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로 이어진 동해 바닷길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감탄 가득
블루로드는 해안을 따라 A코스(빛과 바람의 길·17.5㎞), B코스(푸른 대게의 길·15.5㎞), C코스(목은 사색의 길·17.5㎞), D코스(쪽빛 파도의 길·14.1㎞) 등 4개 코스로 나뉜다. 대부분의 해파랑길 탐방로가 산림으로만 형성돼 있지만 영덕 블루로드는 청정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영덕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길은 ‘푸른 대게의 길’로 불리는 B코스다. 바다가 시야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호젓하게 걷고 싶다면 A코스 ‘빛과 바람의 길’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A코스는 ‘블루로드(Blue Road)’란 이름을 처음 낳게 한 길이다. 보통 강구항을 출발해 풍력발전단지까지 걷지만, 그 반대로 영덕역에서 출발해 고불봉~풍력발전단지 갈림길~바다가 잘 보이는 봉우리~금진구름다리~강구항~강구터미널까지 약 9㎞로 걷는 내내 쪽빛 바다를 보일 듯 말듯 숨겨 놓아 더 매력을 지닌 길이다.
지난해 개통한 포항역에서 영덕역까지 가는 동해선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걷기 시작은 새로 신축된 영덕역을 빠져나와 오른쪽 고불봉으로 가는 길과 블루로드 안내판이 보이는 지하도를 따라간다.
고불봉(高不峰)은 경북 영덕군 영덕읍 내에 있는 자그마한 ‘뒷산’으로 해발 235m에 불과하다. 문헌에는 영덕 화림산 일맥이 천천히 달려 내려와 무둔산 자락에서 숨을 고르며 영덕의 정기를 받아 동으로 다시 달려 봉우리를 만드니 이것이 곧 고불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해에서 떠오른 보름달이 두둥실 봉우리에 걸치면 봉우리도 둥글고, 달도 둥글다 하여 망월봉(望月峰)으로 불린다.
옛날 동해의 붉은 해가 심해 깊숙이 잠겨 있고 그 붉은 기운만이 적막강산을 휘감을 때 붉은색 비단이 덮이듯 새벽 구름에 싸여 있는 고불봉의 모습을 불봉조운(佛峰朝雲)이라 했단다. 불봉조운은 영덕팔경 중 하나일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워 영덕에 유배 온 고산 윤선도는 고불봉 밑에 유배소를 정하고 ‘고불봉’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고불봉 정자 바로 아래 있는 이정표를 보니 강구항 8.4㎞, 오른쪽으로 바로 내려가는 숭덕사까지 1.7㎞라고 쓰여 있다. 저 멀리 해맞이 공원에 들어선 풍력발전단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풍력발전기는 유럽과 미국 등에 주로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24기의 거대한 피조물이 쉬익쉬익 바람을 가르며 쉼 없이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를 바라보면 한 편의 공상과학영화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바람을 이용한 국내 최대 상업용 발전단지로 연간 9만6천680㎿의 전력을 생산하며, 인구 2만 가구가 조금 넘는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라고 한다.
고불봉에서 강구항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풍력발전단지로 연결된 갈림길이 나온다. 풍력발전단지 7.4km, 강구항 8km 이정표를 보며 강구항을 향해 곧바로 능선 따라 걷는다. 능선을 요리조리 걷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산림녹화탑을 에둘러 돌아가다 보면 숭덕사 갈림길이 나오고 강구항까지 7㎞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한동안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땀이 살짝 날 정도지만 걷기에는 부담이 없다. 여전히 바다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계속 걷다 ‘바다가 잘 보이는 봉우리’ 표지판에서 잠시 쉰다. 그동안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져 바다는 보이지 않기에 ‘바다가 잘 안 보이는 봉우리’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한 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걷는 내내 푸른 동해와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고, 태백산에서 다대포로 힘차게 달려가는 낙동정맥과 함께했다. 블루로드 A코스 출발점에서 만나는 생동감 넘치는 강구항 풍경이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따스하게 위무(慰撫)해준다. 체험이나 볼거리가 없기에 조용히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나이 든 사람들에겐 아름다운 바다의 추억을 돌려주고, 연인에겐 낭만과 기쁨을 선물하며, 아이들에겐 꿈을 키우고 바다와 길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빛과 바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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