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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랑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등록일 2018년08월21일 16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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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젊을 때 유행했던 노래 중 ‘고래사냥’(송창식,1975)이란 곡이 있습니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 잡으러~’라는 가사가 기억에 선명합니다. 청년기의 낭만(浪漫) 예찬을 노래로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망망대해처럼 넓디넓은 세상으로 나가 저마다의 이상(理想)을 실현해 보자는 권유나 다짐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노래가사의 3대 핵심모티프는 ‘떠남, 동해, 고래’입니다. 떠남은 행위고 나머지 둘은 그 행위의 배경(장소)이나 대상(인물)입니다. 소설론에서 구성의 3요소라고 하는 ‘인물, 사건, 배경’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행위의 주체인 ‘인물’은 주인공과 그 상대역이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인물, 사건, 배경’을 젊은 날의 ‘연애’에 한 번 대입해 보겠습니다. 젊어서는 인물이 가장 중한 줄 알았습니다. 그다음으로 보는 게 배경이었고요. 사건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많이 덜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좋아 사랑을 나누는 것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고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닙니다. 순서가 ‘인물, 배경, 사건’이 아닙니다. ‘떠남(사건), 동해(배경), 고래(인물)’라는 ‘고래사냥’ 노래가사 순서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고래사냥’의 삼대 요소 중에서 가장 중한 것이 ‘떠남’입니다. ‘동해’는 ‘서해’로 바꾸어도 되고 ‘고래’는 ‘갈치’로 바꾸어도 되지만 ‘떠남’은 다른 그 무엇으로 바꾸기가 곤란합니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살아보니 대상이나 배경은 하나 중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얼마나 내가 사랑하는가가 항상 관건입니다. 그 행위의 진실성이 중한 것이지 인물이나 배경이 주는 만족감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세월의 침식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은 노래 이야기로 일관해 보겠습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불세출의 쿠바 보컬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의 대표작이 ‘찬찬(Chan Chan)’입니다. 예술을 조롱하는 각박한 삶에 좌절하지 않고, 끝내 ‘하나 살아남을’ 자신들의 기예(技藝)로 불후의 명곡을 전하는 노(老)가객들의 분투가 돋보입니다. 그 노래 역시 ‘떠남과 사랑’의 주제를 노래합니다.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당신에 대한 사랑은 감출 수가 없어요. / 당신을 원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후략’


알토 세드로가 어딘지 쿠에르토가 어딘지 나카네와 마야리가 어딘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녀의 배경이 어떤지 그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다만 떠나고 그 길 위에서 당신을 사랑할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노래하는 자나 노래 듣는 자나 같이 알고 공감하는 것은 오직 ‘떠남‘과’사랑’뿐입니다. 그 둘을 합치면 ‘길 위의 사랑’이고요.

‘떠남’과 ‘사랑’, 어디로 향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얼핏 보기에는 그것들이 젊은 시절 한때의 낭만인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다시 한 번 숙고하면 우리네 인생이 결국 그 두 가지 행위로 요약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들뜬 마음’으로만 치부되는 삶에서는 생명의 약동이란 것이 없습니다.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살아있지만, 깊은 수렁에 가라앉아 있는 가사(假死) 상태의 인생인 것입니다. 인생은 늘 ‘길 위의 사랑’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게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애창곡이었던,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 쉬는 동해바다로~’를 다시 한 번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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