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간단해요. 사람과 산의 만남이에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고 산을 잘 알면 오를 수 있어요. 등산장비와 기술은 그 다음이죠.”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등반 도중 눈폭풍에 의한 산사태에 휩쓸려 숨진 김창호 대장이 생전에 들려준 말이다. 김 대장은 생사를 오가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히말라야 해발 8000m 이상 14좌를 인공산소 없이 7년 10개월 만에 등정, 세계 최단 완등 기록을 세웠다.

“저는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잠든 적이 없었어요.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쳐도 짐 싸서 한 시간 동안 100m라도 걷고 다시 짐 풀었어요. 어느 날 어금니에 힘을 꽉 주다가 너덜너덜하게 헐었던 볼살이 씹혔어요. 비릿한 피가 확 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는데 몇 번 빨아먹으니까 갈증이 풀렸어요. 그렇게 걸었어요.” 김창호 대장은 산소가 해수면보다 절반이고 기온이 영하 30℃ 밑으로 떨어지는 7500m 이상 ‘죽음의 지대’를 수십 번 오르고 내렸던 것이다.

총알처럼 난사하는 얼음덩이, 말도 식음도 불가능하게 안면 근육을 마비시키는 강풍, 시야를 앗아가는 강설(White out) 무한 추락으로 내던지는 빙하 틈새(crevasse), 피켈을 허락하지 않는 단단한 얼음덩이 청빙(淸氷)이 뒤덮인 히말라야를 들어설 때마다 “이번이 이승과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공포를 엄홍길은 느꼈다고 했다.

“해발 8400m까지는 인공산소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높이예요. 히말라야에 8400m 이상만 5개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 등반할 때는 인공산소 사용 여부를 반드시 기록합니다. 공기에서 가스 냄새가 납니다. 정상부근에선 1분에 한 걸음 떼기도 힘듭니다. 정신이 멍해지고 어떻게 등정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창호 대장의 고산 등정 고투담이다.

“고산지대에서 극도의 위험을 경험할 때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안이 사라지면서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등반은 죽음과 맞서서 얻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메스너의 ‘왜 산에 오르나’에 대한 답이다.

“내려올 걸 왜 올라가?” 어머니의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김창호는 계속 산에 오른다고 했다. 천국 가기 전 그 답을 찾았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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