스님에 얽힌 일화가 있다. 경허대사가 만공스님과 어느 날 탁발을 나섰다. 그런데 탁발 도중 경허대사가 만공을 힐끗 쳐다보며 “우리 단청불사 한번 해볼까” 하고 말했다. 만공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갑자기 단청불사라니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경허대사는 주막으로 들어가서 술을 청했고 만공도 따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뒤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은 주막을 나왔는데 경허대사가 만공스님을 보며 말했다. “만공 자네 얼굴을 보니 단청불사가 잘 되었군” 만공의 얼굴은 저녁노을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경허대사가 만공스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붉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 단청불사가 잘 되었다고 말한 것은 대웅전 법당이 부처님을 모신 곳이듯이 우리들 각자 몸 안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법당인 우리 몸이 술을 마시게 되어 얼굴이 붉게 물들었으므로 대웅전 법당에 단청을 한 것과 같다고 하여 단청불사가 잘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 번 언약하시기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성전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언약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씀한 예언을 몸소 실천하여 지킴으로써 언약의 약속을 증거하셨다고 한다. 그 언약의 증거란 사람의 몸은 성령(그리스도)을 모신 성전 즉 교회이고 이 성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허물어졌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인하여 우리 몸 즉 성전이 다시 세워졌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 몸은 성령이 모셔져 있는 성전이요.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사찰 즉 사원이므로 우리는 우리 몸을 항상 정결하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 새롭게 거듭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가 곧 부처님이요 성령 즉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참나’의 실상은 부처님이요 그리스도이므로 우리는 ‘참나’를 찾기 위한 마음공부와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시비분별이 없는 마음,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난 마음, 어린아이와 같이 순정무구한 마음, 항상 현재 이 순간에 머물러 있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참나’로 돌아갈 수 있다.

사생활 문제로 의혹을 받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에 대한 중앙종회의 불신임 결의가 며칠 전 가결되었고 탄핵이 확정되면 신임 총무원장이라는 자리를 둘러싸고 또다시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 예상된다. 한편으로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의 창립자 김삼환 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에 부임하면서 부자세습이 완결되었다. 목회직 세습에 대한 비판이 교회 안팎에서 거세다. 참된 종교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버린 검소하고 질박한 곳에서 고통받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만 진정으로 꽃피울 수 있다. 호화롭고 빛나는 가사장삼이나 제례복 속에 ‘참나’ 즉 부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같이할 수는 없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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