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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의 인문명리] 간송 전형필과 손혜원의원의 문화재 사랑법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등록일 2019년02월11일 15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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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손혜원 의원의 친척과 보좌관 등 주변 사람들이 전남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 건물들을 무더기 매입한 것이 부동산 투기냐 문화재 보호 차원이냐의 갑론을박이 요즘 전국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손혜원 의원의 문화재 사랑과 대비해 전 재산 3000여억 원을 모두 민족문화재 보호에 헌신한 인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있다. 간송 선생이 1938년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을 담아 ‘보화각’으로 문을 열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은 훈민정음 해례본, 동국정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금동삼존불감, 김홍도의 과로도기와 마상청앵, 김득신의 야장단련·성하직구·야묘도추, 정선의 청풍계·풍악내산총람·압구정·금강내산, 김정희의 적설만산, 신윤복의 미인도 등이다. 또한 간송미술관은 각종 서화, 전적, 도자, 금속, 석물 등 국보 12점과 보물 31점, 유형문화재 4점 등 수천 점의 유물을 수장하고 있는 실로 한국 미술사의 보고이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은 암울한 일제시대에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태양처럼 반만년 민족유산을 지켜낸 진정한 민족문화유산 지킴이의 위대한 문화국부였다. 간송이 현 시가로는 수조 원에 달하는 민족문화를 지켜내는데 현 시가로 3000억 원의 재산을 모두 쏟아 부었다. 이 많은 재산은 그의 증조부인 전계훈(全啓勳·1812~1890)이 배오개(현 종로4가) 상권을 장악한 대부호였기에 가능했다. 간송은 통정대부 중추원의관을 지낸 옥포 전영기(全泳基·1865~1929)와 월탄 박종화(1900~1981)의 고모인 밀양박씨(1862~1943)의 2남 4녀 중 늦둥이 막내아들로 1906년 7월 29일에 태어났다. 손위 형인 형설과는 무려 14살 터울이었다. 그의 천기를 팔자 명리학으로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타고난 천기는 팔자의 기준점인 생일의 일간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육십갑자 가운데 첫 번째 간지인 갑자(甲子)일주로 태어났다. 이 가운데 일간인‘갑’은 깊은 산 속에 우뚝 서 있는 금강송과 같은 큰 나무 사주이다. 큰 나무 사주로 태어나고 학문성과 지식창고를 나타내는 인성(印星, 정인과 편인으로 분류)과 표현력과 감수성 및 창의성을 나타내는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이라는 육친이 사주에 있으면 주로 교육과 문화 예술성이 강한 인물이 된다.

간송의 타고난 천기인 팔자는 일간인 갑목을 도우는 정인(正印) 자수(子水)가 일지에 존재하고 일간인 갑목이 생하는 병화(丙火) 식신과 정화(丁火) 상관이 존재하여 교육과, 문화, 예술계에 부합하는 사주로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금강송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의 스승인 위창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이 지어준 산골짜기 간(澗)과 소나무 송(松)에 걸맞은 사주가 된 것이다.

오세창은 개화파의 거두인 역매 오경석의 장남으로 태어나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은 인물이다. 저서에‘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근역인수(槿域印藪)’등이 있다. 간송은 명리학상 용어로 스승에 해당하는 정인(正印)인 오세창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서 민족문화보존에 전심전력하여 민족문화 국부가 되었다. 간송은 손혜원 의원의 문화재 사랑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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