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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지 않는 리더십

박헌경 변호사 등록일 2018년09월03일 16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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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지인이 최근에 ‘삼국지 : 조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의 탈고를 끝냈다. 그동안 난세의 간웅으로도 평가를 받아온 조조를 현시대에 새롭게 조명하여 조조의 리더십과 지혜를 본받자는 취지인 듯하다. 조조는 천하의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여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당대의 대시인(大詩人)이기도 하였다. 그는 둔병을 설치하여 굶주리며 떠도는 가난한 백성들의 살림을 안정시켰으며, 한번 정한 법을 엄격히 시행하여 민심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비록 난세였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서주대학살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으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냉혈한이기도 했다.

적폐 청산을 위하여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 반 동안 수사를 좀 한다는 검사들은 대다수 차출되어 연일 적폐청산 수사에 동원되고 있는 현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은 또다시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 의지를 재천명하였다. 경제가 침체되고 고용불안으로 어려운 현 정국을 적폐청산 수사로 돌파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 스타일은 삼국지의 유비를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세에는 선이 근본이 되어야 하지만 악도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리더십도 필요한 것인데 문재인 대통령처럼 너무 신사적으로 해가지고는 통일도 민생도 어림없다는 것이다. 난세에는 조조처럼 잔혹한 리더십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이 떠오른다.

지금이 난세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비와 닮았는가도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진중하고 신사적이라는 면에서는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조에 대하여는 중국에서조차 자신의 실력으로 시대를 선도한 풍운아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으며 인재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반면 촉한정통론에 입각하여 영웅으로 칭송받아온 유비는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우유부단하고 지략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유비는 유방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그늘 아래 모든 뛰어난 인물들을 포용하고 끌어들일 수 있는 인간적 매력을 지닌 큰 그릇이다. 제갈공명도 방통도 관우·장비도 그리고 장자방이나 한신조차도 그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이다. 그리고 소리 나지 않는 리더십과 관용의 정신, 신하와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겸허함, 백성을 위해 선공후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 이런 장점 때문에 유비가 많은 후세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다만 유비는 후계를 자신의 아들이자 어리석은 군주 유선에게 물려준 것이 패착 중에 패착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로마의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어리석은 아들 코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주어 로마 멸망의 단초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유비는 고작 척박한 익주 지방 1주만을 차지한 비교적 약소한 나라였지만 조조, 손권과 더불어 천하삼분지계를 이루었다. 반면에 조조는 한황실의 승상으로서 황실이 가지고 있던 땅과 인물, 군사 등 좋은 물적 조건을 물려받아 10개 주를 차지하였으나 오, 촉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하였다. 삼국지를 일본의 전국시대에 비교해보면 조조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닮아 보이고 유비는 도쿠가와 이예야스를 닮은 것 같아 보인다. 가슴 속에 천하대업의 꿈을 품고 어떤 혹독한 고통과 척박한 조건도 이겨내며 날카로운 칼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겸손함과 부드러움으로 난세를 통과하고 때가 오기를 끝없이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유비와 이예야스는 닮아 보인다. 그래서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이고 일본의 대하소설 대망의 주인공은 도쿠가와 이예야스인지도 모른다.

유비가 신사적이라고 하지만 진짜 신사는 로마의 카이사르라고 할 수 있다. 민중파인 카이사르가 결전의 주사위를 던지며 루비콘강을 건너 원로원파를 제압하고 폼페이우스의 백만대군을 무찌르고 승리하여 종신 집정관이 되었지만 반대파인 원로원 귀족들을 잔혹하게 처단하지 않고 모두 용서해주는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군사 호위도 없이 혼자 로마 시내를 걸어가다가 공화파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죽고 말았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훌륭한 개혁정책들은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제위에 있으면서 개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소리없이 조용히 모든 개혁을 이루어내었다.

경제가 침체되고 저출산·고령화로 구조적 장기불황까지 염려되는 현 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만 외치기보다는 소리 나지 않는 리더십과 관용의 정신으로 정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통 큰 정치를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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